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32)

  본문 : 딤후 4:9-13

  제목 :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9.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로 하나님의 그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자기가 받을 분깃을 달라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를 멀리 떠나버렸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며 살면서 그 재산을 다 낭비해버리고 거지 신세가 되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간 자식을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또 어쩌다가 복음을 듣고 돌아왔던 사람이 다시 세상을 사랑하여 떠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의 마음도 그런 마음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힘들게 돌아온 사람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마음졸이고 사는 것이 목회자들입니다. 어쩌다가 믿음을 버리고 떠나갔던 사람이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늘 기도하면서 삽니다.

 

  여러분들이 목회를 해봤던 분들이라면 그런 마음을 알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도 않을 것이고 혹시 떠났다가도 빨리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 애타는 목회자의 마음을 모르니까 작은 일 때문에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믿음을 버리기도 합니다.

 

  저는 특별히 작은 교회의 목회자로서 평생 그런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어쩌다가 교회를 떠난 사람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우리 교회에 다니다가 다른 교회로 가기도 하고 믿음을 떠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인지라 때로는 떠나는 사람을 원망하면서 살기도 했습니다. 어디 가서도 신앙생활 잘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에 함께 있으면서 신앙생활 잘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때로는 불쌍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음의 바른 진리를 선포하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해주는 교회를 떠나서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오늘 본문부터 4장 끝까지는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사사로운 부탁을 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사로운 부탁을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서신서들은 대부분 복음의 진리를 말하고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에서는 그런 교훈은 생략하고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떠난 사람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고 바르게 살고 좋은 일 하면서 살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지키고 사는가 믿음을 버리고 떠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복음을 바르게 전하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시고 사도바울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의미는 다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 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너는 어서 속히 교회로 돌아오라고 기도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본문 9절에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말합니다. 편지를 받는 즉시 출발해서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빨리 오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로마에 있고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습니다. 로마는 지금 유럽의 이탈리아 로마를 말하고 에베소는 지금 아시아의 터키에 있습니다. 로마와 에베소의 거리는 꽤 먼 거리고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해 있지 않았던 세상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오랫동안을 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이렇게 멀리 있는 사람을 왜 빨리 오라고 했을까요? 이미 편지를 써서 에베소에서 목회할 때 바른 복음을 전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 바로 디모데를 로마로 오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그때 사도바울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선은 아마도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더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일 것입니다. 이미 서신을 통해서 다 이야기했지만 글로 쓰는 것보다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신서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썼지만, 사실은 모든 시대 모든 목회자에게 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사사롭게 개인적으로 할 말은 쓰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개인적으로 못다 한 말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마음으로 진실되게 느끼고 깨달아서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사적으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을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을 조심해야 하고 어떤 사람을 믿어야 하는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잘 모르고 삽니다. 말은 믿는다고 하고 말은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알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만나서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면서 복음보다 세상에서 잘 살고 보람 있게 사는 것을 더 강조하기 때문에 복음을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도바울이 또 급하게 디모데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적인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다 떠나고 같이 있는 사람이 없이 외로운 감옥 생활을 해야 했고 그나마 이제 곧 순교를 당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 같은 디모데를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주변에 사람이 많습니다. 뭔가 큰일을 할 때는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실패하면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집니다. 좋다고 찾아오는 친구들도 하나둘 연락을 끊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래도 복음을 전하며 다닐 때는 주변에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살펴보았듯이 주변에 많은 사람이 바울과 함께 바울이 하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보니까 더 이상 사람들이 그를 찾지 않았고 함께 있던 사람도 다 떠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도 사도바울처럼 간절히 내게로 오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몇 사람 한번 만나자고 전화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 생각과는 달리 그 사람들은 별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한 사도바울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음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한 번 더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고 모두 떠나 홀로 된 외로운 마음을 달래보고 싶은 바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본문 10~12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하면서 자신의 주변에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다 떠났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떠난 사람들은 사역 때문에 떠난 사람도 있고 사도바울이 다른 선교지로 보낸 사람도 있고 스스로 바울을 버리고 떠난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1)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바울을 버리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데마가 단순히 사도바울만 버리고 떠난 것인지 아예 믿음을 버리고 떠난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 경우를 다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라는 말을 이 세상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세상을 포기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도 보통 사람들은 가정을 가져야 하고 자녀를 낳고 길러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 일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믿음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될 때도 있었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도 유대교에서 받던 모든 혜택을 다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로마 당국이 기독교를 이단으로 취급하고 기독교를 박해할 때에는 로마시민의 권리를 포기하고 당국의 눈을 피해 먼 나라로 도망을 하든지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숨어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오늘날도 모슬렘 국가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나라가 주는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떳떳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 나가서 살아도 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살면 복음전파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데마라는 사람은 바울 곁에서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면서 헌신하는 사역자가 되기보다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데마가 믿음을 버리고 떠났다기보다는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로 살기를 원해서 사도바울을 떠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을 사랑하여라는 말을 앞의 8절 말씀에 있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이라는 말과 대조해서 해석하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을 아예 버리고 세상으로 떠난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 세상을 살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살지만 그들과 다른 것은 이 세상보다 영원한 천국을 더 사모하며 그날을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보다 영원한 천국을 더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데마는 영원한 천국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을 떠났다고 하기 때문에 믿음까지 버린 사람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더 잘살고 더 즐기면서 살기 위해서 천국 소망을 버린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그래도 믿음은 버리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신앙생활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좀 섭섭하지만 형편에 따라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믿음만 바르게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아예 믿음을 버린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 가슴이 아픕니다. 믿음 생활을 교회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믿음 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함께 서로 도와주고 서로 격려해주면서 해도 어려운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특별히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바른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2)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라고 했습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레스게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오늘 본문에만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서 이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성경을 기록한 그 시대를 가보면 잘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2천 년이나 지난 지금에는 그 시대의 형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기가 힙듭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는 그 사람을 잘 모르지만 바울 시대에는 이 사람 이름만 대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도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였다면 그가 갈라디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갔을 것입니다.

