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36)

  본문 : 막 9:30-37

  제목 : 수난 예고, 제자들의 무지, 예수님의 교훈. 

 

  “30.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믿음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중심도 결국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것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설명하는 것이 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이 자기들 욕심 때문에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기는커녕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무지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의 의미를 알려주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수난 예고, 제자들의 무지, 예수님의 교훈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수난 예고- 죽임을 당하고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본문 30~31절에 “30.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미리 말씀하신 수난의 예고가 세 번 반복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8:31, 9:31, 10:33-34) 그 내용은 다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별히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넘겨지고 버림을 받아서 죽게 되겠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에 손에 죽임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난 예고의 앞뒤를 살펴보면 비슷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난 예고의 앞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증거로 여러 가지 이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잖은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힘이 없어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8장에 기록된 첫 번째 수난 예고 앞에는 예수님께서 칠병이어 즉 보리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고쳐주신 사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앞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더 많은 이런저런 기적적인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수난 예고인 오늘 본문 9장에서도 이런 기적적인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변화산 사건 즉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어서 해같이 빛나셨고 거기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와서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주 흉악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8장에서는 수난 예고 직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질문하셨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수난 예고를 하시기 이전에 많은 기적을 통하여 증거를 보여주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힘이 없으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은 구약성경 전체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가 지은 죄가 너무나 흉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무지-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본문 32~34절에 “32.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1)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설명을 해달라고 했으면 좋을 것인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기는커녕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지난번 베드로처럼 잘못 말했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또 꾸지람을 받을 것 같아서인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왜 그렇게 하셔야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믿음과 기도에 관해서 생각할 때 살펴보았듯이 오늘날의 신앙인 가운데도 뭘 잘 모르고 맹목적으로 믿는 무모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믿음이나 기도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도 잘 살펴보고 잘 알고 믿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는 불교와 달라서 깨달음의 종교는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뭘 연구하고 깨닫고 알아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에 관한 방법이 있으니까 그 말씀대로 따르면 됩니다.

 

  그렇지만 잘 모르고 믿는 것보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단에 빠지지 않고 다른복음을 따르지도 않고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님께 수난의 예고를 들었음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오는 길에 서로 토론을 하기를 서로 누가 크냐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했습니다.

 

  “누가 크냐라는 말은 누가 가장 위대하냐”, “누가 으뜸이냐라는 말입니다. 물론 제자들의 말은 이 세상의 권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크고 위대한 사람이냐를 따지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 속에는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처럼 권력을 가지고 서열을 매기고 높고 낮음이 있는 것으로 본느 시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높고 낮음이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귀하거나 천한 그런 구별이 없는 나라입니다. 서로 경쟁하고 싸워서 이긴 자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차지하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모두가 잘살고 모두가 귀하고 모두가 잘난 그런 나라가 우리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아닌 나그네와 같이 임시로 사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이 이렇게 따로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도 임시적이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 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높고 낮음이나 크고 작고나 귀하고 천함이 없습니다. 서로 경쟁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필요도 없고 서로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진리를 바로 알고 복음을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논쟁해야 할 것은 누가 크냐가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묻기도 하고 따져보기도 해서 바르게 알아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와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 잘났다고 자랑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이 큰 두 문제를 가지고 다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게 살아서 복을 받고 이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더 높은 자리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 세상은 비록 못 살고 낮은 자리에서 살면서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중간쯤에서 두 가지를 다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에 두 가지 다 잘될 수는 없습니다. 두 가지를 다 쟁취하시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고 깨달아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른 믿음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교훈-뭇 사람의 끝이 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본문 35~37절에 “35.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엉뚱한 것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 반대로 오히려 낮은 사람이 되고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엉뚱한 논쟁을 하는 제자들에게 누가 제일 큰 사람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맨 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 즉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를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희생과 헌신을 통한 예수님의 구원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교만 때문에 온갖 악한 일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류가 하나님을 배반한 것도 이 교만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서 순종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감히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범하게 되고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교만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16:5)라고 하셨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만하게 사는 것 자체가 참 힘듭니다. 그냥 저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잘못하는 것이 많습니다.”라고 하면 쉽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난척하려니까 참 힘들고 사사건건 변명도 해야 하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자랑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앞장서서 리더로서 살려고 하면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하시고 만왕의 왕 영원한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이 희생과 헌신으로 하지 않으면 그 모임이나 단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는 영웅심이 많아서 그런지 교만해서 그런지 늘 앞장서서 리더로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청년 때 노회 청년연합회 임원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회장이 행사 때마다 대회장이 되어서 앞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나도 회장이 되어서 잘난 척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임원으로 일하면서 회장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앞에 나가서 잘난 척하는 것은 잠깐이고 뒤에서 하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돈도 많이 내어놓아야 하고 남들이 보지 않은 가운데서 힘들고 어려운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희생과 헌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라는 말씀의 뜻을 알았습니다.

 

  세상일도 마찬가지이지만 교회의 일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에서의 일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희생과 헌신은 없고 앞장서서 이름 내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그 모임은 의미가 없는 모임이 되고 맙니다.

 

2)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신 후에 한 아이를 데려다가 앞에 세우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라고 하시면서 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아이를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어린아이는 문자적으로 어린아이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에서 어린아이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나 교회 안에서 아직 초보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시편 82:3절에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라고 하셨는데 이런 사람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란 가난한 사람, 고아, 곤란한 사람, 빈궁한 사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한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 곤란한 일을 겪으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 결국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을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노력해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결국은 세상에서 죽임을 당해야 할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교만한 사람들이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지 못해서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고 천국을 차지한다는 말씀은 자신이 가난한 사람임을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구원의 복음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고 그들을 위해서 대신 죽어주심을 믿는다면 우리도 그런 연약한 사람을 용납하고 도와줄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가 연약한 사람인 줄 알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천국까지 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수난 예고, 제자들의 무지, 예수님의 교훈을 주제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 의미를 바로 알고 바른 믿음을 갖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희생하고 봉사하며 섬기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같이 부족한 사람을 용납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