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48)

  본문 : 막 11:19-25

  제목 :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19.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살펴본 성전정화 바로 앞의 12절에서 14절 말씀과 연관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오시는 길에 몹시 시장하셨던 모양입니다. 마침 멀리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시고 잎사귀가 무성하니까 열매도 좀 있으려니 하고 가까이 가 보았더니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나무에게 하신 그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시장하셨나, 그렇다고 죄 없는 나무를 저주하실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누구도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전정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에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서 그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강도의 소굴로 변해버렸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다음 날 일어난 일입니다. 그날 저녁에 성 밖으로 나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성안으로 들어오다가 보니까 어제 예수님께서 저주하셨던 그 무화과나무가 아예 뿌리째 말라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하셨고 그 믿음대로 될 것을 말씀하셨고 그 믿음들 가지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린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고 말라 죽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말에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인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본문 19절에서 21절에 “19.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예수님께서 저주하셨고 그 무화과나무는 그 저주를 받아 뿌리째 말라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은 이런 이야기를 왜 성경에 기록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한 것은 이 이야기가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아니라 무화과나무가 상징하는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였기 때문에 이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나라가 마치 이 무화과나무같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 중간에 성전정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간상으로 진행되는 대로 기록했지만 특별히 성전정화 사건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치 잎만 푸르고 열매 없는 이 무화과나무와 같아서 뿌리까지 말라버릴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저주가 이스라엘을 저주하시는 것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성전정화 사건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나를 살펴보았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그 의미를 모르고 형식적으로 제물만 바칩니다. 성전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전을 돈 욕심 때문에 강도의 소굴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한탄하시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특별히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보기에 철저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 기도하는 일 선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속에는 정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선한 열매는 없는 위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도 그런 위선적인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아주 심한 말로 꾸짖으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23:13)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가르쳐서 각종 계명을 지키게 하고 좋은 예물로 제사를 드리고 각종 절기를 잘 지키고 선한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외면했습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면서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버리셨습니다. 성전도 제사도 제사장도 서기관도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다 버리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을 놓쳐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점점 그런 버림받은 유대교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당을 유대교 성전처럼 화려하게 짓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만 정작 거기 있어야 할 십자가의 복음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빙자해서 복을 받고 이익을 챙기고 세상에서 잘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원자로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구원을 영생을 영원한 천국을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잎만 푸르고 열매가 없어서 예수님께 저주를 받아 말라죽은 무화과나무 같은 사람이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외형적으로는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정작 구원을 얻는 바른 믿음이 없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본문 2223절에 “22.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보고를 드리자 예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고 좀 엉뚱한 말씀으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말랐다거나 그것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따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큰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져지라고 해도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무엇을 명령하든지 그렇게 믿고 의심하지만 않으면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해서 이 세상의 엄청난 일도 믿음으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이 믿음으로 땅을 계약해서 사고 큰 교회당을 짓고 성공적으로 목회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다고 간증하며 다닙니다. 그런 간증을 들으면 나는 참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사느냐고 비난하는 목소리로 들립니다.

 

  성도들도 믿음을 그런 믿음으로 활용하여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모든 일을 믿음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믿음의 법칙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그럴듯한 철학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은 우주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주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한 대로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여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못 살겠다, 하고 다니면 그가 말한 대로 힘들게 살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는 이깟 것쯤은 이길 수 있어 나는 바로 일어설 거야 노력하면 더 잘살게 될 거야 하고 다니면 그 말대로 회복하고 잘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이 씨가 되어서 그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인 일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할 일만 늘어납니다.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은 더 큰 감사 거리가 생기게 되고 더 큰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란 그런 믿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이 어떤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인지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믿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것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다 잘 될 것을 믿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 어려운 세상의 문제가 다 해결되어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은 늘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 계속되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해주실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타락한 인생은 범죄한 인생은 이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죄에서 멸망에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과 가장 가까운 말씀이 요한복음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 1-3)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다고 걱정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근심 걱정이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우리를 데리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교리에서 믿음이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 믿음의 능력은 산을 바다에 던지는 것보다 엄청난 능력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깨끗한 의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이 믿음에 있습니다. 사탄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이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게 되는 능력이 이 믿음에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본문 24~26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믿음과 기도를 연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믿음대로 된다고 하시면서 거기에 기도도 같은 맥락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도 그 믿음이 있으면 그 기도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믿으면 믿음대로 되고 또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믿기만 하면 되고 믿음으로 기도만 하면 되니까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기도한다고 다 그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이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기도를 잘못했나? 내가 믿음이 부족한가? 지금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인가? 응답이 없는 것이 내게 더 유익해서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해보셨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기도가 많을 것입니다응답해주면 우리에게 더 해를 끼치는 것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아니라서 응답받지 못한 기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적인 우리의 삶에 이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와 우리의 관심사가 아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 관심을 더 많이 두고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런 기도의 응답을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보다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한 삶에 더 많은 관심을 두십니다. 세상에서는 오히려 가난하게 살고 힘들게 삶으로서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고 그 천국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십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 잘 삶으로서 천국에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시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기도는 천국을 향한 기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앞서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또 성전정화를 하실 때 호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호산나의 뜻은 우리가 당신께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구원에 대한 호소가 성전에서 해야 할 기도라고 했습니다. 이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가 믿음의 기도이고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세상을 향한 기도는 그것이 꼭 이루어질 줄을 믿는 기도라고 해도 응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향한 기도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위한 기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동반한다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에 관해서 많이 인용하는 성구는 마태복음 77절의 말씀일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그런데 이 말씀에서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고 어디에 들어가는 문을 두드리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다 된다고만 생각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앞뒤를 잘 살펴보면 그런 세상 것을 찾는 기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라는 기도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7:14)라고 하셨는데 그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응답받는 믿음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영생을 영원한 천국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구원을 향한 이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믿음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또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을 추가로 주셨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도 용서해 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들춰내서 정죄할 것이 아니라 덮어주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모든 성경 말씀은 그것이 율법이든지 제사든지 이스라엘의 역사든지 예언이든지 그 목적지는 죄의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흉악한 죄인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가가 중심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절인 26절은 없음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그러나 너희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해 주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서 말라 죽게 된 것을 통하여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의 무익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구원을 영생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