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버리는 자에 대한 경고
히브리서 2장 1~4절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오늘의 성도들은 참 행복한 자들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누리를 이 행복은 구약의 성도들이 그토록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구약에 살았던 우리의 선배들은 자신들이 들었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그토록 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림자만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말씀이 성취되는 날을 소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구속 역사의 과정에서 최고의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 예언들이 성취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고 수준의 말씀을 들을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특권은 아브라함보다, 모세보다, 다윗보다, 엘리야보다 더 엄청난 것입니다. 메시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라 할지라도 우리보다 더 분명한 복음을 듣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가장 확실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가장 분명한 복음의 의미를 깨달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믿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우리가 이 특권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고귀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엄청난 은혜를 너무나도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위대한 믿음을 너무나도 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과,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만약 오늘이라도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창피한 모습이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이토록 큰 특권을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과 그 복음에 대한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복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또한 이 복음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세상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저세상이 우리의 복음을, 우리의 믿음을 부러워하게 해야 합니다.
나아가 오늘의 우리는 종말이라고 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활 후 승천하신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모든 예언이 그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모든 예언의 완성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특수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성취된 것을 믿으면서 또한 완성을 기다리는 아주 독특한 상황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를 앞세우고 재림하실 때, 우리는 이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히브리서는 다섯 번의 반복되는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증언하는 부분과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불신앙에 대한 경고의 부분입니다. 본문은 그 첫 번째 경고입니다. 1장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이 얼마나 큰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의 복음에서 이탈하여 천사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지 않는 죄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복음을 버리는 자에 대한 경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복음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이는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1장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증언한 내용을 근거로 해서 2장의 내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지자보다,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제부터 시작되는 경고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특히 1절에 등장하는 “유념할지니”라는 표현은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반드시 마음을 쏟아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1.복음은 우리가 들은 것입니다.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들은 것”은 1장 전체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즉 ‘그리스도에 관해서, 다시 말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들은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본문은 당시의 성도들에게도 익숙한 단어였던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들은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1장 첫 부분에서 증언했던 내용과의 연결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일지라도 그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입니다. 또한 그 말씀은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는 말씀하신 것이요, 우리의 편에서는 분명하게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내용은 철저하게 그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하게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음이 복음입니다. 내가 죄 가운데 빠져서 영원한 사망이 있울 때에 그 아들을 보내심이 복음입니다. 그 아들이 내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복음입니다. 무덤에 장사 되셨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심이 복음입니다. 하늘로 승천하신 그 아들이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심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심이 복음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은 이 복음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 복음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그 복음으로 우리의 전부를 삼아야 합니다.
2.복음을 떠나는 것은 표류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복음을 소홀히 하는 것은 엄청난 재앙이 되고 맙니다. 본문에서는 이 재앙을 “흘러 떠내려간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문에 담긴 뉘앙스를 살려서 번역한다면 “미끄러져 떠내려간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 외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된 표현으로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버리는 것, 실수로 인해 음식을 흘리는 것, 무의식중에 무엇인가를 말해버리는 것, 의논 중에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단어가 보편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는 부주의라든지 무의식중의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을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 표현은 항해와 관련되어 사용되는 것이기도 한데, 이때는 선장이나 선원이 바람의 방향이나 물결의 흐름을 주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배가 항구나 정박지로부터 멀리 벗어나 표류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배가 맞이하게 되는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참혹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이 의도하는 바는 풍랑이나 급류에 휩쓸려 표류하게 되면 그 결과가 참혹해지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벗어나 잘못된 사상이나 교리에 이끌리게 된다면, 이는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되고 큰 해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일차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하심을 버리고 천사를 숭배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결국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는 가장 안전한 정박지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많은 이단들은 여기를 벗어나 자신들의 정박지가 안전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는 흘러 떠내려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끝은 상상을 초월하는 해(害)만 있을 뿐이라고.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확실한 복음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복음은 오늘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성경 안에 있습니다. 이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고, 천국을 소망하는 순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버리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복음을 버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은 나의 전부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순간 우리는 방향을 잃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순간 우리는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들려진 복음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 복음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 복음으로 만족하고, 그 복음을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Ⅱ.복음은 더 우월한 것이다.
