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

 

 

 

빌립보서 48-9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은 믿음을 강조하기만 하고,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서는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의 삶에 대해서는 그리 강조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오해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는 것만큼 우리의 삶의 부분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들을 보면 한결같은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 전반부에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 그리고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구원을 얻은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를 믿는 성도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역사,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장차 주님 앞에 서야 하고, 그분께 칭찬과 상급을 받을 것을 소망하는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성도다운 삶을 통해서 내가 구원을 받은 성도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행일치(信行一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삶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함께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믿음을 가진 자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믿음은 삶의 모습에서 드러나고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2:26).

 

 

오늘 본문은 빌립보 교회의 성들이 진정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기를 원한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네 가지의 권면 가운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본래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조건문입니다.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라는 조건에 연결되어 주어지는 두 개의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생각하라(λογίζεσθε)”라는 명령이요, 다른 하나는 행하라(πράσσετε)”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성도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내용이 성도의 삶에서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환경을 따라 우리 각자의 삶에서 이보댜 훨씬 다양하게 나타나고 요구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모든 것을 우리가 다 생각하고 점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대표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덕목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그 덕목들 가운데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덕목들을 실천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고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 표현은 본문의 말씀을 이끌어가는 가장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즉 이 조건이 성립되어야 다음의 권면이나 명령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뒤의 권면이나 명령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이 조건에 합당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전제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ρετή)”은 우리가 정의하기에 어려운 단어입니다.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행하려는 어질고 올바른 마음이나 훌륭한 인격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는 은혜로운 행동, 곧음이나 올바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를 도덕적이거나 신앙적인 탁월함, 또는 선함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덕을 세운다라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이 덕을 세우는 자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에 비하여 탁월한 도덕성을 나타내야 합니다. 성도의 도덕적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세상의 도덕적 기준을 초월한 하늘의 기준에 합당한 인격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거룩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 머물러 버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림(παινος)”칭찬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종종 이 단어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칭찬을 가리킬 때 사용했습니다(2:29, 고전4:5). 하지만 여기에서는 교회 안의 성도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서 받는 칭찬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는 분명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도는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일꾼을 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일꾼으로 세움을 받는 자들에 대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6:3). 이 때 선택을 받고 세움을 받은 사람 일곱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저들의 믿음에 근거한 삶의 모습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는 무엇인가가 달라야 합니다. 저들보다는 더 탁월한 도덕성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저들보다 나은 인격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저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여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비난을 당하는 이유는 교회에 속한 자들이 세상 사람들의 도덕성이나 인격보다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저들에게 빛이 되지 못하고, 저들에게 사람으로서의 기준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라.

 

 

본문 8절에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또는 세상의 속에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통해서 덕을 세우고 칭찬을 듣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이것들을 생각하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하라(λογίζεσθε)”라는 말은 계산하다, 고려하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평가하다, 숙고하다, 명상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제시하는 여섯 가지의 내용을 신중하게 숙고하고 평가하여 그것을 삶에서 드러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삶을 통해서 덕을 세우고 칭찬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무엇에든지 참되어야(ληθής) 합니다.

이는 성도의 삶, 즉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의 기준은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국 성도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진리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무엇에든지 경건해야(σεμνός) 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존경을 받을 만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일반적인 사람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고상한 가치를 위해 사는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무엇에든지 옳아야(δίκαιος) 합니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공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의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행 여부와 상관이 없이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무엇에든지 정결해야(γνός) 합니다.

이는 깨끗하다 혹은 순결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정욕과 관계가 없이 순결하다는 것과 잘못되거나 거짓과는 관계가 없이 흠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구별하여 바쳐진 자로서의 거룩함과는 차이가 있는데, 성도 자체가 더러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더러움에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세상의 더러움에 오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해야(προσφιλής)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야기시키는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로부터 앙심을 품게 하지 말아야 하고, 적개심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애정을 끌어낼 수 있는 일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여섯 번째로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해야(εφημος)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좋은 소문,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적극적으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좋은 평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친절한 것과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것을 표현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반감을 주기 쉬운 말을 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마음을 다스린다고 할지라도 위에 나열된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일에 더 애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성령님을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능히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행하라.

 

 

본문 9절에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두 번째로 행해야 할 것은 바로 행하라(πράσσετε)”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실행하다, 종사하다라는 뜻과 성취하다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 자신을 통한 가르침, 설교, 지도, 개인적인 만남 등을 통해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계속해서 몸으로 실천하여 그것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론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실천이 가능한 구체적인 교훈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마땅히 행동으로 옮겨야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교훈한 내용들을 성령에 의지하여 실행에 옮김으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저들이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것들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되고 학습된 것들입니다. 이를 바울은 구체적으로 네 가지의 모습으로 제시합니다.

 

 

첫 번째로 배운(μάθετε), 받은(παρελάβετε) 것을 행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서 배우고 받은 것은 철저하게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성경을 통해서, 계시를 통해서,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이 생명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을 가르쳤습니다. 나아가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라면 마땅히 그 복음 안에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을 통해서 배운 복음을 삶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배우기만 하고 그에 따르는 삶이 없다면 이는 올바른 배움이 아닙니다. 바울을 통해서 배운 그 복음을 충성스럽게 고수하고, 확고하게 지키고, 그 배운 내용들이 삶을 지배함으로 변화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들고(κούσατε), (εδετε) 것을 행해야 합니다.

이는 바울 자신이 본으로 보여준 삶의 모습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가 그 삶의 과정에 어떤 일들을 만났는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바울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저들에게 자신이 본으로 보여준 삶을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주 이 ()”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바울이 말하는 이 본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하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말, 예수님의 행동, 예수님의 목적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에 의해 사는 사람, 그리스도를 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직접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그분을 직접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상을 찾습니다. 본문에서는 바울이 자신을 그 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1:1, 3:17).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배우고 받고 듣고 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야만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잘 배워야 합니다. 잘 받아야 합니다. 바르게 들어야 합니다.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우리의 삶에서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몸부림쳐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완성할 수 없기에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우리가 복음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행함으로 나타내는 삶을 살아갈 때,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평강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서신들의 말미에서 항상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라고 축복하기도 했습니다(16:20, 고후13:11, 살전5:23).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듣는 삶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보다 훨씬 더 성숙한 기준인 복음을 기준으로 하는 삶을 통해서 인정받고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모든 일에 참되어야 합니다. 경건해야 합니다. 옳아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사랑받을 만해야 합니다. 칭찬받을 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 즉 우리가 배우고 받은 복음에 충실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그 복음의 삶을 본으로 들려주고 보여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평강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든 광성의 성도들이 진정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온 땅에 드러내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출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