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44)
본문 : 막 10:41-45
제목 :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람인가 아니면 죄인으로 취급받는가 하는 기준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고 그 믿음이 없거나 그 믿음의 고백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죄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를 평가하는 기준도 있습니다. 그 기준은 사람에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이것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고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면서 살려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그 사람의 종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과거에는 학교나 직장에서 사람을 선발할 때 무조건 똑똑하면 되고 학업성적이 좋으면 뽑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오면서 우리나라도 그런 똑똑함이나 학업성적보다는 봉사 정신을 가지고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봉사적인 정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공부를 하고 출세를 해도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세상이 더 악한 세상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탄의 종으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우리와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주의로 자기만 잘살고 누리려고 한다면 아직도 사탄의 종처럼 사는 사람이고 이타주의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다른 사람이 잘 되게 해주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좋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이기주의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섬기고 봉사하면서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사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화를 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자기 두 형제를 영광의 나라에서 한 사람은 오른편에 한 사람은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첫 자리와 둘째 자리를 자기들이 차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만 그런 권력을 탐낸 것이 아니라 나머지 열 제자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도 가지고 싶어 하는 그 권력의 자리를 두 사람이 먼저 차지하려는 것을 보고 화가 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을 다 불러 놓고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설명해주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이라고 하신 이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크게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집권자들이
본문 41절에서 42절에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듣고 나머지 열 제자가 화를 낸 이유는 서로 자기가 더 큰 권력을 가진 권력자가 되고 더 높은 고관이 되고 싶은데 야고보와 요한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지는 왕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왕이 되시면 예수님의 오른팔 왼팔이 되어서 권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또 한 가지 오해한 것은 하나님 나라도 이 세상의 집권자나 권력자들이 다스리는 것처럼 다스려지는 나라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처럼 집권자 마음대로 나라를 주관하고 고관들이 그 권력을 가지고 권세를 부리는 그런 나라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먼저 이방인 집권자나 고관들이 잘못하고 있음을 말씀하시고 그런 후에 하나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방인의 집권자’는 당시의 로마 황제나 다른 모든 이방 나라의 최고 통치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세상의 모든 권력자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임의로 주관한다는 말은 자기 마음대로 통치한다는 말입니다. 통치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서 공의로 다스려야 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통치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백성들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강압적으로 다스리고 폭력으로 다스려서 굴복시켰습니다.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여기 ‘고관들’이란 통치자 아래에 있는 고위 관리들을 말합니다. 그들 역시 백성들을 섬기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그 권력을 사용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본문의 집권자와 같은 최고 통치권을 가진 대통령이 있고 고관과 같은 관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쳐서 백성들을 보호하고 잘 살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은 그런 정치인들이 많이 좋아져서 함부로 하지는 않습니다. 겉으로라도 백성을 위하고 모두가 차별 없이 잘 살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애를 씁니다. 요즘 관공서에 가보면 옛날에 비하면 참 친절합니다. 전에는 트집을 잡아서 뭘 잘 안 해주려고 하고 그것을 빌미로 뇌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엇이든지 도와서 일이 잘되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은 어쩔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한계성도 문제가 됩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인간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고 앞날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잘못된 세상의 권세자들을 따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런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군림하거나 억압하는 권세 자는 없을 것입니다. 임시 하나님 나라인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권세자들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본문 43절에서 44절에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권력이 주어지거나 지도자 자리에 있을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고 했습니다. 크고자 하는 사람이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마도 야고보와 요한이 요구했던 예수님 보좌 좌우편에 앉는 것 같은 권력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세상 사람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도 달라야 하고 그 자리에서 일하는 자세도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방법에 있어서 섬김을 통해서 큰 사람이 되라는 뜻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법칙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고 남을 못되게 밟고 일어서야 할 때도 많습니다.
세상에서 돈 벌고 출세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도 그렇고 정치적으로 큰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섬기면서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위해서 살아야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을 잘 되게 해주고 남을 섬김으로써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고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 위대한 사람이 되는 목적이 남을 섬기기 위해서라야 함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만 잘 살고 자기만 좋은 것 가지기 위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차라리 그냥 위대한 사람이 되지 말고 그냥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좋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으뜸이 된다는 것은 일등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일 앞선 자가 되고 제일 높은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앞서서 말한 크고자 하는 자와 비슷한 말입니다. 큰 사람 위대한 사람 중에서도 제일로 큰 자 제일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앞의 섬기는 자가 된다는 말과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더 강력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봉사한다는 뜻이지만 종이 된다는 것은 섬기는 사람이면서 자기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주인이 시키는 대로 맹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섬기는 정도가 아니라 종처럼 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주인의 뜻에 맹종하는 사람처럼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도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정말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사는 시민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시민권을 가진 사람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는 것이 으뜸이 되는 것이고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그런 위대한 신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엄청난 것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날이 되어서 실제로 그 신분을 가진 사람이 받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 보면 내가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되어서 그 신분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선 자리에 서보면 세상에서 세상의 출세를 위해서 몸부림치며 살았던 그 삶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일이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서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가진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복음을 전해주는 교회를 위해서 더 봉사하고 더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섬기는 자가 있고 종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교사들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섬기는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재능 자기가 가진 물질 자기가 가진 시간 중에서 그중에 일부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로 쓰면 됩니다.
교회의 목사는 섬기는 자를 넘어서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종 복음의 종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의 모든 생각도 버리고 나의 목표나 뜻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모든 사람의 종입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충성하는 사람이나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내가 싫어하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힘든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자리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리에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본문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세상의 권세자들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시고 그리고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섬기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 중에 가장 큰 권력을 가지신 분이시고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이신데 섬김을 받으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러 이 세상에 오셨다면 인류의 역사는 다시 써야 했을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몰라보고 영접하지도 않고 환영하지도 않고 그렇게 건방지게 교만하게 예수님을 대했다면 그대로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예수님께서 그런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서 오셨고 단순히 섬기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냥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나 하고 좋은 것이나 가르쳐주시고 그런 작은 것에 좋은 일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셔서 우리를 흉악한 죄에서 사함을 받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게 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사탄과 그 졸개들을 도둑에 비유해서 말씀하시고 그들과 다른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탄의 종으로 사는 세상 사람들은 도둑질해서 빼앗아가고 영원한 생명까지 빼앗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귀한 자신의 목숨을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놓으시면서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배운 대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자리는 인간의 노력으로 가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주시기로 하고 준비한 그 사람만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한 사람만 그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든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그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시하는 것은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그 십자가가 자기들에게는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게 하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 구원 받을 사람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 것이 참 다행스럽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가 그 많은 사람과 경쟁해서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확률은 너무나 낮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 세상을 살다가 간 그 많은 사람에 비하면 소수의 사람만 하나님의 자녀로 살다가 천국에 갑니다. 이 문은 좁은 문이고 이 길은 좁은 길이고 사람들이 찾지 않고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특별한 수에 우리가 들어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늘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나라와 우리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이 다 다른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삶의 목적이나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며 헌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섬기며 봉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