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

 

 

 

히브리서 14~5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는 서신을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뛰어나심을 증언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메시지는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시대를 따라 흘러가면서 점진적으로 확장이 되고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장차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드러내실 그 위대한 뜻과 역사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날들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완전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씀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오심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분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 승천까지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모든 내용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결코 비교될 수 없는 위대하신 분이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는 저 선지자들보다 훨씬 뛰어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선지자들보다 뛰어납니다. 그분은 만유의 상속자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선지자들의 사역과 비교할 수 없도록 뛰어납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죄인들의 죄를 영원히 정결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자기 백성들을 친히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저 선지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보다도 더 뛰어나신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사가 등장하는 것은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는 천사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7:38, 3:19). 그래서 당시 많은 사람은 천사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중재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생각이 지나치게 나타남으로 급기야는 천사를 숭배하는 자들까지 등장했습니다(2:18). 천사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하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존재로서의 천사보다, 그리고 잘못 알고 잘못 믿음으로 인해 숭배하게 되는 천사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시선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하도록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뛰어나신 모습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천사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그 첫 번째 시간으로 아들의 이름을 가지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셨습니다.

 

 

본문 4절에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천사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본문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사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초점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천사가 특별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천사를 동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역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들의 모습을 보면 어떤 천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일을 하기도 합니다(6:2-4). 어떤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10:11, 1:11f, 1:26f)). 어떤 천사는 영적인 전쟁을 감당하기도 합니다(10:13). 결국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수종 드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천사들이 아무리 뛰어난 존재요, 아무리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를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아들이라고 하는 이름이 주어졌음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천사에게도 아들이라는 이름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천사 중에는 미가엘이나 가브리엘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창조자가 아닙니다.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피조물이 창조주와 비교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아들의 탁월함을 표현하면서 여러 가지 문법적인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아들에게는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더욱 아름답다(διάφορος)”라고 하는 것은 훨씬 더 탁월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에게 주신 이름은 천사들에게 주어진 이름과 비교할 때, 훨씬 더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교해서는 안 될 정도로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름은 천하에서 구원을 얻을 만한 유일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4:12). 또한 모든 이름 중에 뛰어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2:10).

 

 

또한 이 이름은 기업(κληρονομέω)”으로 주셨습니다. 이는 상속으로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에게도 양보되거나 이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상속자만이 받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오직 아들만의 것입니다. 다른 그 누구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없습니다. 그 이름의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름은 유일한 이름입니다.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이는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었을 때, 천사를 통해서 알려주신 이름입니다. 그 이름에는 그분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사역이 그 이름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자이심이 그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 이름을 찬양하고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립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존재도 이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이를 침범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 이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5절에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인용된 구절은 바로 시편 27절의 말씀으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내 아들이라고 칭하신 유일한 존재가 오직 그리스도뿐임을 보여줍니다.

 

 

사실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하는 선언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셨을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3:17). 또한 예수님이 산에서 변화되셨을 때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17:5).

 

 

영지주의를 포함한 이단들은 이를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세례를 받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75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15절에서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셨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오늘이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시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시지, 시간의 제약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간에는 모든 시간이 현재요, 모든 날이 오늘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이해하는 출생의 개념에서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즉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 발생을 말하는 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 발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의 신앙고백서에서는 이에 대해서 성자께서는 성부로부터 영원토록 태어나셨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23). 그리고 장로교회의 교리를 집약해 놓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동일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10).

 

 

사실 이러한 말씀과 고백은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神祕)”입니다. 인간의 이해 개념으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할 수가 없어서 낳았다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신학적인 표현이 바로 영원 발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성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히 성부로부터 발생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는 그 우월한 지위와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성부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를 가진 존재가 없습니다. 삼위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물일 뿐입니다. 그리고 창조된 모든 존재는 어떤 과정을 통한다고 할지라도 창조자의 위치에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이 우리에 창조자시기에, 그분이 우리의 구속자이시기에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예배하고, 마땅히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5절에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용된 두 번째 성경은 사무엘하 714절의 말씀으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가리키는 일차적인 대상은 솔로몬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솔로몬은 장차 메시야 왕국의 영원한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는 사람입니다. 즉 신정 왕국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솔로몬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왕으로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시며 견고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의 자리에 천사를 포함한 그 누가 개입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본문의 표현은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자 관계를 이중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원문에는 생략되어도 되는 나는(γώ)”이라는 단어와 (ατός)”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체이신 하나님과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함과 우월하심을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천사들이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것입니다. 비록 오늘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위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와 동등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특별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맏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1:6). 이는 골로새서 115절에서 표현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과 동일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이해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는 아주 특별합니다. 그분은 분명 각각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둘은 한 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만 가지고 있는 삼위일체 교리 안에 존재하는 부분입니다. 이 관계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여기에 대해 완전한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을 믿는 것이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비로운 존재인 천사보다 더 우월하신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속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에게만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외에 그 누구에게도 그분과 같은 이름과 지위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우리의 대속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아무리 천사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창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한 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에게 집중하고 그분으로 전부를 삼아야 합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참모습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