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세상을 이기는 힘
요한복음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성도 여러분! 2024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고 할 것입니다. 온 나라가 잠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참으로 어지러웠던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우리 하나님의 손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안 좋았던 일은 안 좋았던 일대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가운데 진행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모든 시간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시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가오는 2025년의 역사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진행되고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아무리 큰일일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서 일어날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열심을 다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유일한 목자이시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세상은 참으로 어지럽습니다. 너무나도 캄캄합니다.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낭떠러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마다의 목소리는 크게 외치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진리의 소리는 없습니다. 또한 세상은 오늘도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화려함으로, 편리함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하여 어찌하든지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게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을 포기하게 하려고 합니다.
분명 이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탄의 계략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베드로가 과거에 겪었던 경험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안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라는 경고하셨음에도 잠을 자다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이러한 경고를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자기 경험을 근거로 하는 가슴 절절한 권면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밤을 보내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를 통한 자기 백성들의 구속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본래의 자리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자들만 세상에 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일들을 감당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의 여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게 됩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했던 것처럼, 제자들을 미워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제자들을 죽음의 자리로 몰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유혹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만 굳게 붙들고 있다면 우리는 패배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승리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2024년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2025년이라고 하는 새 시간 속에서 새 역사를 써 가야 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함께 듣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다가오는 2025년을 승리하는 한 해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2025년 우리 광성교회의 표어인 『믿음, 세상을 이기는 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예수
본문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앞으로 가는 길에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앞으로 제자들이 가는 길은 위대한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이요, 복음의 길입니다. 사명의 길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의 가는 길에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말씀을 하셔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사기를 꺾는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하게 될 것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리 제자들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자들이 당황하지 않고 믿음으로 잘 대처할 수 있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사실 요한복음 16장은 전체가 예수님의 특별한 의도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는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인 본문에서도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제자들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는데, 본문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제자들이 평안을 소유하고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의 장차 닥칠 상황에서 실족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을 이겨내고 나아가 “평안(εἰρήνη)”까지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의 말씀을 좀 더 실감 나게 번역한다면, “내가 이 말을 너희에게 하는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이 평안을 얻고 누리는 방법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평안을 누리게 될 때 맺게 되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결코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누구라도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용서”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다 버리고 도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2절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저들에게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용서가 없다면 제자들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저들이 아무리 몸부림치고 의지가 강해도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아십니다. 자신들의 뜻대로 다가오는 고난이나 시련을 통과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제자들이 죄책감으로 인해 절망에 빠지는 것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는 눈앞에 둔 지금 미리 제자들에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의 그 연약함과 그 결과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저들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연약함을 이기고 사명자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경험을 가졌어도, 그것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비록 일시적인 평안을 줄 수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궁극적이고 영원한 평안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 진정한 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믿음,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믿음. 내가 걸어가는 오늘의 발걸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는 걸음이라는 믿음, 내의 모든 삶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된다고 하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를 받았음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권세 아래에 있을 때, 그 죄의 결과에 대해서 불안해한다면 우리는 결단코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지신 십자가를 통해서,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무한한 용서를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그분의 대속을 믿는 자는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Ⅱ.우리로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
본문 4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필연적으로 환난을 당하게 될 것과 그 때 예수님의 제자가 취해야 하는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에는 환난이 있을 수밖에 없을까요?
여기에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자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4절에서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과 함께 살면서도 자신들에게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분이 다르고, 삶의 방향이 다르고, 삶의 목적이 다르고, 삶의 모습이 다릅니다. 세상은 어둠에 있고 죄악에 덮여 있는데, 제자들은 빛에 거하고 의로움의 삶을 살아갑니다. 따라서 어둠이 빛을 미워하는 것처럼, 죄가 의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함께하지 못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가까이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어둠이 부각되고, 자신들의 더러운 죄악의 모습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세상에 환난을 당할 때 가져야 하는 자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과정에 환난을 당할 때 제자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는 바로 “담대하라(θαρσεῖτε)”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계속해서 용기를 내라, 계속해서 무서워 말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가진 새로운 뜻은 ‘마음을 다시 먹으라(take heart)’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제자들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그러한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당할 환난, 예수님의 떠나심, 제자들의 배반’과 같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아직 앞으로 대하게 되는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의 나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강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세상에 맞서서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선택의 사항이 아니라 절대적인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세상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제자가 세상에서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내가 장차 이길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승리가 이미 확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와 부활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는 미래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완전한 승리를 얻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그 일이 이미 지나간 과거처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이기었노라(νενίκηκα)”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육적인 승리가 아닌 영적인 승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승리는 독점적인 승리입니다.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승리라는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승리는 영적 어둠의 권세인 사탄에 대한 승리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치명상을 입은 사탄은(창3:15)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펼치실 심판대 앞에서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계20:10),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어두움을 이기셨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저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 담대하게 맞서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자들입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힘이 없지만,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의 왕이 되시며,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를 위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입니다. 우리를 저 사탄의 권세 아래 놓인 세상에서도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입니다. 비록 세상이 어둡고 어지럽고 혼란스럽지만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지라도 끝내 승리하게 하시고 저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합니다. 이 믿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게 합니다. 이 믿음만이 우리가 이 세상에 승리자로 살아가게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2025년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승리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승리의 왕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