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마태복음 1616-20

 

시몬 베드로가 對答하여 이르되 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對答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血肉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磐石 위에 내 敎會를 세우리니 陰府權勢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天國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弟子들에게 警告하사 自己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023년의 광성교회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먼저는 지난해까지 담임목사로 섬겼던 양향모 목사님이 이제 일선의 사역에서 은퇴하셨습니다. 하지만 비록 은퇴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역에서 손을 놓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행정적인 문제일 뿐이지, 하나님 앞에서 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록 일선에서 은퇴하셨다 할지라도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목사로서의 사명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사역을 감당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교회가 더 많은 기도로 후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담임목사가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광성교회의 존재 의미와 사명은 중단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이 광성교회를 짊어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주관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앞길은 오직 주님만이 주장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 협력하면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국 2023년부터 우리 광성교회는 지금까지의 길을 이어가면서도, 또한 새로운 길을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서 우리는 교회여, 영광을 회복하라라는 표어를 정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참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 광성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복음의 영광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에 우리 광성교회의 성도들을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굳게 믿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통하여 그 영광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이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입니다. 이는 부부를 중심으로 그 자녀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기관입니다. 둘째는 교회입니다. 이는 가정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기관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가정이 다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아주 특별한 기관입니다. 이는 영적인 기관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기관입니다. 셋째는 국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하신 기관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가장 큰 사명은 가정을 보호하고, 교회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기관 중에서 가장 독특한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가정은 혈육으로 맺어졌습니다. 국가는 일정한 지역 안에서, 하나의 헌법에 따라 다스려집니다. 그런데 교회는 혈육으로 맺어진 기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정한 지역으로 묶인 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입니다. 남녀와 노소를 불문합니다.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도 않습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기관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기관입니다.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는 기관입니다.

하지만 오늘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 보통 성도라고 불리는 자들도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를 건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교회를 보험처럼 여기는 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흔들립니다. 성도들의 교회 생활이 혼란스럽습니다. 자신이 속한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나 자부심도 약합니다. 그 결과 믿음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우리가 확실한 교회 공동체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핵심적인 구절은 본문 18-19절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세운 주님의 것입니다.

본문 1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신약에서 처음 등장하는 단어 교회(κκλησία)”가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복음서에서도 오직 마태만 3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18:17). 그런데 이 단어는 ‘~으로부터(ἐκ)’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와 부르다(καλέω)’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결합된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문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가 신학적으로 해석해서 교회란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란 근본적으로 어떤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직이나 예배의 형태를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철저하게 공동체입니다. 즉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 자들의 모임 그 자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또한 이 교회는 성전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분명 건물입니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재건한 스룹바벨의 성전, 예수님 당시에 헤롯이 중건한 헤롯 성전과 같이 눈에 보이는 실체적인 건물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실체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그 백성들로 구성된 공동체일 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이 그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인이 있습니다. 그 주인은 바로 그 존재물을 세운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1:1). 그리고 그 모든 만물에 대해서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주인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현실적으로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주관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고 한 교회를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교회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교회를 내 교회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향하여 내 백성이라고 부르셨던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부름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성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직접 부르셨다면, 이제 신약에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는 그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구속하신 그 백성들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으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성부 하나님이 영원 전에 선택하신 그 백성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완성하신 구속 사역의 열매를 그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바로 이들이 믿음으로 그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요, 그 공동체의 일원인 우리는 그분의 종일 뿐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성령을 보내시고 하나의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은 것 같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말씀 앞에 나 자신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다스려 가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 지체인 한 개인은 공동체의 의견을 따라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어떤 개인의 사상이나 주관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지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교회의 공동체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고, 또한 그 뜻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잘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는 힘이 있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교회의 지체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교회 공동체의 일원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택한 자들 위에 세워졌습니다.

본문 1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전통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통적인 해석이 가진 한계와 그럼으로 인해 그 해석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가진 진정한 의미 가운데 하나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의 앞에 있는 내용을 보면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이 나오게 되는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그리고 이에 대한 제자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그 때 예수님이 다시금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그 때 베드로가 앞에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16:13-16).

