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60)
본문 : 막 13:12-13
제목 :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세상 종말에 관하여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말이라고 해서 세상 끝날에 일어날 일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나서 곧 이루어질 일에서부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까지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최후의 그 날에 일어날 일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계속 일어나는 일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곧 종말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고 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상 최후의 끝날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부터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일어나는 일이며 이런 일을 보면 세상은 종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종말을 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어려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참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예수님을 통한 구원 때문에 박해를 당한다고 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그보다 천배 만배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죽는 데에 내주며 죽게 하리라
본문 12절에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대적하고 죽는 데에 내주며 죽게 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서로를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대적하고 죽인다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일이 서로를 대적하고 배반하고 곤경에 처하게 하여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배반하는 것은 정말로 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배반을 많이 당하고 살았습니다. 가족의 도움이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힘들고 외롭게 살았습니다. 가장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을 혼자 힘들게 살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힘들게 살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나 사업을 할 때도 누구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이용당하고 배반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싫어서 목회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목회를 하면 좋은 사람들 만나서 서로를 배반하는 일이나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없이 서로 사랑하면서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학교 다니면서 두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는데 두 군데 다 일 년 반 만에 쫓겨났습니다. 사례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충성스럽게 일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음 주부터 다른 교회 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곳에 와서 개척을 했습니다. 30년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으로 목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왔다가 별 이유 없이 다른 교회로 떠납니다. 다 형편이 그렇고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하지만 저로서는 배신을 당한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냥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라고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평생을 사랑을 나누며 함께할 형제자매로 부모나 자식 관계로 정을 주고 살아서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아픈 줄 알았으면 무정하게 살 걸, 때로는 좀 이익도 챙기면서 독하게 살 걸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일이든지 제가 먼저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 동네 와서 30년이 지났는데 동네 이발소가 세 번 주인이 바뀌었지만 저는 30년째 그 이발소만 다닙니다. 30년 동안 이사도 가지 않고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개척할 때 주변의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로 가서 개척해야 성공하지 이런 동네에서는 안 된다고 옮기라고 권했습니다. 전주에 좀 규모 있는 교회에서 저를 담임목사로 청빙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목회 성공하려고 큰 교회 담임해서 잘 먹고 잘살고 잘난척하려고 너도 가려느냐는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을 보내고 나니까 주변을 둘러보니까 나만 그런 어려움을 당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서로 배반하고 경쟁하고 싸우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죄악 된 세상에 타락한 인간들이 사는 한 그런 일은 여기저기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배반하고 죽이는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초 인간인 아담과 하와도 자신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최초의 살인도 형님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야곱도 형 에서를 속이고 팥죽 한 그릇에 그 귀한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요셉도 형들에 의해서 먼 외국에 노예로 팔려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잡혀가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특별히 교회 안에서 성도들에게 마음 아픈 일을 당하고 배반을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럴 수밖에 없는 타락한 세상이고 죄악으로 물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세상은 사탄이 우글거리는 세상이고 심지어 하나님 나라인 교회도 비록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지만, 아직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문제로 서로 배반하고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문제로 서로 대적하고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서 전통적으로 유대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새롭게 시작된 기독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서로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약성경을 통하여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절기들을 지키는 것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며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율법이나 제사나 절기들이 다 소용없는 것이고 자신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교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기독교냐 하는 것은 형제간이나 부모와 자식 간에도 양보할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형제나 부모나 자식이나 관계없이 다 고발해야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 아주 악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 전통적으로 유교나 불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반대했습니다. 유교는 조상에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기독교가 그것을 금하기 때문에 아주 나쁜 종교라고 비난하고 교회에 출입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집안 식구 중에 누가 교회에 다니면 온 가족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고 가문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차피 다 나를 배반하고 떠납니다. 친구도 떠나고 가족도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도 떠납니다. 나 자신도 나를 배반합니다. 눈도 나를 배반하여 흐려져서 잘 안 보입니다. 귀도 나를 배반하여 잘 듣지 못합니다. 온몸이 병들고 늙어져서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만듭니다.
이럴 때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다 배반한다고 해도 오직 한 분 우리 예수님은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모든 것에 배반당하여 고통당하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이런 배반이 없는 나라 영원한 천국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3절에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1)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을 다 알지만,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은 잘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을 때 주의 사자가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하시면서 그 뜻을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즉 그 이름 안에 있는 구원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세상 모든 죄악에서 그 죄로 인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받을 사람이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초창기에 송명희 시인이 와서 간증하고 갔습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불편한 몸으로 이런 노랫말을 지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 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비록 자신은 가진 재물도 없고 가진 지식도 없고 남들에게 흔히 다 있는 건강도 가지지 못했지만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는데 그것은 예수님 이름 안에 있는 구원과 사랑을 알았고 그것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그 이름을 알고 보면 좋은 것인데 알고 보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것인데 너무 쉬워 보여서인지 너무 믿을 수 없는 허황된 것으로 보이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고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천국에서 잘 살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들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도 아닙니다. 나만 차지하겠다고 경쟁해서 빼앗는 것도 아닙니다. 같이 가자고 권유하는 것이고 누구든지 다 같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미워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 속에 있는 사탄의 역사 때문입니다. 그 사탄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서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미워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그들 속에 역사해서 세상 쾌락에 취하게 만들고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문제는 그 즐거움이 눈을 가려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2)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악한 사람이나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에게만 미움을 받는다면 그런대로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 착하고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을 모르면 우리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온갖 지식을 갖추고 인류를 위해서 공헌을 한 과학자들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되고 진리에 관한 문제도 다 잘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머리가 똑똑한 사람은 이렇게 귀한 복음의 진리도 더 쉽게 눈치챌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알량한 지식 때문에 세상에 수천만 수억만의 지식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 알면서 전부를 안다고 착각하는 그 알량한 지식 때문에 인간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좀 안다는 교만 때문에 겸손히 엎드려야 보이는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참 미련한 사람입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많아서 세상을 호령하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미워합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사람은 십중팔구는 교만한 사람이고 자신의 악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상 재물이나 권력에 눈이 어두워져서 이 소중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참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한 사람들도 우리를 미워합니다. 착하고 선하게 좋은 일 많이 하고 사는 사람은 그 공로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합니다. 작은 선한 일 때문에 가장 선한 것을 놓치고 악한 사람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복음을 따르는 우리를 미워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있을지도 모르는 천국이나 바라보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우리를 미워합니다.
심지어 수만 수십만이 모이는 대형교회의 목사들이나 성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의 비밀을 모르면 죄 사함을 구원을 소홀히 생각하면 복음을 외면하고 복음을 따르는 우리를 미워합니다.
큰 교회를 배경으로 멋있게 차려입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설교하는 목사 중에서 복음의 비밀을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설교라고 하면서 우리를 비웃습니다. 예수님을 등에 업고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을 설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서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이 실망하고 그들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미움을 당할 때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악으로 멸망 당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미움을 받을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으니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사탄에게 속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주 특별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버림받은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즉시 이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우리도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주어진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타락하고 연약한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처럼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들의 미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를 고발하여 죽이려고 대드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유혹하여 믿음을 포기하려고 발악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이 세상 끝날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위해서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복음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격려하면서 믿음을 지키며 삽니다.
교회에 와서 교회에 헌신하고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복음을 전하고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일에 전념할수록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구원을 얻은 것 때문에 형제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이 귀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