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4.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72)

  본문 : 막 14:22-26

  제목 :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자주 생각하면서 사는 가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쁜 추억들을 생각하고 삽니다. 나에게 잘못해 준 것 나에게 나쁜 말을 해준 것들만 생각하며 삽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원망과 불평으로 인해서 늘 괴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좋은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삽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더라도 가끔 기분 좋게 해주었던 사람들의 말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삽니다.

 

  저도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그런 좋은 일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주로 기분 나쁘고 슬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오해도 받아서 욕을 먹기도 하고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욕먹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쁜 추억들은 잊어버리고 아주 가끔 있는 기분 좋은 일들을 기억하면서 삽니다. 나쁜 추억들은 잊어버리고 좋은 추억들을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늘 기억하고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칭찬 한마디 듣는 것이 일시적으로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내 삶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꼭 기억하면서 살아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기억해야 하고 한두 번 기억하고 말 것이 아니라 늘 영원토록 기억해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성경의 핵심이고 이 복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핵심입니다. 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받는 은혜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것들 가지고 싸웁니다. 자존심 가지고 싸우고 돈 가지고 싸웁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자기 이익만 위해서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 신경도 쓰지 않고 하잖은 것들을 가지고 싸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잘못된 교회나 지도자들은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무시하고 복음과 반대되는 세상의 것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이익과 욕망을 채우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고 따르고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기억하면서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같은 말씀을 기록한 누가복음 22장에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누가 22:19)라고 하셨습니다. 기념하라 생각하고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이것을 생각하고 기념하고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알고 기억하고 기념하고 사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본문 22절에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이 땅에서 마지막 유월절 잔치에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만찬을 하시던 중에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주시면서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때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성찬 예식을 제정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고전 11:23-24)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예식을 행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성찬 예식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 떡이라고 번역된 헬라에 알토스(ἄρτος)는 곡물가루로 만들고 누룩을 넣어서 부풀게 하는 등의 만드는 방법을 볼 때 우리나라의 떡보다는 빵에 가까운 음식입니다. 유대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음식이었고 일용할 양식이라고 할 때도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유월절에 사용한 이 빵은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것이었으며 양고기와 포도주와 함께 유월절 음식의 주요 음식이었습니다. 유월절에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것은 유월절 절기와 관련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중요한 명절로 지정하시고 해마다 지키라고 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종노릇 하며 고통당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자유인이 된 것을 늘 기억하고 기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누룩 없는 이 빵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누룩을 넣어서 부풀려 부드럽고 맛있게 먹는 빵이 아니라 그냥 육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먹는 최소한의 음식이고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하여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생했던 것을 늘 기억하면서 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에서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 떡이 내 몸이라고 하신 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어 주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후일 우리가 성찬 예식에 참여하면서 떡을 받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격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떡이 내 몸이라고 하신 말씀에는 또 다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주시면서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하셨는데 이 떡에도 떡으로 세운 새 언약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떡을 일용할 양식이라고 한다면 옛 언약의 떡은 이 세상에서 우리 육신이 먹고살 양식을 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인생은 먹어야만 살기 때문에 육신의 양식이 참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는 비교적 쉬운 문제이지만 옛날에는 그것마저 참 힘들었습니다. 온 식구들이 힘들여서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아도 그들이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떠나고 하나님의 뜻을 떠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가나안에 살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흉년이 들어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먹을 것이 많았던 애굽으로 내려가서 살다가 애굽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구출하셔서 가나안땅으로 다시 가는 여정에서 광야를 통과할 때 먹을 것 때문에 마실 것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일주일 길을 40년이나 훈련을 받으면서 통과해야 했습니다.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해 주셨지만 그 만나를 먹은 사람들도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먹고 사는 문제가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빈 들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야 하는 그들에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게 해주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고 왕이 되게 하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4-3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몸을 버리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먹어도 결국은 죽고 마는 이 세상의 양식이 아니라 영원히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영생의 양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와서 옛 언약을 따라서 이 세상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 세상에서 잘 살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어느새 변질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서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언약의 양식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육신은 비록 배부르지 못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빈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부름을 기억한 많은 사람이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했을 때 이를 거부하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소개하자 생명의 떡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생명의 양식을 깨닫지 못하고 다 예수님을 떠났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68)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먹을 것 때문에 마실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세상에서 좀 풍족하게 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믿고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본문 23~24절 말씀에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든 잔을 가지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잡혀가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며 죽을 것인데 그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해서 흘리는 피요,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대속의 죽임을 당하시면서 흘리는 피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과 복음서의 말씀을 인용한 고린도전서에서는 이 언약의 피를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 11:2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 있고 짐승의 피로 세운 옛 언약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는 짐승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면 지금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유월절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반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출애굽 때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마지막 재앙으로 초태생을 죽이는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 재앙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고 그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그냥 넘어갔다고 해서 유월절이라고 했습니다.

 

  양의 피를 흘려서 문설주에 바르면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옛 언약이었고 그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고 그 피를 믿는 자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피로 세운 새 언약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성전에서 소나 양 같은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인간들이 그 제물로 드리는 짐승처럼 죽임을 당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대신 짐승의 피를 흘리게 하여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구약성경의 중심은 유월절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신 것이고 그것을 유월절을 통하여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절기를 제정하고 이 절기를 지키며 이 절기를 늘 기억하면서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이 유월절 절기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과 같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는 것이 모든 성경의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피로 세운 새 언약을 생각할 때 즉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 피를 흘려 죽으셨음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그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죽지 않고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따라 세운 성찬 예식에 참여하기 전에 좀 더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너무나 귀한 예식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조금 선하게 사는척하고 그것 때문에 내가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피로 세운 새 언약은 아주 흉악한 죄인을 위해서 세운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흉악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참여하는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천주교에 다닌다는 사람을 가끔 만나는데 복음을 전하면 자신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우리 개신교 성도들을 비난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에서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잘도 말하는데 세상에서 사는 것을 보면 엉망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좀 그렇기는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는데 사는 것은 늘 옛날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성도답게 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정말로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보일 정도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흉악한 죄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지만, 우리의 몸은 아직도 타락한 육신의 몸을 입고 타락한 육신의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성찬 예식 앞에서는 적어도 피로 세운 새 언약 앞에서는 내가 흉악한 죄인임을 알고 고백해야 합니다. 나같이 추하고 더러운 사람을 위해서 피 흘려 죽어주신 그 사랑 그 은혜에 감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많이 배우고 열심히 노력해서 먹고살 만하니까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이만하면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은 일 좀 하고 바르게 살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니까 자신이 잘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 잘난 자신감 때문에 교만해져서 피로 세운 새 언약을 잊어버리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잘난 사람을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교만한 사람을 가장 미워하시고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그 잘남으로 인해서 그 교만으로 인해서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피로 세운 새 언약을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피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토록 살게 해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새 언약의 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

 

  본문 25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피로 세운 새 언약을 통해서 받을 축복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하나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라면 새 언약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피로 세운 새 언약을 통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이미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다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유월절을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죄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고 이미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그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가기 위해서 믿음을 붙잡고 지키면서 사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내가 죽어서 그 나라에 가는 날을 기다리면서 준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늘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 언약을 통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이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믿는 믿음을 꼭 붙잡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