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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26.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74)
본문 : 막 14:32-36
제목 :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가 혹 외부에 나가서 설교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설교가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우리가 가진 믿음은 위대한 믿음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많이 합니다.
복음을 이야기할 때 이 두 가지 주제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미리 다 계획해 놓으시고 그 계획대로 이끌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는 것이지만 특별히 죄 가운데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이 일은 아주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따라서 구원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경륜이고 은혜의 경륜이고 비밀의 경륜이라는 것을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은혜로 역사를 진행하셔서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을 믿는 믿음을 알게 하셔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승격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핵심인 믿음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믿음으로 인하여 천국 백성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특별히 알아야 할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믿기만 하면 엄청난 것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믿습니다. 믿습니다.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착하게 살아야지 천국에도 가는 것이지 믿습니다만 한다고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는 믿음에다가 구원을 얻는 능력을 넣어두신 것을 잘 모르고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는 믿음을 의의 기준으로 정하신 것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복음을 믿는 믿음은 위대한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소중한 복음을 믿는 믿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복음이 공짜로 거저 쉽게 얻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돈을 주고 샀거나 엄청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받았다면 소중하게 여기겠지만 그냥 우연히 공짜로 거저 쉽게 받았다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편에서는 아주 쉽게 은혜로 공짜로 받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엄청난 일을 하셔서 그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타락한 이후부터 타락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로 역사를 펼쳐나가셨습니다.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역사를 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구원 플러스 역사이며 구속사라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기록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 역사 가운데서 특별히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살펴보면 우리의 구원이 그렇게 쉽게 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애타는 심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라는 곳에서 기도하셨는데 그 기도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애쓰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본문 32~33절에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라고 했습니다.
겟세마네는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는 감람산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동산입니다. 감람산은 올리브 산을 우리말로 번역한 지명입니다. 올리브나무가 많은 산이라고 해서 올리브 산이고 감람산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근처에서 활동하실 때 낮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이곳에 와서 기도하시거나 쉬신 곳입니다.
이 감람산은 특별히 예수님의 사역과 많은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유명한 감람산 강화라고 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세에 일어날 일들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곳도 이곳 감람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따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도 이곳 감람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감람산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제일 먼저 부활한다고 하여 무덤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저 단순히 가까운 곳이니까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기도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시작할 때 마가복음의 주제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한 것을 살펴보고 마가복음을 그 주제에 의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감람산에서 특별한 기도를 하고 계심은 그 기도가 그리스도의 기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겟세마네라는 뜻은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올리브 나무가 많은 감람산에서 올리브 열매를 따서 기름을 짜는 틀이 있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올리브유는 등유로 쓰기도 하고 식용으로 쓰기도 하고 약으로 쓰기도 하는 귀한 기름입니다. 성전의 등불도 이 기름으로 쓰게 하였고 식용 기름도 고급 기름입니다. 저희 가정에도 이 올리브유를 잘 씁니다. 이 올리브유를 짤 때 그대로 압착해서 짠 것을 일등 식용유로 취급합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기도를 이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서 하신 것은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과 같이 예수님의 기도는 기름을 짜는 듯한 애타는 기도였습니다. 누가복음은 그때 흘리신 예수님의 땀이 피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올리브유와 같이 귀한 것을 위한 기도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올리브 산에서 기도하신 것은 이 기도의 목적에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 예수님의 기도는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엄청난 것을 주시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형식적이기가 쉽고 대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것도 별로 귀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기름을 짜듯이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가장 귀한 것을 얻기 위한 그런 기도여야 할 것입니다. 있으나 마나 한 것을 가지고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기도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기도의 소중함을 놓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주시려고 하는 기도였지만 이 기도는 혼자 하시는 외로운 기도였습니다. 제자들은 멀리 남겨두었고 데리고 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도 같이 가지 않으시고 예수님 혼자만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함께 모여서 즐겁게 하는 축제가 아니라 혼자서 하는 외로운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아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도를 어떤 시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기쁨은 함께 누리지만 슬픔은 홀로 흐느낀다. 갈릴리 가나에는 많은 손님이 있었지만 겟세마네에는 한 사람뿐이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부터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수많은 병든 자들을 고치셨을 때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수많은 사람이 막상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는 다 떠나고 예수님 혼자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은 이렇게 외로운 일이었습니다. 