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시민권자
빌립보서 3장 20-21절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있는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의 시민들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영토에서 태어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당당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한민국에서 자랐고,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가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가진 존재임을 부정하거나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많은 권리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안에서 국민으로서 살아가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권력이 행사되는 모든 범위 안에서는 우리의 그 권리를 방해하거나 제약하는 그 어떤 존재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가 하면 우리는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의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4대 의무를 포함하여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의무를 감당함으로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서 국민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의무를 다하는 동안 우리의 권리는 마땅히 누릴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가진 국민이라면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가 나에게 부여한 의무를 다하면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의무와 권리가 공평하게 시행이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나라요, 아름다운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신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0절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시민권자라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하늘에 속한 자들이요, 하늘나라에 속한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민권(πολίτευμα)”은 ‘시민으로 행동하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로 ‘시민이 가지는 권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는 정복한 식민지에 로마의 법과 관습, 문화 등을 확산시킴으로 피정복국가를 확실하게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하지만 빌립보는 로마로부터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는 주전 31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싸운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승리에 공헌한 빌립보의 시민들에게 로마의 시민권과 자치권을 부여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수하에서 충성했던 군인들이 퇴역할 때, 이들을 빌립보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빌립보는 명실공히 로마의 시민으로의 모든 권리와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빌립보에 사는 시민들은 자신들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아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에 살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은 현실적으로는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고, 로마에 속한 시민이었습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었습니다. 마치 빌립보가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성도는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실제로 임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결국 그렇다면 하늘의 시민권자는 하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의 법률이나 도덕적인 기준을 따라서 사는 자가 아닙니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본질적인 하나님 나라의 법과 기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타락한 풍습이나 흐름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법을 따라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바울은 지금 저 반도덕주의자들의 방탕한 삶이 아닌 복음 안에서 복음으로 무장하고 악한 세력들과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우리 성도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마땅히 하늘의 시민권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가 영원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경주의 삶에서 나타내야 하는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늘의 시민권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영원하고도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영광스럽게 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때를 따라 베푸시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궁극적인 은혜의 때, 곧 구원의 때가 되기 전까지는 죄악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구원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마지막이 영원한 멸망이라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에스겔 37장에 등장하는 마른 뼈들처럼 아무런 소망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다만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며, 죄의 병기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제 구원을 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구원의 완성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끊임없이 달려갑니다. 우리의 영원한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이 달려감은 언젠가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는 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더 이상 죄와 그 결과가 우리를 얽매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경주하는 모든 성도의 영원한 소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20절에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1. 하늘로부터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의“거기로부터”는 분명 하늘을 가리킵니다. 그곳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좌정하시고, 장차 자기 백성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하여 천사장의 나팔을 앞세우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직접 그의 교회를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찾아내도록 역사하시는 곳입니다. 그 곳은 먼저 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곳입니다. 그 곳은 우리의 시민권이 소속된 나라로 장차 우리가 들어가아만 하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하늘로부터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신다는 것은 이 일이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임을 의미합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심이 인간과 상관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에 놓인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무덤에 장사되었던 예수님이 부활하심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심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마지막 날에 자기 백성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심이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위대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신 그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2.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구원하시는 자(σωτήρ)”에는 정관사가 없습니다. 즉 이 구원자는 여러 구원자 가운데서 구별되는 특정한 ‘한 구원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자는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대체될 수 없는 유일한 구원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교회가 구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실 이 구원자라는 표현은 구약에서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의 이 표현은 모든 대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궁극적으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 35장 4절에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라고 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구원하시는 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이 표현을 아주 드물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에 이 표현은 이방의 신이나 황제에게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을 구원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구원이라고 하는 단어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들어가게 되는 영원한 생명을 구원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바울에게 있어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하심을 받았지만, 아직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을 가리켜 “의인(義人)”이라는 표현을 더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표현을 종합하면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는 “구원을 얻고 있는 중에 있다”라고 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역사를 위해 구원이라고 하는 표현을 아껴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자로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자신이 시작하신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마지막 단계를 성취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야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그분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이 속히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주시기를 소망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3.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결국 성도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낮에나 밤에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최종적이고 영원하며 대체할 수 없는 소망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이 땅이 좋게 보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펼쳐질 그 구원이 완성된 세계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계를 미리 보고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계21-22장).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기다리십니까? 많은 재물과 명예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때를 위해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 사명을 감당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에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 날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칭찬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오실, 하지만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경주자의 길을 달려가야만 합니다.
Ⅱ.영광의 몸으로 변화할 자입니다.
본문 21절에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완성될 우리의 구원과 함께 우리가 누릴 영원한 영광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와(고전15장), 데살로니가 교회(살전4:13-18)에게도 설명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변하게 하시리라(μετασχηματίζω)”라는 표현은 ‘모양을 바꾸다, 변형시키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 속에는 미래의 일이지만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장차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안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죽지 않고, 쇠하지 않고, 썩지 않는 신비한 형제로 변화시키시는 일이 필연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요, 그 누구도 예측이 불가능한 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본문 21절에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역사(ἐνέργεια)”는 영어의 ‘energy’의 어원이 되는 단어로 ‘어떤 일을 이루어 내는 힘’을 의미합니다. 특히 여기에서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권능뿐만 아니라 그 권능에서 나오는 활동도 포함합니다. 단순히 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발휘되고 일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입니다. 이는 모든 만물을 자기의 발 아래 두고 그것들을 완벽하게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분은 결국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사실 그분은 온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창조하신 그분은 마땅히 그 피조물들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창조주의 능력이 성도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성도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인 그 무한한 능력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의 몸을 변화시키는 일 정도는 그리 큰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2. 가장 영광스러운 변화를 이루십니다.
본문 21절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낮은 몸”은 죄로 인해 타락한 몸입니다. 연약해서 쉽게 죄에 빠지는 몸입니다. 나아가 이 세상의 위험(질병이나 외적인 위협)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몸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비되는 “영광의 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킵니다. 이 몸은 분명한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이 세상의 그 무엇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 몸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변화되는 우리는 가장 낮은 몸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가장 더럽고 추악한 몸이 가장 고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형체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몸에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그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소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 그분은 모든 성도들은 당신이 부활하신 그 영광이 동참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가 고난을 이깁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가 이 땅의 것에 매이지 않고 하늘의 것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늘의 기준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우리는 비록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요 순례자일 뿐입니다. 이 곳은 우리가 영원히 사모하는 본향이 아닙니다. 이 땅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언젠가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떠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본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언젠가 돌아가야 하는 본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창세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믿음을 심어주시고, 우리의 입술로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의롭다 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하늘의 시민권자는 하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분은 우리를 가장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영접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원하기를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우리의 본질적인 신분을 기억하고,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다시 오시는 날 그 영광에 동참하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