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29)
본문 : 딤후 4:3-5
제목 :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주에 배운 1~2절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왜냐하면”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에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히 명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심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실 것을 생각하며 엄히 명한다고 했습니다.
그 명령은 이 복음의 진리를 항상 전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환경이 바뀌고 세월이 지나고 사람들이 변한다고 해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이 진리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면서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명령을 하고 나서 “왜냐하면”이라고 설명합니다. 왜 이런 명령을 그것도 엄하게 내리는가 하면 복음을 전파해도 듣지 않을 때가 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듣지 않고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들으려고 해서 진리가 아닌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최선을 다하여 바른 교훈, 바른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 염려하던 때가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런 욕심을 채워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몰려갑니다. 그런 욕심을 채워주는 설교를 하는 교회로 몰려가고 진리를 바르게 선포하는 교회는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은 바른 교훈을 전하지 않고 그 욕심을 채워주는 세상적인 교훈을 전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간다고 해서 그런데 현혹되면 안 됩니다. 진리는 늘 거룩한 소수의 사람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본문 3절 말씀에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라고 했습니다.
1) “때가 이르리니”라고 했습니다.
3장을 시작하면서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통하는 때가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때가 이른다고 한 것은 3장에서 말씀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말세는 말세지말을 말합니다. 말세의 끝 즉 세상 끝을 말합니다. 세상의 끝이 가까이 오면 신앙 생활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다시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의 역사는 고난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도 고난으로 시작해서 십자가의 고난으로 마치셨습니다. 물론 그 고난이 부활과 승천으로 연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계실 때는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은 늘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모여서 예배드리다가 발각되면 붙잡혀가서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화형에 처하기도 하고 더 비참한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붙잡혀가고 매를 맞고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고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토굴로 외국으로 피해 다니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날의 고난은 그렇게 심한 고난이나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은 없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고 하지만 가정에서 이렇게 좋은 방송 시설을 통해서 같은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고난을 자초한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신앙생활을 힘들어하고 교회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 내부에 침투해 들어온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혼란스럽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고난의 때를 이미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욕심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고 교회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 때문에 바른 믿음을 가지기 힘들어하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거짓 선생에게 속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바른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디모데전후서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른 교훈의 출처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딤전1:11)라는 말씀을 따라 복음에서 나온 교훈이 바른 교훈입니다. 바른 교훈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딤후2:15)라고 하신 말씀에서 성경의 핵심인 복음의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얻은 것이 바른 교훈입니다. 바른 교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딤후3:15)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이 세상에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살게 하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성경의 바른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른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교훈을 말합니다.
성경의 핵심이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은혜를 받는 비결을 말씀하는 이 바른 교훈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욕심 때문에 이 소중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3)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라고 했습니다.
귀가 가렵다는 말은 귀가 듣기 좋은 말이라는 뜻이며 자기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바른말을 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이라도 칭찬하는 말을 좋아하고 들을 때 기분 좋게 하는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도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합니다. 죄, 심판, 지옥형벌, 이런 말은 듣기 싫어하니까 잘 안 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고 성공을 좋아하니까 복 받는 비결을 이야기하면 좋아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입에 써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듯이 귀에는 거슬려도 영혼을 위해서 바른 교훈을 들어야 합니다. 들을 때는 기분이 나빠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는 귀한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본문 4절에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인지라 책망하거나 듣기 싫어하는 소리에 귀를 막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들어서는 안 되고 잘못 들어서 넘어가면 이 소중한 복음을 믿는 믿음을 버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 허탄한 이야기는 망령된 신화를 말하는 것이지만 헛된 이야기, 쓸데없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그들은 진리를 외면하고 쓸데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꼭 알아야 할 진리는 외면하고 아무 소용도 없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왕의 이야기를 들어보셔서 아실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되어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그의 소원대로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지혜를 가지고 처음 목적대로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일에 사용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지혜를 잔꾀로 바꾸어서 자기 자신이 잘 먹고 즐기는 일에 사용하여서 백성들은 오히려 왕이 잘 먹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 피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말년에 잘못을 깨닫고 쓴 글이 전도서입니다. 그 전도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2-3)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제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으로 살아봤고 은금 보화를 엄청나게 모아서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살아봤고 수천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즐기면서 살아봤는데 아무 소용없는 것이고 헛되고 헛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욕심을 가지고 산 사람들의 모든 욕심을 다 이루어봤는데 나이가 들고 죽을 때가 되니까 다 부질없는 짓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론을 이렇게 말하고 전도서를 마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본분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설교에 대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설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성도들이 설교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성도들이 귀를 기울여 듣지 않고 외면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설교를 듣게 하기 위해서 웃기는 이야기도 하고 세상 노래도 불러보고 인터넷에 떠도는 상식들을 퍼 날라 보기도 합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만한 철학이나 도덕을 성공에 관한 이야기들을 설교에 삽입합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설교가 본분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습니다. 죄를, 심판을, 구원의 복음을, 영원한 천국을 선포하고 알려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를 상실하고 쓸데없는 이야기 헛되고 헛된 이야기를 하면서 듣는 사람들이 기뻐한다고 설교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죽을병에 걸려서 내일모레 하는 사람에게 와서 세상 성공이 어떻고 인간관계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나 하고 웃기는 농담이나 하고 간다면 그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죽기 전에 회개해야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고백하게 해서 어떻게 하든지 최후의 심판을 면하고 지옥형벌을 면하게 해야 할 사람에게 그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웃기고만 있다면 참 한심한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내일모레 죽을 사람은 아닙니다.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으로 보면 몇십 년 몇백 년이 내일모레이고 또 실제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설교자의 사명은 내일모레 죽어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욕심 때문에 이 진리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돌이켜서 세상 헛된 일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떠나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진리의 말씀에 귀를 고정하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듣는 일이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본문 5절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라고 했습니다.
말세지말이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가 듣기 좋아하는 말만 들으려고 진리에서 떠나서 허탄한 이야기 세상의 헛되고 헛된 이야기를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나서 그렇다고 할지라도 너는 거기에 굴하지 말고 전도자의 일을 하고 그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 ‘예’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따라 흘러내려 가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대세를 거슬러서 올라가는 일은 참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이 다 욕심을 따라 살고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할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싫어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이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는 사람은 끝까지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 전도자의 직무를 다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신중하고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신중해야 하고 모든 일에 고난을 당할 각오를 가지지 않고는 이 직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중하라’라는 말은 근신하라, 침착하라, 자제하라, 정신을 차리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사람들이 다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경솔하게 같이 따라가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를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여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따라서 정책이 결정됩니다. 무엇이든지 일단은 사람들이 좋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싫어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양심적이고 바른 상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사람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이 바른 신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들이 좋아하는 설교가 좋은 설교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따라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진리를 따르고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일에는 고난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이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은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외로운 길입니다. 그 외로움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 세상 행복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인기도 있고 대접도 잘 받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인기도 없고 대접도 못 받기 때문에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2)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라고 했습니다.
전도자란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특별한 임무를 맡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 특별한 임무는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직접 적으로 간접적으로 다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직무는 목회나 여러 가지 봉사의 일을 의미합니다. 이 직무 역시 복음을 전하는 직무를 말합니다. 교회에서 여러 가지 직분을 맡았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주요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받게 하는 임무를 가졌습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모든 봉사나 헌신은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교회가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이 직무를 바르게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이 귀한 일임을 생각하시고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이미 말세의 지말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복음을 듣는 일을 거부하고 세상 재미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헛되고 헛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시대에 복음을 믿고 따르는 일이 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신중하게 생각해보면 이 복음이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최고의 진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최고로 소중한 일이며 보람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기억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