함께 힘을 모아 주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을 떠났고 사랑하는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외롭게 혼자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사람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고 시시해졌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사람들을 붙잡지 않으시고 더 이상 불러오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의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미 된 것 같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교만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런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상속해주셨는데 그것도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런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의 형벌까지 대신 받아주셨는데 감격하지도 감사하지도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 사람들을 불러서 뭘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이 구원의 길도 좁은 길이고 좁은 문이며 사람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외로운 길입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본문 33~34절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되어서 외로우신 것만 아니었습니다. 심히 놀라셨고 슬퍼하셨습니다.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며칠 동안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이 어떠한 고통을 당하여야 할 것인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자신은 하잖은 인간들에게 붙잡혀 가서 온갖 모욕을 당하고 십자가의 고통까지 당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다 아셨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 베드로 사도의 배신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할 것도 다 아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잘 모르고 얼떨결에 당하는 일은 그래도 그때 가서 고통스럽겠지만 미리 다 아시고 당하는 고통은 미리부터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마음은 사실 자신이 당할 고통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인간인지라 그런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우리 인간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을 생각하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은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이 모두가 다 당하는 고통입니다. 죽고 난 다음이 더 문제입니다. 죽은 후에는 아예 사탄이 가는 지옥으로 들어가서 영원토록 형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더 한심한 것은 그런 줄도 모르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며 그것이 사탄의 속임수인지도 모르고 사탄이 유혹하는 대로 죄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이 그런 고통을 다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 무거운 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져야 할 그 무거운 죄짐을 우리가 받아야 할 그 무서운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시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했다면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죄짐과 형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세 가지의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육신의 죽음과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과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당해야 할 영원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비록 육신은 당분간 영혼과 분리되는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나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믿음은 위대한 믿음입니다.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본문 35~36절에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자신이 당해야 할 고통이 구원받아야 할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이 일을 위해서 성부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랫동안 역사를 진행하고 계셨는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회피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이 때가 자기에게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때는 예수님께서 당하셔야 할 그 고난의 시간들을 말합니다. 잡혀가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야 하는 그 고통의 때가 예수님에게서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었지만 그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당하시는 예수님의 고통은 정말로 당하기 싫은 것이었으며 그냥 지나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잔은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의 잔을 말합니다. 이 고난을 이 고통을 나에게서 옮기시고 다른 일을 통하여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일이 아무리 중요한 일이지만 어찌 온 우주에서 오직 나만 마셔야 할 고난의 잔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 중에 아주 특별한 사람을 키워서 이 일을 하게 하시든지 아니면 이런 고통을 통하지 않고 이 일을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신 자신이 이 일을 해야 하고 또 이런 엄청난 고통을 통해서 이 일을 하셔야만 하시는지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이 일이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은 없는가를 여쭈어보신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가올 고통이 너무 무서워서 이런 기도를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할 고난이 엄청나다는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이 시간이 내게서 지나가고 이 고난이 잔이 나에게서 옮겨지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계획이 구원받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셨기 때문에 자신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도 늘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기를 바라고 삽니다. 구원이 중요하고 구원을 받게 되는 믿음이 중요한지를 알면서도 고난을 겪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때로는 고난을 동반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에 이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하여 내가 감당해야 할 고난도 있습니다. 그 고난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며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 이런 은혜를 받은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교회 안에 한 형제 된 성도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고 외롭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희생과 헌신이 한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너무나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엄청난 것을 받았습니다. 온갖 죄에서, 죽음에서 멸망에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천국을 이미 상속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구원을 얻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역사를 우리 편에서 운행하셨고 수많은 사연 속에서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수고 없이 그냥 은혜로 받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엄청난 일을 하셨고 특별히 우리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오셔서 심한 고통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의 형벌까지 받으셨습니다.
이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귀한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이 귀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