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5. 성탄감사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
본문: 요 21:18-19
제목: 예수 나를 오라 하네.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박목월이라는 시인이 쓴 “이별의 노래”를 잘 아실 것입니다.
1.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2.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3.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있습니다. 박목월이 40세쯤 되던 해에 서울대학교 교수였는데 예쁜 여 제자와 눈이 맞아서 가정도 버리고 서울대학교 교수직도 버리고 제주도로 도망가서 살았습니다.
도망 와서 알콩달콩 잘 살기는 하는데 사랑이라는 것이 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라서 여름에 도망을 와서 이제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오는데 입을 옷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아내가 어떻게 알고 제주도까지 물어 물어서 찾아왔습니다. 다짜고짜로 머리채를 잡고 욕을 퍼부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도 않았고 그 손에는 큰 보따리 하나와 봉투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보따리에는 겨울을 날 수 있는 옷과 봉투에는 먹고살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베풀고 말 한마디 없어 돌아가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 박목월은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구나, 라고 깨닫고 이 시를 써서 여제자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자기 딴에는 사랑을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제주도에 와서 멋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불륜이고 죄를 짓고 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불륜의 삶을 청산하고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알콩달콩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우리도 불륜의 삶을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죄악 된 세상이고, 이 세상에 사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우리 마음대로 죄를 짓고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좋은 일도 하면서 살고 보람된 일도 하면서 살고 잘 살아왔는데 이것이 불륜이고 이것이 죄악 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멸망으로 영원한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죄를 용서받을 길을 열어주시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제 시 한 편 남기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버지가 기다리는 우리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러기는 울어대고 우리도 돌아가야 할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오늘 본문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베드로 사도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곧 승천하실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은 상태에서 인간의 언어로 나누는 마지막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젊어서는 네가 네 마음대로 입고 싶은 옷도 입고 가고 싶은 곳도 가고 하겠지만 늙어서는 옷을 입는 것도 남들이 입혀주는 것을 입어야 하고 어디를 가는 것도 네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가라는 대로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기록한 요한은 이 말씀을 해석하기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에 달려서 순교할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편에서 이 말씀을 “예수 나를 오라 하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도 예수님께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의 모든 것이 다 이런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를 부르시는 데 어떤 사람은 아예 이런 부르심을 듣지 못하고 삽니다. 그 사람들은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들을 귀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 듣기는 듣는데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반항심이 있어서인지 왔다가 갔다가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 부르심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고 선뜻 그 부르심에 따라나섭니다. 심지어는 세상에 아끼는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늘 나를 부르고 계심을 알고 한걸음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오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탄절인데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은 제가 위임목사로서 마지막 설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부르러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을 축하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면서 살 것인가를 다짐하는 것도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젊어서와 늙어서가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18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생애를 젊어서와 늙어서로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분은 단순히 나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보 신앙과 성숙한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를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이전과 이후를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이전과 진리를 알고 난 이후를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 젊어서가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의 경우 젊어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네가 젊어서는”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한 신앙 고백들에서 그의 믿음의 성숙해감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성숙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이전의 그의 신앙고백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런 고백은 초보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좋아하는 것은 저의 신앙을 되돌아보면 이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런 과정을 따라 신앙이 성숙하기도 하고 아직 초보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1)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 소이다”(눅 5:8)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는 전문가였습니다. 그날따라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예수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해서 순종했더니 두 배에 넘치도록 잡았습니다.
그때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한 말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괜찮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서 초라한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은혜의 복음 앞에 가까이 나가지 못하는 것은 나 스스로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요즘처럼 이렇게 잘 살고 많이 배우고 좋은 일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당신이 죄인이라고 하면 화가 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아픔도 주시고 질병도 주시고 코로나 같은 어려움도 주시고 사업도 망하게도 하시고,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게 하십니다. 그럴 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예수님께로 나오는 첫걸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오라고 하시는 것은 이런 죄악된 세상에서 살다가 영원한 지옥으로 달려가는 나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죄에서 벗어나서 예수님께로 오라는 부르심입니다.