사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복음에서 여러 곳에서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149에서 나다나엘은 예수님 앞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요한복음 429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27절에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신앙고백들은 베드로가 고백한 내용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과거에 그러한 신앙고백을 들으셨을 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본문의 말씀을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어긋난 성경관을 버리고 일어난 종교개혁자들의 해석을 따라 우리 기독교에서 전통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신앙고백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교회가 하나의 신앙고백을 한다고 하는 것은 교회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교회 안에서 신앙고백이 다르다면, 이는 하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가운데 이 사도신경의 내용에 대해서 나는 그렇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내 신앙은 이 고백의 내용과 다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사람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 사람과 같은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같은 하나님이 아니고, 같은 믿음이 아닌데, 어떻게 그 사람과 같이 예배할 수가 있겠습니까?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성경의 말씀을 듣고. 같은 찬양을 부르지만, 함께 예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교회가 하나의 신앙고백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 즉 하나의 신앙고백을 토대로 합니다. 우리가 이 고백을 부인하거나 부정한다면 우리는 바른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이 동일한 신앙고백을 토대로 해서 같은 신앙과 같은 고백, 같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교회, 한 몸의 지체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이 여기에서 멈추어 버리면 앞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무엇인가를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의 그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직접적으로 지칭하셔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반석은 같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앞의 말씀과 뒤의 말씀 사이에 그리고(κα)”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앞과 뒤가 같은 대상임을 의미합니다. 즉 베드로가 반석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를 가리켜 반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석 위에 주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단독적인 입장이 아니라 제자들을 대표하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고백은 베드로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제자들 전부의 입장인 것입니다. 물론 그 가운에는 포함되지 않는 제자가 있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 예수님은 베드로를 지목하셨지만, 실상은 제자들 전부를 지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교회의 기초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훗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20절에서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모퉁잇돌이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교회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저 제자들의 사역, 즉 장차 저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결국 오늘의 교회는 바로 이 제자들의 사역 위에 세워졌습니다. 저들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증인이 되어 그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이후에 또 다른 많은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었고, 오늘 우리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하나의 신앙고백을 가진 교회입니다. 이전에 원로목사님이신 양향모 목사님이 위대한 믿음, 진실한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사도신경을 강해하셨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고백하신 신앙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하고 깨닫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신앙과 그 고백이 우리 교회의 생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먼저 복음을 듣고,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앞선 우리의 선배들의 땀과 눈물과 기도 위에 세워진 교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저들의 땀의 열매로, 기도의 응답으로 오늘의 교회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우리의 땀과 눈물과 기도로 이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우리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광성교회는 다른 이들의 교회가 아닌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 교회입니다. 비록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실제적인 또 다른 주인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기도로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통해서, 우리로 인해서, 우리 때문에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교회를 사랑하고, 우리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주신 권세를 가진 기관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엄청난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권세를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입니다.

본문 18절에서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음부(陰府)”라는 단어는 불가시적인 것, 볼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를 스올(שְׁאוֹל)”이라는 단어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곳을 가리킵니다. 또한 권세(πύλη)”()’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원문을 따라 번역한다면 그리고 음부의 문들이 그것(교회)에 대항하여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은 단순히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읍의 문이나, 성전의 문, 또는 견고한 감옥의 문과 같이 특별한 문을 가리킵니다. 이 문들은 그 문에 대한 권세를 가진 자만이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입니다.

또한 본문에 나타난 음부의 권세죽음의 권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죽음에 대한 교회의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말씀이 됩니다. 비록 사탄의 권세 아래에 놓인 세상이 교회를 극심하게 박해한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교회의 생명력과 영원성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능은 창조주의 권능입니다. 따라서 인간에 비해서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인 사탄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사탄은 결코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죽음의 권세도 교회를 정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승리를 보장받았습니다. 비록 교회가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사탄은 어찌하든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온갖 계략을 펼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우는 사자처럼 성도들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이 세상은 교회를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저 사탄과 그 세력들의 공격 앞에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권세입니다.

둘째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는 권세입니다.

본문 19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주리니라고 하는 것은 허락하다, 맡기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교회에 천국의 열쇠를 맡기실 뿐만 아니라 그 열쇠를 사용할 권한까지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청지기 개념이 반영된 것으로, 천국의 열쇠를 맡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권한으로 교회의 문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교회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이 주어졌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오직 주인의 뜻을 따라, 주인이 원하는 대로 그 열쇠를 사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천국의 열쇠를 맡은 청지기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주님의 이 명령을 받은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 교회가 세워졌고 발전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곳에서는 결단코 교회의 문(천국의 문)이 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매고 푸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통해서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것입니다. 즉 복음은 전파하는 것, 바른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천국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 것은 그 천국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의 구성원들에 대한 권징의 시행입니다. 교회는 분명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때로는 잘못된 생각과 결정, 그리고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교회는 이를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모인 무리가 아닌 철저한 신앙고백에 입각한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그 신앙고백을 흔드는 그 어떤 도전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교회는 바른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책임과 함께 그 복음을 공격하려는 사탄의 도전으로부터 파수(把守)해야 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단순한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기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기관입니다. 또한 교회는 엄청난 권세를 가진 기관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교회에만 주신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의 권세,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의 권세가 있습니다. 복음을 통하여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권세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또한 복음을 순결하게 지키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바로 이 권세를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이 권세를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주님의 교회임을 고백하며 증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고백하고 인정하는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사도들의 뒤를 이은 제자들이 땀과 눈물과 기도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주님이 주신 권세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여야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여야 합니다. 우리의 계획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계획을 위한 교회여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교회여야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서 큰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