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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9. 2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38)

  본문 : 막 9:43-50

  제목 :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없음) 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없음) 47.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로 앞의 41~42절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41)라고 했고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42)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해서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이어서 오늘은 남에게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 대한 말씀입니다. 남을 실족하게 하는 것도 안 되는 일이지만 자기 자신도 스스로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이 반드시 있다는 것과 그 천국에 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목적지가 천국이라는 것을 확인하시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본문 43절에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했습니다.

 

  43절부터 47절에는 같은 말씀으로 비슷한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손이나 발이나 눈이 범죄하게 만들면 찍어버리고 빼버리라고 했습니다. 멀쩡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불구가 되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낫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8절에는 그 이유를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지옥에 가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지옥은 영원토록 형벌을 받아야 하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죽지도 않으면서 고통스럽게 하는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옥에 가는 일만큼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48절의 말씀은 43절과 45절의 후렴구로 기록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44절과 46절이 (없음)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다른 사본에는 48절의 말씀이 거기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43절에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라고 말씀한 뒤에 44절의 “(없음)”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45절의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라고 말씀한 뒤에 46절의 “(없음)”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반복되는 후렴구를 생략한 것으로 보입니다.

 

1)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기록목적은 특별히 마가복음의 기록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복된 소식인 복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 믿음을 가져야 하고 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가 하니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탄의 종과 차이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가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종은 영원토록 형벌을 받고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지옥으로 끌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고통스러운 지옥형벌을 받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복락을 누리기 위해서 이렇게 힘들지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 곳에 기록이 없다고 해도 성경의 핵심은 구원이고 그 구원은 지옥에서의 구원을 말씀하는 것이며 구원받은 백성이 들어가서 살게 되는 곳이 하나님 나라 영원한 천국입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옥은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43) 이라고 했습니다. 48절에는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지옥을 말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이라는 단어입니다. 불은 불인데 그 불은 무엇을 태워서 없애버리는 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기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불이 태워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불로 고통만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은 영원토록 타오르는 불입니다. 어느 정도 타다가 더 태울 것이 없으면 꺼져버리는 것이 불의 특징인데 지옥 불은 꺼지는 일이 없어 계속해서 타오른다는 것입니다.

 

  이 지옥이라는 단어는 게엔나(γέεννα)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골짜기인데 이 골짜기는 요즘 말로 하면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배설물이나 쓰레기나 짐승을 불태우는 곳이었으며 항상 불이 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죽음의 골짜기 형벌의 골짜기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더러운 것을 태우기 위해서 항상 불이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죽음의 골짜기이고 저주의 골짜기이고 형벌을 받는 골짜기와 같은 곳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옥이나 천국은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설명되는 곳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른 세계이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옥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는 곳이며 인간이라고 하면 가서는 안 되는 최악의 곳이며 최고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 곳이며 그 고통스러운 형벌이 영원토록 계속되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천국은 영생에 들어가는”(43, 44)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47) 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거기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사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천국이나 하늘나라나 하나님 나라는 같은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하늘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하늘나라라고 했고 한자로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에 대한 묘사도 성경에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묘사 또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나라와 차원이 다른 나라이고 지금 우리가 아는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에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를 여러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눈물이 없는 나라이고 사망이나 애통해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성안이나 길은 정금으로 깔려 있고 문은 진주 문이고 건축물들은 온갖 보석들로 만들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슬픔과 눈물이 없는 나라는 그냥 바보같이 재미도 없는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황금보석은 희소가치가 있는 것인데 모든 것들이 황금보석이면 별로 귀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표현들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로 최상급으로 표현했을 뿐이지 정확한 묘사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슬픔을 주는 아픔이나 죽음이 없는 곳이며 그래서 다시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황금보석으로 꾸며진 나라라고 하면서 최고의 장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우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없는 나라가 우리 하나님 나라입니다.

