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기억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그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억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섬길 신(神)입니다. 그분만이 온 땅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것입니다. 즉 ‘내가 누구인가?’라고 하는 질문 앞에 대답할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만민 가운데서 우리를 구별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그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사명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을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 죄악의 세상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한 왕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으로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예비하시도,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우리가 기억할 때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感謝)”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원받은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그토록 고귀한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그 수많은 우리의 선배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찬양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권면한 말씀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교회를 향한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이 핍박에 의해서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이러한 핍박에 대해서는 잘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에서 일어난 잘못된 종말관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생활이 문란해졌다는 것입니다. 즉 저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현실의 삶을 방치했던 것입니다. 즉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이 없음으로 인해 많은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바울이 주는 교훈은 아주 특이한 것입니다. 물론 바울의 권면은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로 하여금 성도다운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가진 자는 현실에서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확실하지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언제든지 만나게 되는 종말에 대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러한 권면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주 특별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에서 환난 가운데서도 종말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은 마지막 권면인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이 계절은 가을입니다. 그리고 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열매들을 수확하고 저장함으로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합니다. 물론 우리와 같이 농사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삶이 피부로 와 닿지 않습니다. 또한 오늘날은 계절에 관계없이 열매들이 나오기 때문에 가을만이 보이는 광경도 그리 뚜렷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마음에는 이 가을에 대한 생각과 자세는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만 되면 다른 계절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가을을 지나가면서 반드시 생각하고 점검해야 하는 단어가 바로 “감사(感謝)”일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삶이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들을 헤아리면서 그 은혜를 은혜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를 향해 본문에서 바울은“범사에 감사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어디까지 감사할 것인가? - 감사의 범위와 한계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누군가가 “감사하라”라고 말하면 우리는 대뜸 “무엇을 감사해야 하나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사는 언제는 무엇인가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대부분의 감사는 “때문에 감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감사의 제목부터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찾고 찾았는데도 감사의 제목을 찾지 못하면 나는 감사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녕 우리는 그토록 감사할 제목이 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사실은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감사의 제목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감사의 제목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한다면 우리의 모든 삶에서 감사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범사(凡事;ἐν παντὶ)라는 단어는 참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과 처지,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현실을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이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가 감사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울의 삶은 결코 따라가고 싶지 않은 것들입니다. 물론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삶은 참으로 고난의 연속입니다. 오직 예수님 때문에, 오직 복음 때문에, 오직 교회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은 수 많은 고난의 현장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조금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난의 현장에 있을 때일수록 더욱 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은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주었다는 죄목으로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심한 고난의 현장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행16:25).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과정에 만난 고난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했습니다(고후11:23-27). 하지만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이 당한 이 고난에 대해서 조금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그러한 고난을 당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0절에서도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당하는 고난이 바울의 고난만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바울처럼 고난을 당해 보았습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바울만큼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감사하려고 합니까?
바울이 오늘 우리를 향하여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삶 전체를 감사의 삶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 범사는 분명 어느 특정한 상황이나 특별한 사건에 대해서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만날 때도 아니면 좋지 않은 일을 만났을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했을 때에도 실패했을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도 건강하지 못할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삶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마지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모든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롬8:28).
결국 우리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기억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보혈을 기억한다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Ⅱ.감사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의 뜻
본문에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오늘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이 편지 안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뜻은 바로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장 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데 그 하나님과 함께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지 않다면 결코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 닮기”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성화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완전한 거룩함에 이를 수는 없지만 그 완전한 거룩함을 향하여 정진해 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 가운데 “감사하는 삶”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사하는 삶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뜻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떤 뜻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고 성취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성하심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을 저들의 죄악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 백성들을 돌보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그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성립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따라 하나님 앞에 감사의 고백을 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성도다운 모습을 이루어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감사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감사는 그 이상의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가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미래의 모든 삶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맡김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드러내는 삶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삶이요,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모습을 완성해 가도록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이제 우리는 추수감사 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계절에 나는 무엇을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나 무익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또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감사는 말 그대로 우리의 삶 자체요, 전부여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우리의 감사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가지신 그 뜻을 더 아름답게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모든 일에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