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45)

  본문 : 막 10:46-52

  제목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46.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 당시에 여리고라는 동네에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맹인이었고 거지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여리고를 방문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해서 그의 눈이 고침을 받고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 당시에 일어났던 작은 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흔히 있었던 많은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 이 사건을 기록한 것은 여기에 특별한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런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려면 그 기록한 책이 너무 많아서 이 세상에 다 둘 수 없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런 많은 일 중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들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0-31)라고 했습니다.

 

  많은 일 가운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기 위해서 그것과 연관된 특별한 말씀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인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의 기록 목적도 표현은 좀 달라도 그 뜻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는 말씀이 마가복음의 주제인데 이 주제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말미에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고쳐주신 후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가 이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본문 46~48절에 “46.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라고 했습니다.

 

1) 바디매오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는 맹인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저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답답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이 사람은 거지라고 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자연히 남에게 얻어먹는 신세가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도 큰 장애인데 가진 것이 없어서 얻어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맹인이 되었다고 해도 부모님이 부자이거나 그가 먹고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좀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디매오는 자신을 도와줄 만한 재산도 가족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이 사람은 이름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디매오는 그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에게 이름을 지어줄 사람도 없었는지 그냥 디매오의 아들이라고 불리며 살았습니다.

 

  여기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사실은 세상 사는 모든 인간이 이와 같이 비참한 사람들이며 이 비참함을 깨닫는 데서 믿음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으로 보기는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일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앞날을 보지 못하고 영원한 세상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릅니다. 자신이 누구인 줄을 모릅니다. 자신이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가게 될 영원한 지옥의 고통스러운 삶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지를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나 자신이 이 거지 맹인과 같이 비참한 사람임을 깨닫게 될 때 나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믿음이 시작됩니다.

 

  저는 저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깨닫고 바른 믿음을 알게 되었고 그 복음을 믿는 바른 믿음을 전하기 위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늘 이 복음을 연구하였고 복음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복음에 대해서 말하지만 이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귀한 복음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강력한 장벽이 하나 있습니다.

 

  교만해서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교만함이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장벽입니다.

 

  또 하나는 세상에 대한 미련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앙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더 성공하고 잘 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을 외면합니다.

 

  오늘 본문에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사는 것 같은 이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죄로 인해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가련한 인생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2) 그는 자신의 비참함을 알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도 아닐뿐더러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에 사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비하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소개했지만 이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 메시야가 되심을 알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 35장에는 메시야가 오실 때 맹인의 눈이 밝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35:4-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여 맹인을 고쳐주심이 자신이 그 약속하신 메시야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7:22 참조) 바디매오가 이 말씀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평생 성경을 읽어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를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가장 핵심인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이런 비참함에서 구원해주실 분은 오직 그분밖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한 사람들이 다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발견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모르면 아무리 연구해도 엉뚱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사도 바울도 과거에는 구약의 율법을 연구한 사람이었는데도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전통적인 율법 전문가에게서 교육을 받았지만 성경의 핵심을 모르고 연구했기 때문에 복음을 몰랐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는 역할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다가 십자가에 사형을 당한 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예수님이 정말로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스러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을 보고 그제야 성경의 핵심이 복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로 세상에 오신 분이심을 깨닫고 보니까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평생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고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신약성경의 절반이 넘는 서신서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자신이 비참한 죄인임을 깨닫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죄인에게 메시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데서 믿음이 시작됩니다. 그 메시야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믿음이 시작됩니다.

 

3)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직감한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잠잠하라고 꾸짖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그런 사람들의 말에 상관없이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더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살던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소망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야만이 자신을 이 비참함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이 있었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그렇게 간절하게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나 길은 없었습니다. 오직 이 길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메시야로 오시는 분 밖에 자신을 이 비참함에서 구원하실 분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하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맹인이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거지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도움을 받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하여 누가 뭐라고 하든지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이런 비참함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맹인 같은 우리가 다른 길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거지 같은 우리가 다른 길을 마련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 길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 외에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절히 호소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음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구원을 간절히 호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2.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본문 4950절에 “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이 그 맹인에게 안심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고 했ㅅ브니다. 마치 ㅇ머청난 일에 합격자를 부르는 것처럼 축하하며 불렀습니다. 맹인이 그 부르심에 나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거추장스럽게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뛰어 일어나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수많은 사람이 따라 다녔습니다. 그중에는 바디매오와 같은 많은 병든 자들이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이 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침을 받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바디매오를 축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 바디매오야, 이젠 됐다 예수님이 너를 불러주셨다. 이젠 안심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아무나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만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러주신 사람만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살고 보니까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합니다. 하는 일이 없어지다가 보면 모든 사람에게서 다 잊혀지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는 것이 가장 서글픈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불러주는 것도 이렇게 고마운데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불러주셨다는 것은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나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내게로 오라고 하신 그 은혜는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나왔다면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습니다. 뭘 더 바랄 것도 없고 더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받았다면 다른 모든 것은 다 잃어도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는 것은 맨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해주시라고 호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을 아무나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실 때만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아무에게나 가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사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사람에게만 들어가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인 줄 깨닫게 되고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3.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본문 51, 52절에 “51.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께 나온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주저하지 않고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에 보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의 눈을 고쳐주셨고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신 이유를 그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눈을 고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이런저런 세상의 복도 많이 받습니다. 알고 보면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축복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상의 복들을 통해서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스러기 축복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부스러기 축복들 때문에 진짜 복을 놓친다면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이 복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통해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우리가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보게 되고 구원도 받았으니 네 갈 길을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갈 길을 가지 않고 그 길에서 바로 예수님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길로 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눈을 보게 된 것보다 메시야를 만나서 죄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세상으로 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자유의 몸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도 마음껏 누리며 잘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힘들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면 더 좋습니다. 그 삶이 세상의 재미보다 더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디매오는 맹인에 거지에 이름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메시야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불렀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셨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의 믿음을 보시고 죄에서도 구원받게 해주셨습니다. 그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바디매오처럼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특별히 불러주셔서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예수님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