 

2)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을 해서 그대로 실천하려고 한다면 우리 중에 사지가 성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은 보는 것이 다 죄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손으로 행하는 일들도 죄와 연관된 것들이 참 많습니다. 걸어서 가는 곳이 다 죄악된 세상인데 그런 것을 대할 때마다 손을 자르고 발을 자르고 눈을 뽑아야 한다고 하면 모두가 불구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죄하게 하거든이라는 말의 뜻을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범죄하다라는 뜻이 무엇이며 그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범죄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ίζω)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함정, 올가미, 걸림돌,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단어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범죄하다 라는 번역보다 함정에 빠지다 걸려서 넘어지게 하다 실족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어와 가장 가까이 번역했다는 원문성경에서는 범죄하게 하거든걸려 넘어지게 하거든으로 번역했습니다.

 

  물론 죄를 범하다로 번역을 한다고 해도 그런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함정에 빠지는 것도 죄를 짓는 것일 수도 있고 걸려서 넘어지는 것도 결국 죄를 범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데 가장 쉬운 것은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죄가 더 큰 죄를 짓게 하고 결국은 그 죄가 믿음에서 떠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죄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계속 죄에 빠지려고 하면 원인을 잘라내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 단어의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는 참 중요합니다.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단어를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냥 쉽게 죄를 범한다고 번역합니다.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사람은 죄를 지으면 바로 지옥에 가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손을 자르고 발을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한 일 조금 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남이 보지 않는 데서는 죄를 짓고도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척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손이나 발을 잘라버리든지 잘난 척하고 있다가 지옥에 가든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 교만한 사람이고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냥 손들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되는데 되지도 않을 일을 할 수 있는 척하다가 지옥 불에 던지어져야 하는 참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은 사람이 지옥에 가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으로 번역하기보다는 넘어지는 것 실족하는 것 즉 믿음에서 떠나는 것으로 번역합니다.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또한 죄를 범하는 것이며 이것이 가장 큰 죄악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물론 다른 죄들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을 어기는 죄들도 범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죄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손이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죄를 범하게 한다면 잘라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발이 믿음에서 떠나는 길로 가면 잘라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믿음에서 떠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뽑아 버려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고 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며 믿음을 버리는 것은 지옥으로 달려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천국과 지옥은 천지 차이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과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금과 불의 비유

 

  본문 49~50절에 “49.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구절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49절의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을 48절과 연관시키면 지옥의 모습을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소금을 가지고 부패한 것을 정화시킨다면 지옥에서는 소금 대신 불로서 정화시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50절은 소금이 나온 김에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하면서 소금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천국에 갈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교훈해주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우리는 마가복음의 기록목적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에서 네로황제에게 핍박을 받고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록했습니다.

 

1)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49절의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당할 고난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을 원어에 가깝게 모든 사람들은 소금에 절여지듯 불에 절여지게 될 것이다.”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드리기는 좀 복잡하니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모든 인생이 소금이나 불에 절여지듯이 고통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정결하게 되기 위해서 소금으로 절여지는 것처럼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피하는 대신 영원한 지옥에서 더 고통스러운 불로서 절여지는 것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이런 고난을 통해서 신자와 불신자가 가려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다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어려움을 당하면 진짜와 가짜가 구별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알곡이고 어려움을 피해 가면 쭉정이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까 참 쉽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도 평생을 한결같이 믿음 생활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이길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2)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고 맛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짠맛을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의 역할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 때 세상이 부패하지 않도록 앞장서서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상 살아가는 맛을 내는 데 앞장서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알고 자기 욕심대로 살지 않고 서로 나누어주면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는 말씀은 세상 살아가면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되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원수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되 그것 때문에 원수가 되지 말고 화목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공의와 사랑이 서로 반대편처럼 보이지만 공의롭게 행하면서 화평을 이루는 것이 참된 공의입니다. 소금 역할을 한다고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확실하게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는 목적은 결국은 지옥의 형벌에 처해지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살면서 죄를 무서워하며 바르게 살려고 힘써야 하겠지만 특별히 이 믿음을 버리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이나 눈이 믿음을 버리는 일에 앞장서면 찍어버리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옥으로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천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복을 받은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