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라를 대망하자
신명기 5장 12-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命令한 대로 安息日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行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安息日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男종이나 네 女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家畜이나 네 門 안에 留하는 客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男종이나 네 女종에게 너 같이 安息하게 할지니라 너는 記憶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强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引導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命令하여 安息日을 지키라 하느니라
성경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사건과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계시의 점진성으로 인해 구약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완전하고 분명하게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시가 시대를 따라 점진적으로 확장이 되고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를 따라 하나님의 계시가 단편적으로 보여지면서 그 모든 계시들을 종합해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의 몸을 통해 오셨습니다.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구약성경의 말씀을 따라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사역은 구약성경에 약속된 내용을 성취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의 기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할 때마다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증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약속의 실체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 시간들로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살펴보는 안식일을 포함한 그 안식일 시스템들도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즉 이 모든 안식일 시스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안식일(주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일을 지킨다고 말하면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더 나아가 이 안식일 시스템들은 장차 이루어진 또 하나의 위대한 사건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안식일 시스템은 이제 우리에게 남은 하나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나타날 마지막 사건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 즉 우리가 오늘 주일을 지키는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시작되는 마지막 날에 있을 영원한 천국의 잔치를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주일을 지킴으로 인해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의 예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우리는 우리가 주일을 지킴에 있어서 단순히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장차 누려야 할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지켜야 함을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의 나라를 대망하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기억하며 지켜야 할 안식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을 통해서 우리 집 안에 있는 종들과 나그네들,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안식년을 지킴으로 인해 내 백성 가운데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들에게 이르기까지 그 혜택을 나누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일들은 분명 선한 일인데, 그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동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동기를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고, 종노릇하는 데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이유를 근거로 우리에게 이 선한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 곧 십계명이 성경의 두 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기 20장 8-11절인데, 이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직접 주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늘 본문으로 신명기 5장 12-15절인데, 이 때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모세 앞에 있는 자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과 출애굽 당시 20세가 되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새로운 세대들입니다. 아들이 저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을 정복하고, 거기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들 새로운 세대에게 과거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셨던 십계명을 명령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5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씀에는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고,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모세의 명령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내용을 보면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0절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본문 14절에서 동일하게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말씀 뒤에 출애굽기에서 나타나지 않는 표현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즉,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특권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권, 오직 신들과 신적인 존재들(왕이나 그 반열에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안식을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서 이 말씀은 엄청나게 파격적인 말씀으로 들릴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안식을 누리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나의 안식을 통해서 내 집에 있는 종들에게도 그 안식의 혜택을 나누어주고 함께 누리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안식일의 의미가 얼마나 깊고 풍성한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 보면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이는(כִּי)”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로 이하의 말씀이 주어졌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천지 장조입니다.
그런데 본문 15절에서는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로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조심해서 살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에서 하나님이 안식의 근거로 출애굽을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의 안식을 위해서 하시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분명 15절만을 따로 떼어서 살펴본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15절의 말씀은 14절의 말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14절의 말씀에 대한 이유와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며 안식해야 하는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14절 끝에 등장하는 내 집의 남종과 여종이 나처럼 안식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은 나만 먹고 마시면서 즐기고, 기뻐하며, 축제를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안식을 누리는 것처럼 내 종들도 함께 그러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종들로 하여금 나처럼 안식을 누리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분이 종인데, 나를 위해서 일하는 자들인데, 내가 쉬고 안식한다고 그들에게도 나와 똑같은 안식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을 하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사실이 바로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불과 40년 전의 모습과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 때 저들은 애굽에서 노예였습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라고는 누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것도 본문의 표현을 따르면 “강한 손과 편 팔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억지로 저들을 붙잡고 이끌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스스로 나올 수 없기에, 애굽과 바로가 저들을 보내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직접 저들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즉 이스라엘이 그토록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하나님이 해방시켜 주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총을 집 안에 있는 종들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신명기 15장 12절 이하에서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식년의 규례에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이 안식년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는 아주 귀한 일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종으로 팔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하게 하는 일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다른 사람의 종으로 팔리는 일이 발생하게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들은 안식년이 되면 아무런 대가 없이 종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이전의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으로 팔릴 때는 안식년까지의 남은 기간을 계산해서 팔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들을 해방시킬 때, 또 지켜야 할 