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역사의 주인인가?

다니엘 4장 28-37절

 

(단 4:28)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단 4:29)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단 4: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단 4: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단 4: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단 4:33)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단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단 4: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단 4: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단 4: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다니엘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아마도 이 사건의 시간적인 배경은 느부갓네살의 통치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통해서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보이신 하나님의 뜻을 역사의 현장에서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는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누가 역사의 주인인가?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본문 1-2절에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에게 내리는 조서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서의 목적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조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고백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왕입니다. 그는 여호와 신앙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그가 비록 2장과 3장에서 엄청난 경험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는 아직도 이방신을 섬기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이러한 조서를 내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우상을 완전히 버리고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는 바벨론이라고 하는 당시 최고의 제국을 통치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세운 이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가 아무리 강력하고 많은 나라를 점령했다 할지라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 큰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지만 세월 앞에서 자신은 유한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는 영원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왕,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이렇게 높이고 찬양하게 되는 분명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4절 이하에서 나타나는 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이 꿈은 일반적인 꿈과는 달랐습니다. 본문 5절에 꾸고(חֲזָא)”라는 단어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보았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왕의 꿈은 심리학자들의 주장대로 자신의 소망하는 바가 나타난다든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이 성취된 것처럼 나타난다든지, 자신이 두려워하는 일이 나타난다든지 하는 내적 정신의 반영이 아닙니다. 이는 초자연적인 권능을 가진 제삼자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보여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결국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은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계획이 무엇인지를 꿈이라고 하는 통로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꿈은 느부갓네살 왕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외적의 침입도 아닌, 백성의 반란도 아닌 침상에서 꾼 꿈이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두려움과 번민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왕은 자신이 꾼 꿈에 대해서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꿈이 자신의 운명과 관련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막연한 일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2장에서와같이 왕은 나라 안의 지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꾼 그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저 지혜자들은 왕이 꾼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석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2장에서는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하라는 왕의 명령에 꿈의 내용을 알려달라고 변명했던 저 지혜자들이 이제는 꿈을 이야기해 주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세상의 지혜가 가지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를 이 세상의 지혜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이 아무리 깊어도, 세상의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역까지 해석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어느 강력한 나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뛰어난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작은 사건 하나일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서는 결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잠언 16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뛰어난 계획을 세웠을지라도 하나님이 이루시지 않으면 헛된 계획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태복음 10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나는 아주 작은 새 한 마리의 운명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계획도 없이 발생할 수 있겠습니까?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 그 어떤 이유로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혼란스럽습니다. 과연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 하나님은 과연 무슨 일을 하고 계셨을까? 하나님은 왜 이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을까? 하는 질문들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도, 아무리 우리가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 사건들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그 모든 역사에서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적은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그분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선한 결과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판하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 깨닫도록 하실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결국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을 찾았습니다. 아마도 이는 2장에 등장하는 사건, 즉 과거 자신이 꾼 꿈과 그 해석을 알려주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라고 말했습니다(9).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뛰어난 지혜와 총명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면서 그 앞에 자신의 심각한 문제를 내놓고 있습니다.