 

  갈라디아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갈라디아서의 소아시아지방의 갈라디아인지 또 다른 곳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당시라면 사역자가 필요했던 그 갈라디아가 어디인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당시에 사도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던 유명한 사역자가 새로운 곳에서 복음을 전하거나 아니면 복음을 전해서 교회가 세워졌는데 사역자가 없어서 바울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혹은 복음을 전했던 곳에 거짓 선생이 나타나서 다른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수습하기 위해서 그것을 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일로 바울을 떠났다고 해도 바울의 마음은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떠났지만 바울의 마음은 함께 일하면 힘이 될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디도는 디모데후서 다음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서신의 수신자 디도를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참 아들이라고 한 것처럼 디도에게도 참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디도는 늘 사도바울과 함께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순회 전도를 다닐 때도 함께 다녔고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도 같이 갔습니다. 때로는 떨어져서 혼자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그레데 섬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달마디아는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지방을 말합니다. 로마에서 아드리아해 건너 맞은편 반도에 있는 나라입니다. 디도가 거기로 간 것도 바울을 배반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하던 복음전파를 위해서 가까운 곳으로 떠났습니다.

 

3)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라고 했습니다.

  두기고는 사도행전에서 아시아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행한 사람이었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함께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현지에 전달한 사람도 두기고입니다.

 

  이 사람은 사도바울이 에베소로 보낸 사람입니다.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를 로마로 오게 하기 위해서 먼저 에베소로 보냈습니다. 꼭 필요한 일을 위해서 사도바울의 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은 바울을 떠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을 배반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사역을 위해서 부득불 떠난 사람도 있고 바울이 보낸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떠났든지 사도바울은 그들과 헤어짐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함께 동역하며 서로 도와주면서 살았던 시간을 추억하면서 헤어짐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헤어짐도 슬픈 이야기지만 바울을 떠난 사람들이 바울을 떠나서 변질된 복음을 따르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만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끝까지 함께 신앙생활 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이 간절한 외침을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떠난 우리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서 하는 외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믿음 생활을 잘하지 못한 성도들을 향한 간절한 외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 붙잡고 한 주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교회를 떠난 성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