규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종들을 해방시킬 때, 빈손으로 나가게 하지 말고 그에게 후히 주어서 그것을 가지고 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그 종이 빈손으로 나가면 또다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다시금 종으로 팔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본문에서 그렇게 해야 할 이유로 출애굽 사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희년에 있어서는 더욱 확장되고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38, 42, 55절을 이어서 보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희년의 규례를 말씀하시면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시는 것이 바로 출애굽 사건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 이는 분명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애굽의 종에서 구원하시고 해방시켜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이를 내 이웃에서 선을 행하는 동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하나님이 친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결과를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마땅히 구원받은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안식일, 곧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을 지킬 때,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로 인해 감사하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를 잊어버리거나 빼놓고 주일을 이야기하고 지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주일을 지킴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내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복음을 나누고, 우리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들이 비록 예수를 믿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그 은총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Ⅱ.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며 지켜야 할 안식일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면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주일은 과거의 사건, 곧 우리의 구원 사건에만 그 의미를 제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 구원의 사건은 현재에서 반복적으로 구현해 나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에 있을 위대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우리가 누리게 될 크고 최종적인 구원의 잔치를 대망하며 지키는 것이 바로 안식일이요, 주일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이 희년을 말씀하시면서, 출애굽 사건, 구원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희년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백성들에게서 산 땅을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종으로 팔린 자들을 모두 자유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때의 상황을 그려봅시다. 주인의 집에 매여서 살았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이제는 자유인의 신분으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주인이 준 풍성한 곡식과 재물들을 등에 지고 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그 종들의 얼굴을 본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이 세상의 다 가진 듯 할 것입니다. 그들의 눈은 기쁨과 행복의 눈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이 떠나가는 종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등에 짐을 지고 기쁜 마음으로 떠나가는 그 종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현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지긋지긋한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끝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향하여 출발합니다. 애굽에서 얻은 보화와 재물을 등에 지고 애굽을 떠날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바로 이것을 지금의 상황에서 다시 경험하는 것입니다. 즉 안식년이나 희년을 지키면서 해방의 기쁨을 누리를 저 종들을 보면서 과거 내가 누렸던 구원과 해방의 기쁨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과거에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을 현재에서 내가 내 이웃에게 베푸는 선행을 통해서 다시금 경험하는 것입니다. 결국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이나 안식년, 희년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과거에 베푸신 은총을 현재에서 반복하고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통해서 현재에 그 구원의 기쁨을 반복해서 구현해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이러한 현재에서 반복적으로 구현해 내는 이 사건은 또한 미래에 있을 영원한 구원의 기쁨을 대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10-11절에 보면 희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희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자유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종으로 매인 자들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게 됩니다. 즉 종으로 팔리기 전 자신의 모습으로 완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희년의 규례를 말씀하시면서 아주 귀한 말씀이 뒤이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3장 23절에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토지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영영히 팔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나도 엄청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너희 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은 지금까지 자기의 소유가 없이 살았습니다. 노예가 무슨 재산이 있습니까? 또 광야에서 저들이 소유할 토지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제 저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정복하고 거기에 정착해야 합니다. 땅을 분배받고, 그 땅을 경작해서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서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받을지라도 그 땅에서 토지 소유자, 곧 지주(地主)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너희는 거류민, 즉 잠깐 머물다가 떠나야 하는 자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나그네처럼 잠시 동거하는 자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땅에 이스라엘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류민, 즉 나그네라고 하는 신분은 언제나 돌아갈 본향이 있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나그네는 언젠가는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입니다. 아무리 이곳이 좋아도 여기에서 영원히 머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 있는데, 히브리서 11장 9-10절에서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 그리고 그 약속의 자손으로 태어난 이삭과 야곱,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 땅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땅을 자신들의 영원한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곳이요, 하나님이 지으신 곳입니다. 오늘 우리의 표현대로 한다면 천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그 땅에서 안주하려고 하지 말고, 미래에 있을 그 영원한 나라, 저들의 조상들이 바라보았던 그 하나님의 도성을 대망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희년에 주어졌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 우리가 본 레위기 25장 10절의 말씀을 가지고 선지자 이사야는 미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에 펼쳐질 “대 자유”의 사건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이사야 61장 1-2절에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와 “갇힌 자에게 놓임”이라고 하는 표현은 레위기 25장 10절에 등장하는 “자유”와 같은 개념입니다. 또한 레위기에 등장하는 “이 해, 곧 희년”을 이사야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이 해와 날은 여호와의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종말론적 표현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마지막 날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용하심으로 자신에게 적용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펼치고 읽으셨는데, 그 본문이 바로 이사야의 글이었습니다. 그 본문을 다 읽으신 예수님이 무리를 바라보시면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4:21). 예수님은 당신이 걸어가시는 십자가의 길과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이루신 그 구원 역사, 그리고 다시 오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그 대망의 주의 날. 그 은혜로운 날들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 명령하신 그 희년과 그 희년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결국 안식일을 포함한 그 시스템 속에 포함된 모든 날들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그리고 그로 인해서 이루어질 천국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면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말씀이 성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9-11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4장 11-13절에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안식을 결코 얻을 수가 없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안식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이를 우리에게 믿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 삼으신 성령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 주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더욱 강해지기를 축원합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