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22)
본문 : 막 6:12-16(12~29)
제목 :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12.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14.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그가 태어나실 때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씀하셨고 그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사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이고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그리스도라’는 직함이 함께 쓰였는데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선적으로 하신 일은 예수님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직함을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베푸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그 끝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도 베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도 행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정말로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붙잡아서 예수님의 이름을 알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행 4:17-18)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협박에 굴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1~4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바로 알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바로 알고 그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교회의 일에 열심을 낸다고 해도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구원을 잘 모르면 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예수님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둘씩 전도하러 나가서 회개하라고 외쳤을 때 제자들이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살펴보시고 교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함
본문 15절에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행적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못하고 배척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보다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믿지 못하는 모습들이 여러 가지였습니다. 아예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믿기는 하지만 믿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6장 서두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신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인간으로만 보았습니다. 그것도 천한 집에서 천하게 태어나서 천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람들은 그래도 예수님이 그저 한 인간이 아니라 좀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엘리야처럼 특별한 선지자가 다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기록한 책이 선지서들입니다. 이사야에서 다니엘까지 5권을 대선지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호세야에서 말라기까지 12권을 소선지서라고 합니다.
선지서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또 망한 이후에 기록된 책입니다. 주로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망한 이후에는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나라도 회복될 것이지만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의 말을 잘 안 들었습니다. 회개를 외치면 자신들을 돌아보고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면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라고 외치셨을 때 사람들이 “아, 이분이 선지자이시구나,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회개를 외쳤던 그런 선지자 중에 한 분이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한 것은 부분적으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메시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선지자 제사장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임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할 때 이 세 직분을 감당하신 분이심을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를 외쳤고 그로 인해서 핍박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런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만 보는 것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직책 중 일부분만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지 않고 어느 한 부분만 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이런 도덕적인 좋은 말씀을 하시는 분으로 알고 그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 편에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셨음을 보고 그런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신으로 교회가 그런 선한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고아원을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억울한 자 편에 서서 연약한 자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2) 그가 엘리야다.
구약시대의 선지자 중에 가장 능력 있는 선지자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엘리야일 것입니다. 엘리야의 능력 있는 기도는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계속되던 땅에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850대 1로 싸워서 이긴 사람입니다. 각자 제단을 쌓고 누구 제단이 하나님께 불을 받아서 제물을 태울 수 있는가로 대결하여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하지 못한 일을 엘리야 혼자서 기도하여 불을 내리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바로 하나님 나라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지자 하면 얼른 엘리야 선지자를 생각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를 기록한 말라기 선지자는 엘리야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런 능력을 갖추신 분이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세상을 심판하기 이전에 보내주실 선지자라고 인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할 구주로 오신 메시야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선지자들은 결국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따르지 않고 아무리 회개를 외쳐도 회개하지 않고 악을 행하여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려준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본문 14절에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16절에는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헤롯왕가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 B.C 55년경부터 A.D 93년경까지 팔레스틴과 그 인접 지역을 지배한 왕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은 ‘헤롯 안디바(B.C.3-A.D39)’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직후부터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그 지역을 다스리던 왕이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과 그리고 세례 요한과 관계가 많은 사람입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본문 뒤에 세례 요한과의 특별한 관계를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서 자기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라고 하면서 그것이 잘못임을 이야기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아내 헤로디아도 헤롯을 사랑했는지 잘못을 지적하는 세례 요한을 원수로 여겨서 죽이고자 했지만 남편이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서 보호하였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헤롯은 요한이 잘못을 지적했을 때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달갑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기가 막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헤롯이 자기 생일이 되어서 관리들과 귀족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였는데 그 아내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서 예쁘게 춤을 추었습니다.
그것을 예쁘게 본 헤롯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라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딸이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세례 요한의 목을 원한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고 그날에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서도 그 일로 인해서 마음이 언짢았을 것입니다. 동생 부인을 빼앗은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그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충언을 한 세례 요한을 죽였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 선지자가 살아나서 세상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헤롯은 예수님이 엘리야가 아니고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서 나타난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능력은 세례 요한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감히 왕에게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얄미웠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회개를 외치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고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그런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헤롯은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온 것도 잘못이고 그 잘못을 지적한 의로운 사람을 잡아 가둔 것도 잘못입니다. 또 아내나 예쁜 딸의 말을 듣고 세례 요한 같은 훌륭한 사람을 죽인 것은 큰 잘못입니다.
헤롯은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잘못을 지적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했더라면 그를 통해서 예수님에 관한 소식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하기 싫어서 죄를 짓고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헤롯과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한 것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받을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헤롯을 통해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도 바르게 잘해야 하지만 왕 같이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의 행동은 참 중요한 것인데 오히려 나쁜 행동을 합니다.
누구나 다 잘못은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을 누가 지적하거나 스스로 깨닫게 되면 얼른 그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고치면 그 잘못으로 인해서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대로 회개는 복음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소중합니다. 단순히 그 죄만 아니라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가, 듣기 좋은 사람의 말을 듣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중요하게 여길 때 아주 엉뚱한 길로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소에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될 때 단호하게 물리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일을 하다가 믿음 생활하다가 교회에서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가족들의 말에 마음이 흔들려서입니다. 믿음이 없는 가족들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말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엘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뜻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주신다는 것을 알려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시고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하신 이름의 뜻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 이름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아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을 때에 그 이름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그저 천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여겼지만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 같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한 사람이나 선지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 속에서 그리스도라는 직함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귀한 믿음은 회개를 통하여 시작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쩌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회개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믿음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