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하나님의 백성
빌립보서 3장 2-3절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성도 여러분!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특징적인 감정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미련(未練)”입니다. 이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미련은 언제나 과거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일에 매여 현재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미련은 필연적으로 후회를 이끌어 오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미련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부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우리의 정력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전진해야 하는 시점에서 망설이게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발걸음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모습에 얽매여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의 일에 미련을 두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연약했을 때의 일에 미련을 가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과거 우리가 뜨거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했을 때의 모습에 미련을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련에 붙들려 있는 우리의 모습으로는 결코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으로 성장해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면 우리는 과거의 모습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면, 새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가복음 5장 38절에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율법주의”에 대한 경고의 권면입니다. 이들은 과거 유대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 자신들이 신봉했던 율법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자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심으로 율법은 더 이상 우리의 구원에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궁극적으로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빌립보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이 이 율법을 가지고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들은 육체의 할례를 가지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는데, 바울은 이에 대해서 아주 격한 표현으로 경고하면서 빌립보 교회가 저들의 교훈에 흔들리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할례(割禮)가 무엇입니까?
“할례(מוּל,περιτομή)”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브라함 때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그를 부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창세기 17장 7~8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정리하면, “나는 너와 너희 후손에게 하나님 곧 왕이 되고, 너와 너의 후손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와 너의 후손은 내가 너희에게 준 이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 언약을 맺으신 후에 특징적인 표징을 하나 제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창세기 17장 10~1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결국 할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후손,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징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가운데 모든 남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출생 후 8일째 되는 날에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생식기의 포피를 벰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가정에 주신 아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 자녀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장성하여 자기 몸에 행해진 할례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할례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 할례의 진정한 의미가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할례에 담긴 의미는 사라지고 의식만이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편협한 선민의식만 남았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의 왕이라고 자부했습니다. 백성의 의무는 하지도 않으면서 왕께서 자신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할례를 받았느냐는 사실보다 할례의 의미가 나에게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할례에 담긴 고백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유일하고 영원한 왕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할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를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다면 할례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할례의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할례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할례를 대체하고 승화시킴으로 완성한 신약의 세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도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것을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과거 죄악에 얽매였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났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결국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고백함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새 사람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아간다면 내가 받은 세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Ⅱ.율법주의는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킵니다.
본문 2절에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삼가라(βλέπετε)”라는 단어는 본래 ‘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우리의 눈에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고 세심하여 관찰하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단순하게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적(知的)으로 확실하게 알고, 감정적으로 마음을 기울여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이 단어가 명령형으로 사용될 때는 ‘마음을 추슬러 조심하라, 주의하라’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결국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삼가라”라고 하는 것은 저 율법주의자에 대해서 관찰하고,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는데, 이는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 면밀하게 관찰함으로 저들의 정체를 바로 알고, 저들을 경계하며, 분명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 “삼가라”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실 헬라어 용법상 이 단어는 한 번만 사용해도 됩니다. 하지만 바울이 같은 표현을 세 번씩 반복하고 있는 것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이는 저 율법주의자들을 거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울이 사용한 표현인 “개, 행악하는 자, 몸을 상해하는 일”은 아주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의도적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들은 율법주의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은 저 거짓 교사들과 저들이 주장하는 거짓 복음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이 저들의 주장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고,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개(dog)”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개는 집 안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는 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배회하며 때로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는 사납고 독한 맹견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러한 개는 치욕과 경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또는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향하여, 흉악한 무리들을 향하여 “개”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사용했고, 특히 거짓된 교리를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유대주의자들에게 붙여져 사용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를 유대주의자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저들은 겉으로는 종교적인 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불의나 부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 율법주의와 교회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행악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악을 행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칭 사도라고 칭하면서 교회의 지도자 행세를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들은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지방을 순회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저들의 실상은 참된 복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복음을 파괴하며 거스르며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를 무시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항하는 악을 행하는 자들로, 스스로가 타락한 전도자요 거짓 사도임을 드러내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셋째는 “할례를 행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몸을 상해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도 바울이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본래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절단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할례의 행위 그 자체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은 저 율법주의자들이 행하는 할례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명령한 할례와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들이 행하는 할례를 이방 종교에서 행하는 신체를 상하게 하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습니다(왕상18:28). 저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할례를 종교적인 차원에서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행위로 다를 바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임을 자부하면서 육적인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의식적인 행위만을 중요시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율법에 나타난 대로 자기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할례를 주장하면서 몸의 일부분을 베어버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갈5:12). 따라서 저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먼저 내세우며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자들로 교회가 반드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교회 안에 이러한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개”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뜻대로 해석하여 복음의 참된 의미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여 성도들을 현혹하는 “행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그 깊은 의미는 버리고 세상적인 것을 통해서 그 말씀을 해석하려고 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몸을 상해하는 일”을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바른 복음에 서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바른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면 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고, 바로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어떤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거짓 복음에 현혹되지 않고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Ⅲ.누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본문 3절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할례파(περιτομή)”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언약의 증표로서의 할례가 지닌 의미를 바로 아는 자들입니다. 또한 언약 백성으로서 언약 백성답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에서도 “우리(ἡμεῖς)”라고 하는 대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복음에 바로 서 있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즉 바울의 “나의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자들입니다(3:1). 바울은 여기에서 “우리야말로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아주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들은 2절에서 말하는 “몸을 상해하는 일을 행하는 자들(κατατομή)”과는 대조되는 자들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앞에서 경고한 내용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즉 율법에 따른 행위만을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은 진정한 할례파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진정한 할례파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할례파의 세 가지 특징을 설명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봉사(λατρεύω)”는 유대인들이 공적인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말은 성령 안에서 예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할례파는 전통이나 형식에 얽매이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요4:24).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는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저들도 그 자랑하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늘 죄의식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할례파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인 됨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오직 구원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든 만족과 소망을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찾는 자들입니다(갈6:14).
셋째는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의 “육체(σάρξ)”는 ‘인간의 몸이나 성품’, 더 나아가 ‘본래는 악하지 않으나 죄의 공격의 목표가 되고 악의 지배하에서 희생물이 될 수 있는 저급한 본성’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구원에 대한 소망의 기초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떠난 모든 것을 총칭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재능이나 의식. 특히 본문에서는 저 율법주의자들의 할례나 율법에 근거한 도덕성 등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유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의지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 인정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죄로 인해 부패한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할례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가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의식적인 예배가 아닌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적인 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고 그분만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자, 믿음 안에서 산 삶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그분만을 예배하는 자가 참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만이 교회를 바로 세워나가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있습니까? 나는 그 믿음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 언약의 증표를 내 마음에 분명하게 지니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이를 복음을 통해서 알았고, 믿었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 믿음을 흔들려고 하는 그 어떤 세력도 단호하게 배격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참된 복음에 집중하고, 그 복음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그 복음을 자랑하고, 그 복음에 합당한 사람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참된 믿음과 고백과 삶을 통해서 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