본문 10-17절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꿈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나무에 대한 것입니다. 땅의 중앙에 크고 아름다운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는 열매도 많아서 만민이 먹고, 들짐승들과 새들까지도 그 나무를 통해서 먹을 것을 얻고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나타난 순찰자가 그 나무를 잘라버리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나무가 잎도 없고, 열매도 없어서 모두가 떠나가게 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를 완전히 죽이지 않고 그루터기만은 남겨둡니다. 그리하여 거대하고 아름답던 나무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로 겨우 생명만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꾼 꿈의 두 번째 부분은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람의 삶이 아닌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일곱 때를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꿈의 내용을 들은 다니엘이 심히 놀라고 번민했습니다. 여기에서 놀랐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몸을 떨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어이가 없어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공포와 전율로 인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이 놀람과 번민은 그 꿈의 내용을 해석할 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변과 관계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에게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9). 그러면서도 다니엘은 그 꿈의 의미를 왕에게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 꿈은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24). 그리고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왕과 왕국을 포함한 모든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해석한 왕의 꿈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합니다. 먼저 왕이 본 그 크고 아름다운 나무는 느부갓네살 왕을 의미합니다. 본문 22절에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느부갓네살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즉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건설하고 통치하는 왕이었습니다. 그 왕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그는 그 제국 내의 정치와 경제, 백성의 복지를 책임지는 절대 권력자였습니다. 결국 이 느부갓네살 왕의 영향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과 짐승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왕의 권세는 하늘도 높다고 여기지 않을 만큼 커졌습니다. 그는 신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의 위엄과 권세가 막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의 권세가 이토록 커지자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본문 30절에 보면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왕궁에서 자신이 이른 왕국을 보면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함으로 인해 자신의 교만함을 드러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사람에게 있는 본질적인 마음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조금만 형통하면 그 일이 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자랑합니다. 실상은 그가 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역사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까지도 자신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이요, 가장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만은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25절에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의 두 번째 부분에 대한 해석입니다. 다니엘은 꿈에 나타난 사람 즉 사람들에 의해서 쫓겨나서 짐승과 같은 삶을 살게 되는 당사자가 바로 느부갓네살 왕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왕이 왕궁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들에서 들짐승처럼 살 것입니다. 그는 짐승처럼 생각하고, 짐승과 같은 행위를 하면서 살 것입니다. 밤이 되면 마땅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야생에서 잠을 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가 비록 한 때는 그 강대한 나라의 절대적인 통치자였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조차 없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느부갓네살이 이렇게 되는 것은, 오늘날 정신의학적으로는 정신착란증이라고 하고, 심리학적으로는 늑대인간(Lycanthropt)”이라고 불리는 병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사람이 자신을 늑대라고 착각하는 질병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정확하게 이 병을 앓았는지를 확실하지 않지만, 이와 유사한 증상을 가지고 짐승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느부갓네살이 어떤 병에 걸렸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진행하시는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당신께서 계획하신 역사에 대해 말씀을 통해서 미리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통해서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통해서 그 꿈을 해석함으로 인해 하나님이 그 역사를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드러내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세세하게 하나까지 다 가르쳐주지는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주권을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특히 자기 백성의 구원과 관련된 내용은 역사의 점진성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자세하게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은 장차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오시고, 자기 백성을 위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실 것에 대해서 풍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이 계획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공개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흐릿하고 미약하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점점 더 정확해집니다.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구약의 그 모든 말씀이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영적 눈이 어두워서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분이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야이심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당신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모든 역사는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3:7).

오늘 우리는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 뜻이 이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 되었음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로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은 마지막 시대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는 시대입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라도 왜 이토록 빨리 오셨느냐고 말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여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깨어 있는 자여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충성스러운 종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본문 28절에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그 꿈이 실현되는 출발점은 우리가 앞에서 본 것과 같이 바로 왕의 교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이 꿈을 꾸고 그 꿈의 해석을 들은 지 약 1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1년 동안이나 참으셨습니다. 그 꿈을 곧바로 실행하지 않으시고 느부갓네살에서 1년이라고 하는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꿈을 해석하면서 그 끝에 왕에게 충고했습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다니엘은 왕에게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라고 간언을 했습니다. 이는 분명 왕의 교만을 지적하는 소리였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다니엘의 이 충성스러운 간언을 무시함으로 불행을 자처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교만한 마음으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소리쳤습니다(30). 하지만 그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징계가 그에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 극에 달하고 있는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 느부것네살은 자신이 이 왕국을 건설했고,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있다고 소리쳤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느부갓네살에게서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즉 아무리 느부갓네살이 강하고 위대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제국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셨기에 그 큰 제국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여 자신을 하나님보다 앞세웠을 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거두어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느부갓네살은 왕궁에서 쫓겨났고 짐승과 같은 삶을 7년 동안이나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끝에서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교만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37).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왜 느부갓네살에게 이러한 꿈을 꾸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이 꿈을 다니엘을 통해서 해석해 주셨을까요? 그리고 그 꿈이 역사에서 성취되게 하셨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주권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입니다(17, 25, 32). 앞의 두 번은 꿈을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부분에 등장하고, 세 번째는 다니엘이 해석한 그 꿈이 현실에서 그대로 성취된 내용을 진술할 때 등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주신 이유, 그리고 그 꿈이 현실에서 성취되도록 하신 이유는, 느부갓네살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주권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서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나라를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시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폐하시고 바벨론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벨론을 폐하시고 페르시아를 세우십니다. 페르시아를 폐하시고 헬라를 세우십니다. 헬라를 폐하시고 로마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로마도 하나님의 때에 폐하십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나라도 하나님의 세우심이 없이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폐하시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났어도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무엇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이룬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신명기 817-18절에서 모세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요단을 건너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역사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강력한 나라일까요? 아니면 강한 권력을 가진 자일까요? 물론 세상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이루고 자신들이 만들어간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계획, 우리의 욕심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이 내 계획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 생각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의 위대함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크고 위대한 뜻을 성취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누리는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원하기는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바로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에서 살아감으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이,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