본문 2~4절은 천사들을 통해서 주셨다고 믿는 구약의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구속력이 있기에 그것을 범하는 자들이 마땅한 보응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는 자들에게 더 큰 보응이 있을 것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말씀의 전달자가 아니라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1.천사들을 통해 말씀하신 율법도 보응이 있었습니다.
본문 2절에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이 천사들을 통해서 전달되었다고 하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천사들을 통해서 전달되었다고 믿었습니다(행7:53, 갈3:19). 그런데 사실 본문에서는 이 누구를 통해서 전달되었는가 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 전달되었든지 그 말씀은 “견고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믿을만하게 되었다’라는 의미를 가진 표현으로 주로 법정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정당하다, 합법적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하나님 말씀의 확실성과 그 말씀이 지닌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은 율법은 절대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 율법은 하나님에 의해서 법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자들에게는 엄격한 심판과 보응이 뒤따랐습니다. 율법은 징벌이 뒤따랐고, 그 율법을 어긴 자들에게는 그 징벌이 어김없이 이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 자신의 심판이었기에 정당성이 입증되었습니다(레10:1~7;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또한 본문에 등장하는 “보응(報應;μισθαποδοσία)”은 ‘마땅히 받을 자에게 되돌려 주는 합당한 보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를 사용될 때는 확신을 가지고 인내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약속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상급이요, 이를 믿고 살아가는 자들에 있어서 영적이며 도덕적인 투쟁에 있어서 강력한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율법을 위반한 자들이 당하는 징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보상과 거역하는 자에 대한 징벌이 분명했음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해서 이어지는 내용이 준엄함이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아들을 통해 직접 말씀하신 구원의 복음은 더 분명한 보응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본문을 조금 더 실감 나게 번역하고자 한다면 본문의 말씀은 “하물며”라는 표현을 삽입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즉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천사가 전한 율법이 공정한 보응 받았는데, 하물며 아들을 통해 주신 구원의 복음을 거부하고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 합당한 보응을 받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등한히 여긴다”라는 것은 ‘무관심하다, 조심성이 없다,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주장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사상가나 저명한 학자의 주장을 무시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해서 무관심하는 것은 전혀 사정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에 관한 복음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이는 아무런 소망도 없는 길입니다.
3.구원의 복음은 확증된 것입니다.
먼저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확증되었습니다. 본문 3절에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라고 했습니다.
이는 율법의 중재자는 천사였지만 구원의 복음은 그 중재자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함으로 복음의 위대함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하시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막1:15). 그리고 3년 동안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 복음은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12:49~50). 나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하신 예수님의 기도에서도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라고 하셨습니다(요17:8).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친히 전하신 모든 복음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구원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친히 확증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복음 제자들에 의해서 확증되었습니다. 본문 3절에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들은 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열한 사도들과 또한 주님을 따르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함께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직접 들었고,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있는 그대로 증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듣는 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경고하게 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확증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복음 하나님이 친히 증거하신 것입니다. 본문 4절에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만 증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복음을 증거하심에 있어서 표적과 기사와 다양한 능력과 성령의 은사라는 수단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수단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제자들의 사역 가운데서 나타나는 능력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 강림 이루에 사도들과 제자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을 통해서 그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다고 할지라도 이는 제자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통해 이러한 능력이 나타나게 하심으로 인해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선포되는 복음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의 율법이 가진 힘과 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구원의 복음은 훨씬 더 대단한 것입니다. 율법을 전달한 천사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훨씬 더 우월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율법을 따라 보응하신 하나님은 구원의 복음을 따라서는 더 분명하고 공정한 보응을 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시겠지만, 복음을 듣고도 거부하거나 버리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과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우리는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은 자들이요, 그 복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 복음을 통해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보다 귀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이를 저버리고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간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복음,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복음,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이 복음에서 결코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모든 성도들이 오직 이 복음을 붙들고 이 험난한 세상의 도전 앞에서 승리함으로 그 날에 우리 주님 앞에서 칭찬과 상급을 받고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