(2)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 베드로의 두 번째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기도 하고 많은 환자를 고쳐주셨을 때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떡이라고 하시자 그 많은 사람이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대답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은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이 세상의 축복에 매달려 있는 나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없는 교회들이 이 땅에서 잘 산다는 축복을 선언하고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 물음 앞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라고 고백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베드로의 세 번째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사역이 다 끝나 가실 때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한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고백을 최고의 고백으로 인정을 하셨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고 그 신앙고백 위에다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 천국열쇠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이런저런 여러 가지를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 중에서 가장 귀한 믿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 가장 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가진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부르시는 부르심은 이런 바른 믿음의 고백으로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으로 부르심입니다.
이정도의 신앙고백이면 대단한 신앙고백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볼 때 여기까지의 신앙고백은 젊었을 때로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의 부르심과 응답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부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응답하면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주시는 부르심이기 때문에 정신이 똑바른 사람은 응답할 수밖에 없는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고백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른 목적이 자신의 출세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왕이 되셨을 때 그 뒤에 있다가 한자리하고 싶은 욕심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런 고백을 하고도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셨을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자기가 불리할 때 언제든지 그 믿음을 버릴 수 있는 연약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고백들을 젊어서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늙어서가 있다고 했습니다.
늙어서의 고백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의 고백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 21:17)라고 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하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입니다.
나의 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손해가 오고 목숨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마음이 있을 때 그 고백이 진실한 고백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때 그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내 속에 있는 욕심을 채우는 일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내 속에 있는 쾌락을 채우는 일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내가 가진 재물보다 내 사랑하는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스스로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고백이 있습니다. 쿼바디스라는 옛날 영화를 보신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고백이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요한복음 13장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한 말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요13:36)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 따라오리라고 하신 말씀이 예수님 부활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에 박해가 시작되자 그 박해를 피해서 로마를 도망 나오고 있는 베드로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로마로 들어가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 “네가 버리고 나온 로마로 내가 다시 들어간다.”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에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들어가서 십자가에 그것도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고 역사가들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때를 살고 계십니까? 아직 젊었을 때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 해도 엄청난 복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고 믿음이 성숙해가시면 이제 늙어서의 삶 즉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해도 예수님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본문 19절에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젊어서는 네 마음대로 살았지만 늙어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은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 위대한 줄을 알고 진실한 고백을 한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물론 진실한 고백을 한 모든 사람에게 그런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순교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가는 특권입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고 아무에게나 허락하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란 희생과 헌신의 길입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남은 삶은 주님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목회하는 동안 두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늘 고백하는 신앙고백인 사도신경 강해 설교인 “위대한 믿음 진실한 고백”이라는 책입니다. 또 양용근 목사님의 생애와 목회 그리고 순교의 역사를 기록한 “예수 나를 오라 하네”라는 책입니다.
“위대한 믿음 진실한 고백”을 통해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이 믿음이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을 능력을 가졌습니다.
사탄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멸망할 죄인이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비참한 인생이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게 하는 능력입니다.
홀로 태어나서 갈 길을 몰라 외롭게 헤매는 인생에게 진리의 빛이 되어주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위로하심과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이 믿음 안에 있습니다.
이 사도신경 강해는 로마서와 에베소서를 강해 설교한 후에 복음의 눈으로 사도신경을 해석한 설교입니다. 여러 교회에서 이 책으로 설교나 강의를 했습니다. 많은 목사님이 이 책을 활용해서 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라는 책은 “진실한 고백”에 관한 책입니다. 이 믿음이 너무나 위대한 것이지만 그 믿음을 진실하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른다고 한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한 고백을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만 해도 진실한 고백으로 인정해주실지 순교에 이르기까지 믿음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믿음이 있다고 인정해주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믿음을 따라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고 좀 더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고 최선을 다하여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우리의 충성도가 믿음이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일에 사용이 된다면 좀 더 열심을 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 커트라인 경계선에 서 있다가 불합격 받을지 염려하지 말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넉넉하게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진실한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질문에 예라고 응답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그 의미를 잊지 마시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예수님을 따르는 이 일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임시로 사는 나그넷길임을 잊지 마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이 길을 끝까지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