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위대한 가치
에배소서 1장 22-23절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
사랑하는 광성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중심이요, 둘째는 성경 중심이요, 셋째는 교회 중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사실은 하나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성경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교회를 자신의 모든 삶에 있어서 중심에 세우고 사는 사람은 진정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교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45-46절에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왜 진주 장사는 그 진주 하나를 사기 위해서 자신의 전 소유를 다 팔았을까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이 진주는 값이 비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진주 장사의 재산도 절대로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전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 하나를 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쉽게 유추할 수 있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 진주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합친 것보다도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천국의 가치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값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천국을 소망해야 하고, 그 천국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천국의 가치를 분명하게 깨달았을 때 말입니다. 천국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천국이 눈앞에 있어도 그 천국에 자신의 마음을 집중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신 예수님의 소유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신앙고백 위에, 그리고 우리의 땀과 눈물과 기도 위에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주신 위대한 권세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헌신해야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권세를 가지고 복음을 전파해야 하고, 또한 그 복음이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왜 그토록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교회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교회가 가진 그 진정한 가치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해도 교회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많은 일을 감당할지라도 진정한 헌신을 하지 못합니다.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의 지체로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교회가 가진 그 가치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 가치를 가진 기관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우리 광성교회에 속해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내가 우리 광성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나를 통해서 우리 광성교회가 더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교회의 위대한 가치』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교회는 가장 고귀한 기관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 여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항구도시인 밀레도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에베소 교회를 맡기면서 행한 고별 설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 중에 교회가 얼마나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표현입니다.
사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교회를 사신 주체는 성부 하나님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됨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사람의 모양으로,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온갖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고,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전부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생명을 잃으면 끝입니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생명이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소유는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대가로 해서 얻은 것이 있다면 그 얼마나 귀중한 것일까요? 바로 오늘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값으로 주고 사신 것입니다. 그것도 죄인의 피가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흘리신 피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성도라고 하는 거룩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피 흘림의 결과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결코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지 못한 우리는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는 스스로의 힘이나 방법으로는 결단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우리를 이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 공로도 없지만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늘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우리를 보시고 우리에게 “내 백성”이라고 칭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가장 고귀한 가치를 가진 기관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자신의 피를 값으로 주고 사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보다 더 고귀한 기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교회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우리가 그 교회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불러 당신을 머리로 하는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교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받아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자신들이 고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존심은 세상의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나의 신분이, 나의 재산이, 나의 권력이, 나의 명예가 우리의 자존심을 나타내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존심은 바로 교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지시고 죽으신 십자가에 나의 궁극적인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존심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손상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귀한 교회를 내가 사랑하고, 내가 섬기고, 내가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Ⅱ.교회는 가장 거룩한 기관입니다.
교회는 분명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곳곳에서는 이 공동체를 아주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창조된 모든 실체에 이름을 부여하셨습니다(창1:5, 8, 10).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통치행위를 대신했습니다(창2:20). 따라서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는 그 존재가 가지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특별하게 불리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교회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이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공동체와도 구별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이름들 가운데서 아주 특징적이고 중요한 두 가지의 이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이름 속에 우리 교회의 고귀한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 속에 우리가 교회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가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여기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몸”은 ‘그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한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킵니다. 이는 교회의 유기체적인 통일성과 다양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이며, 성도 각자는 그 몸의 각 지체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는 한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각각의 지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지만, 그 모두는 결국 하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지체가 하나이듯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지체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성도들도 교회가 기진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 그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실제로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바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 22-23절에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몸인 교회가 다스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는 명령만 하시고,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머리와 몸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몸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인도합니다. 몸으로 하여금 일을 하게도 하지만, 쉬게도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비인격적으로 복종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으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따라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자라갑니다.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의 인도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성령의 전”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와 성소가 있는 성전의 본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바울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전이라 하지 않고, 교회 전체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구약에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 임재하셔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레12:11). 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위한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자기 백성 가운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임재의 진리는 모든 교회에 적용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교회는 거룩한 존재입니다. 구약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 때, 제사장조차도 그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에 아무리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죄인의 모습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그 영광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성도는 거룩한 무리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자들이 모인 교회는 가장 거룩한 기관이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구성원이 된 성도 개개인은 그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교회를 결코 더럽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함이 훼손되는 일에는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심판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에베소서 2장 21-22절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건물에 사용된 모든 자재들이 견고하게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의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될 때 거룩한 성전으로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되어 가고”라고 했는데, 이는 교회가 완성을 향해 계속해서 건축 중에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또한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자라간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생물의 성장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교회에 적용해서 사용했다는 것은 교회는 무생물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임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는 유기체로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을 지속해서 완전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소유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도를 받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순종한다면 주님은 당신의 몸인 우리 교회를 가장 아름답게 가꾸어 가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성전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 즉 교회 안에는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결국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든 성도는 교회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전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쳐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나로 인하여 교회의 거룩이 훼손되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나로 인해 교회가 더 교회다워지고, 교회가 더 거룩한 공동체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믿음으로 맡기고, 성경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에 우리 자신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의 전 생애를 다하여 사랑하고 세워가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Ⅲ.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기관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를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집”은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성도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하나님을 단순한 하나님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구약에서 이 표현은 이방인들은 섬기는 생명이 없는 우상과 의도적으로 대조시켜 여호와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레26:12). 이것을 「언약문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라고 선언한 뒤에 이 언약문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기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교회를 향하여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약속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안에는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날마다 경험해야 합니다.
셋째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진리(ἀλήθεια)”는 일차적으로는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진리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가진 기관입니다. 또한 “기둥(στύλος)”은 본래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받쳐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건물의 모습을 높이 드러내서 멀리서도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진리의 기둥이라고 하면 교회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보여주어야만 하는 기관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터(ἑδραίωμα)”는 본래 ‘건물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대지’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복음을 왜곡하는 이단이나 복음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고하게 지켜야만 하는 기관임을 의미합니다.
결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에 대한 위대한 사명을 가진 기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사수(死守)해야 합니다. 또한 그 복음 진리를 높이 들어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가진 이중적 사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진정한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교회 하나님이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기관이 있을까요? 이 아름답고 고귀한 교회에 내가 속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한 교회를 위해서 내 작은 힘으로 헌신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기 백성의 구원이라고 하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서 이 역사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역사를 우리 교회를 통해서 전개하십니다. 따라서 교회가 없으면 이 세상의 역사도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모습을 유지하고, 사명을 감당할 때, 이 세상의 역사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광성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을 위해 친히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를 부르셔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드시고,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 광성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비록 작은 것 같고,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우리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교회입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방주로 사용하십니다. 또한 우리 광성교회는 성령의 전, 곧 성전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어우러지고,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완전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광성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음의 진리를 굳게 지키고, 또한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 밝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함께하심을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 광성교회는 너무나도 위대하고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치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지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이 시대,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믿음과 삶의 여정에 늘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