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8.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68)

  본문 : 막 14:3-9

  제목 : 값진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은 여인.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선한 일 때문에 최선의 일을 놓치는 것이고 좋은 것 때문에 최고의 가치가 있는 좋은 것을 놓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한 것 좋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최선의 일 최고로 좋은 것을 구별할 줄 알고 최선의 최고의 것을 차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귀한 줄 알고 잘 사용하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만나고 있는 사람 가운데 최고의 가치가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사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는 어떤 여인이 최고로 가치가 있는 분을 만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을 그분이 하시는 최고의 일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이 왜 최고의 것인가를 살펴보고 우리도 그런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본문 3절 말씀에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베다니가 어디인지 나병환자 시몬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라는 곳에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여기 한 여인은 같은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요한복음에서는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그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같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가장 귀한 분을 만난 여인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 이 세 남매는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라버니 나사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잠시 기절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아니고 병들어서 죽어서 장사 지낸 지 4일이 지났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믿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이렇게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11:27)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시고 나서 오라버니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오라버니가 죽은 지 4일 만에 다시 살아나게 해주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만났고 구약성경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 예수님께 직접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가장 귀한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그 복음을 바로 듣고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그 귀한 것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님 믿고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하고 그런 정도로 삽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가 보니까 얼마나 귀한지 살펴보는 시간도 감격할 시간도 없이 그냥 살아갑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가 되시고 그분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다는 것을 알고 믿게 된 것을 저의 일생의 최고로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안내자가 없이 어두움 속에서 혼자 길을 찾으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가족도 멘토도 특별한 스승도 없이 모든 일을 스스로 찾고 결정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을 사는 것인지 잘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많은 지식 가운데 꼭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귀한 지식이 무엇인 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어떤 복을 받게 되는지를 알았습니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되지만 반드시 꼭 알아야 할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믿는다는 것은 우리 생애 최고의 것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흉악한 나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어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 그래도 좀 착한 모습으로 살지만 원래는 악하고 추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는 혼자 살아서 못된 짓도 많이 하고 살았고 젊어서는 사업한답시고 남의 돈도 빌려다가 갚지 못하기도 하고 남에게 피해를 많이 끼친 사람입니다.

 

  저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은 아직도 저를 흉보고 다닙니다. 나쁜 짓 한 사람이 목사 노릇한다고 깨끗해지냐고 비웃기도 합니다. 심지어 가까운 가족 친척들까지도 혹 어쩌다가 만나면 옛날에 잘못한 이야기만 하고 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하면 그것도 낱낱이 다 회개하지 못했는데도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짓는 죄 다 깨끗하게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인간들처럼 다 용서한다고 해놓고 생각나면 또 뭐라 하고 또 끄집어내서 욕하고 흉보지 않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1:18)라고 하시고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신 후에 다시는 과거의 죄를 지적하시거나 죄의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나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질책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대신 형벌을 받으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7-8)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남들이 흉보고 비웃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찰떡같이 약속하고도 내일이면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 듯이 약속을 파기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친하게 지내다가도 좀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등을 돌리고 원수가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한번 약속을 하시면 끝까지 지키시고 한번 구원해 주시면 다시 버리지 않으십니다.

 

  젊었을 때는 잘 나갈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별 볼 일 없는 늙은이가 되면 한 사람 한 사람 주변에서 멀어집니다. 친구도 동료도 가족까지도 조금씩 멀어집니다.

 

  나 자신의 몸도 나를 배반합니다. 정신도 점점 흐려지고 몸도 나약해집니다. 머리카락도 나를 배반하고 떠나고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립니다. 인생 마지막이 되면 호흡도 끊어지고 사람들이 나를 메어다가 땅에 묻어버리든지 불에 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한번 약속을 하시면 끝까지 지키시고 한번 구원해 주시면 다시 버리지 않으십니다. 호흡도 끊어지고 육신도 불에 태워져서 없어져 버릴 때 아무도 날 찾는 사람이 없을 때 아무 소망도 없을 때 그때 우리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오셔서 손을 내밀어서 나를 다시 살려주실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귀한 것들을 은혜로 주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을 주면서 생색은 많이 냅니다. 조금 좋은 것 주고 나서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표시가 안 나면 욕을 하고 다시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주시고 조건을 달거나 대가를 조금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은혜로 선물로 주시고 그것을 누리고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죄로 인해 사탄의 종노릇을 하면서 살던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로 이끌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만 있는 영원한 생명도 얻게 하셨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 나의 일생에 가장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온갖 좋은 것을 알고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로 귀한 것인 줄 믿습니다.

