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3.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75)
본문 : 막 14:37-42
제목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전에 우리 교단에 기도를 많이 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가끔 교단이나 노회 행사 때 설교를 하시면 즐겨 쓰시던 본문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않고 졸고 있다가 시험에 들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고 지적하시며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제가 동료들에게 농담으로 저 목사님 나중에 천국에 가면 베드로 사도를 만날 것인데 그때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야 너는 내가 잘한 일도 많은데 한번 실수한 그것 가지고 평생을 흉보고 다녔냐.
저는 베드로 사도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베드로처럼 나서기를 좋아하고 앞장서기를 좋아하고 늘 리더로서 사는 삶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기막힌 신앙고백을 하는데 그 신앙고백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그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설교도 많이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 한 고백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로 잔뼈가 굵어진 베드로가 그날따라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는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지게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주님 앞에서 우리는 흉악한 죄인일 뿐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흉악한 죄인임을 고백할 때 예수님이 주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두 번째 신앙고백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그것을 먹고 배부른 사람들이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라고 하시자 사람들이 그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고 그때부터 한 사람 두 사람 예수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시자 베드로 사도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향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세 번째 신앙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 사도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였지만 그의 삶에 오점을 남긴 것은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셨을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입니다. 그 시험에 넘어간 이유가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깨어서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기 때문에 그 어렵고 힘든 일을 조금도 실수하지 않고 당당하게 해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그때 제자들처럼 기도하지 않아서 시험에 넘어지는 자들이 되지 말고 예수님처럼 기도하여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본문 37~38절에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힘써 기도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돌아와서 보니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고 자고 있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해서인지 너무 피곤해서인지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다 자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만 책망하시듯이 말씀하십니다. 늘 기도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 중요한 때에 세상의 모든 인간을 구원하는 마지막 고비에 이 엄청난 일을 앞두고 그저 잠시만 기도해도 될 때인데 그 한 시간을 기도하지 못하고 자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이런 책망의 말씀을 하신 것은 베드로가 제자들의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베드로만큼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기도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대로 베드로는 그동안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을 잘 알고 멋있는 신앙고백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런 중요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실을 믿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사실을 그렇게 힘 있게 고백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 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 줄 잘 모르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알고 그렇게 믿고 고백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중요한 순간에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 사역이 이루어지고 기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나 안 하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나가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의 일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시험에 들고 유혹에 빠지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가 고백한 그 신앙고백이 늘 유지될 수 있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 믿음을 그대로 지키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믿음이 의심이 되거나 믿음 생활이 소홀해지기 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든다”라는 말은 시험에 빠진다. 시험을 만난다는 말입니다. 시험이라는 것을 만나지 않으면 좋을 것인데 그 시험이 내 앞에 다가와서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시험이 닥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시험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입니다. 이 단어는 시험, 시련, 유혹이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여기에서 시험이라는 말은 우리가 잘 아는 시험 즉 테스트(Test)라기보다는 유혹(temptation)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끔 테스트도 하십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일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두드려보십니다. 그런 테스트를 통하여 믿음이 더 강하게 하게도 하시고 더 큰 일을 맡기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유혹을 말합니다. 사탄이 수시로 틈만 있으면 우리를 유혹하여서 믿음에서 넘어지게 하려고 벼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적당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맞게 유혹을 합니다.
여기 깨어 있으라는 말은 단순히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정신 차리고 지켜보고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경계하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을 지켜보지 않으면 그들의 유혹에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근신하고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많은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집도 가족도 재산도 직업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때는 보통 결심을 하고 따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신앙고백도 잘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도 큰소리를 쳤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막 14:29)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14:31)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눅 22:33)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 13:37) 이런 막강한 각오를 고백한 사람입니다.
이런 각오와 고백을 거짓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고백을 할 때 그의 마음도 그런 각오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그런 고백이 어려움을 당하면 넘어지고 맙니다. 제자들도 막상 목숨이 위협을 당하자 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서 마음과 몸이 따로 놉니다. 마음은 예수님도 잘 믿고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몸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다른 행동을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유혹당하기 쉬운 육신의 약점이 무엇인 줄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약점대로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으로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성으로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명예로 오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오락으로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의 약점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가 마음에 다짐한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본문 39~40절에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께서 다시 나아가셔서 똑같은 내용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제자들에게 와 보니 제자들은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는 말씀을 무시하고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인간의 연역함을 아시고 더 꾸짖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을 보셨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의 연약함도 아시고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피곤을 이기지 못함도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기도하지 못하고 자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시고 더 이상 꾸짖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동정의 눈으로 보시자 제자들이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도 모르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핑계를 대든 지 변명을 하든지 죄송하다고 사죄를 드리든지 해야 하는데 아무 말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있어서 특별히 죄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그 중요한 기도를 계속해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기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무슨 형편으로든지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는지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이 어떻게 오는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총신대 신약학 교수인 유상섭 교수는 본문을 주석하면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 배워야 할 일곱 가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친밀한 대화와 교제이다.
2. 기도의 내용은 기도자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도를 받으시는 아버지의 뜻에 의해 결정된다.
3.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변경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확증한다.
4. 기도는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하는 것은 중언부언의 기도가 아니다.
5. 기도의 결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재차 새롭게 확인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은 기도 응답의 중요한 부분이다.
6. 신자가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하루 한 시간의 기도가 필요하다.
7. 기도할 마음이 있어도 육신이 피곤하면 제대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신자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은 시간을 골라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란 우리의 고집을 하나님께 요구해서 확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살펴서 그 뜻에 나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도도 그냥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뜻을 살피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루 한 시간 이상 피곤하지 않은 때에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응답받은 세 가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1. 기도하기 전에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심히 고통스러웠던 예수님은 기도 후에 마음의 안정과 확신을 얻었다.
2. 기도의 결과로 예수님은 그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그가 십자가에서 진노의 잔을 마시는 것임을 강하게 확인했다.
3. 그가 인자로서 죄인들의 손에 팔리는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 고통스러운 일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담대하게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고 힘있게 그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지혜롭게 그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본문 41~42절에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기도하시고 다시 와서 보니 여전히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자고 있었습니다. 실망한 예수님께서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의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게 쉬운 번역들은 “아직도 자고 있느냐, 쉬고 있느냐? 그만하면 됐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앞에 놓고 내가 같이 기도하자고 두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그렇게 자고 있느냐? 아직도 그렇게 쉬고 있느냐? 참 답답하다.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느냐? 이 일이 너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직도 모르느냐?
이제 됐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말할 시간도 없다. 지나고 보면 내가 기도하라는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이었나를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기도해야만 믿음을 유지할 수 있고, 기도해야만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한 번 더 확인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훤하게 보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팔려갈 때가 되었고 죽음으로 한 발짝 더 나가야 하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임을 확인하셨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도 망설일 것도 없이 담대하게 그 일을 맞이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도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살기가 힘들고 먹고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여기저기 우리를 속여서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우리가 원하는 착하고 바른 삶은 살지 못하고 늘 죄 가운데서 헤맵니다. 그런 가운데도 하루하루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기도는 그런 삶을 살지라도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담대하게 살게 합니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교회를 통한 이 구원의 일에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늘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아주 소중한 일을 앞에 놓고 비록 그것이 자신에게는 엄청난 수치요 모욕이요 고통의 일이었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담대하게 그 일을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졸며 자다가 실패한 제자들의 모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다짐을 했어도 기도가 없으면 그 결심도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수시로 무시로 기도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