 

2) 가장 귀한 것을 바친 여인

  이 여인이 가져온 것은 매우 값진 향유라고 했습니다.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이라고 했습니다. 이 향유가 삼백 데나리온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꽤 비싸고 좋은 향유인 것 같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을 일 년 치 연봉으로 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가치로 따진다면 5천만 원에서 1억까지도 볼 수 있는 아주 귀하고 비싼 향유였습니다. 이 정도의 금액은 마리아나 그 가족에게 있어서 전 재산과도 같은 매우 큰 액수였을 것입니다.

 

  그녀의 오라버니는 오랜 병마와 싸우다가 죽었다가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살아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돈은 그들 가족의 전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싼 향유를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향유가 든 옥합을 완전히 깨뜨려서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가장 귀한 분을 만나서 가장 귀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요? 돈입니까? 가족입니까? 직업입니까? 생명입니까? 그것이 아무리 귀한 것이라고 해도 예수님께는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본문 4~5절에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라고 했습니다.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것을 본 어떤 사람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그 여자를 책망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어떤 사람을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라고 했고 요한복음에서는 그 제자 중 예수님을 잡아 줄 가룟 유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 여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책망한 사람은 예수님을 잘 아는 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제자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향유를 팔면 1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왜 허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그렇게 허비해 버리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했는지 그리스도라는 것은 알지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알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면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십자가와 부활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교회치고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하지 않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일들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여기 제자들의 이야기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똑바로 사는 일 선한 일 하며 바르게 사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바르게 살고 좋은 일 하면서 사는 것은 참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 때문에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무시한다면 선한 일 때문에 가장 중요한 최선의 것을 놓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허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헌금하는 돈으로 좋은 일을 하거나 잘 먹고 잘사는 일에 쓰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쓸데없이 교회에 헌금이나 하느냐고 비웃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헌금은 최고의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바치는 최고의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돈이 더 가치가 있고 능력이 있어 보일 때 돈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겨질 때 그 귀한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바칠 때 그것이 최고의 것입니다.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본문 6~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그녀를 책망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를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좋은 일을 했다고 평가하시면서 그들의 책망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늘 수시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이일은 이웃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해야 할 우리 성도들에게 매우 선한 일입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느냐 나보다 남을 위해서 사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 사랑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항상 이웃 사랑보다 하나님 사랑이 앞서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웃보다 더 소중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은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믿고 준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죽으신 후 그 장례를 위해서 귀한 것으로 예수님의 몸에 발랐던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부활의 신앙은 부활을 믿고 행한 그녀의 행동은 복음을 알고 믿는 모든 사람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부활 영생의 신앙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를 영어 성경에서 워십(Worship)이라고 번역하는데 가치와 연관된 단어입니다. 예배는 존경을 받을 만한 최고의 가치를 가진 우리 하나님께 우리가 가진 최고의 것을 가지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예배를 소홀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얼마나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이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가 점점 흐트러지는 것은 최고의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는 것을 점점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을 최고의 가치 있는 시간으로 알고 최고의 마음으로 최고의 겸손한 자세로 최고의 예물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외형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외모는 잘 다듬지 않고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님도 어떤 사람은 정장을 하지 않고 티셔츠만 걸치고 강단에 서서 신식 목사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그렇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요? 우리가 믿는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요? 여기가 지금 어떤 자리인데요?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려서 영광을 돌리는 엄청난 자리라는 것을 알면 그렇게 대강 적당히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한 여인은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분이며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일을 해주고 계시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을 그것도 조금도 아낌없이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엄청난 분이신지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지 늘 생각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에 있어서 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있어서 여러분이 가진 최고의 것으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