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25)
본문 : 딤후 3:10-12
제목 :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0.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임을 계속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우선 사탄이 장악하고 있는 악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만 가지고 미워하면서 비난하고 공격합니다.
그리고 그 사탄이 교회 내에도 양의 탈을 쓴 이리를 들여보내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온갖 이단들 거짓 선생들 가라지와 같은 가짜 교인들이 진리를 변질시키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공격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 우리 속에도 타락한 죄의 습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도 흔들리고 사탄과 그 부하들의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먼저 세상의 악한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그 악을 이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침투한 이단이나 거짓 선생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선한 척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지만 그들 마음은 부패해 있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어떤 상태로 하나님을 섬기는가에 따라서 잘못하면 믿음이 변질되기도 하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다른 복음 거짓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면 누구든지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박해가 올 때 어떤 마음 자세를 갖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고난들을 상기시키면서 이런 고난이나 핍박을 이기기 위해서 자신이 가졌던 마음 자세를 가지고 이기라고 했습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한 바울의 충고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어떤 박해가 와도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마음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박해를 당할 때 가져야 할 마음 자세
본문 10절에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11절에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와 연결된 말입니다. 원어에서는 이 문구가 앞에 나옵니다. 그러나 너는 내가 한 교훈이나 행실이나 의도 등을 잘 살펴보고 알았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모세를 대적한 얀네와 얌브레와 같이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들은 바른 정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부패한 사람이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그런 사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너는 나에게서 바른 교훈을 받은 사람이고 내가 행한 모든 일을 잘 보고 안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바울의 마음으로 무장하고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1)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교훈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를 시작하면서 다른 교훈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의 교훈이 복음을 따르는 것임을 말씀했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교훈은 율법을 지켜라, 똑바로 살라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르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은 우리 인간이 지키고 살아야 할 원칙이지만 그렇게 살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바르게 알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기록된 인물들이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보다 그렇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형벌을 받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교훈은 복음을 따르는 것 즉 복음을 따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까지도 사실은 율법의 극히 일부만 지키는 것이고 사람들 앞에서 지키는 척하는 위선일 뿐이기 때문에 그런 교훈을 따라 살려고 하기보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이 진실한 신앙인가 거짓된 신앙인가를 확인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교훈을 좋아하는가를 보면 됩니다. 율법을 좋아하고 공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교만한 사람이거나 위선자입니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흉악한가를 아는 사람은 공의를 내세우지 못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한 자세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좋아하고 복음을 좋아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복음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평신도 때 교만하게 살 때는 목사님의 설교를 잘 안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설교를 듣고 은혜에 감격하게 된 계기는 사업 실패 후에 겸손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잘나가서 교만하게 살았을 때 지금 생각하면 그 목사님도 저처럼 교만한 마음으로 설교를 하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 자신은 늘 옳고 성도들은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고 늘 왜 그렇게 사느냐 좀 더 바르게 살고 좀 더 충성하면서 살라고 했습니다. 나도 똑바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에게 하는 설교는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별로 관심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업에 실패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대전의 어떤 교회에 다녔는데 이 대전의 목사님은 아주 달랐습니다. 이분도 자녀가 불구로 태어나서 자녀 때문에 고통을 당해서 그런지 늘 자신을 불쌍한 처지에 놓고 겸손하게 설교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똑바로 살 수 없고 그래서 세상에서는 늘 고난을 당하고 살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부족한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했고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셨습니다. 그 설교가 바로 저에게 하는 설교로 들렸고 그 은혜에 많이 울었습니다. 바울의 교훈이 바로 그 은혜의 교훈이고 복음의 교훈입니다.
이어서 바울의 행실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바울 자신의 행동 생활 살아가는 방법을 말합니다. 바울이 살아가는 방법은 앞에서 말한 세상의 악한 사람들이나 거짓 선생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겉으로만 바르게 사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살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늘 살피면서 그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또 바울은 자신의 의향에 대해서 말합니다.
의향이란 삶의 의도, 삶의 목표, 삶의 목적을 말합니다. 바울은 삶의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서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삽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욕심에 끌려서 사는 사람들은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고 마음이 부패한 상태로 살지만 바울은 그런 세상 욕심에 끌려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자신은 오히려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살았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의 영혼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핍박도 기쁘게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욕심에 끌려서 사는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고 희생하거나 헌신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것을 움켜쥐고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참된 신앙인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계명인데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사람은 아직 성숙한 신앙인은 아닙니다.
2)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이미 나의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보고 알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에서 쓰입니다.
사람마다 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잘 살펴보면 그 믿음이 다른 믿음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기 마음에 원하는 바에 따라서 그 믿음은 다양합니다.
사도바울의 믿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시고 날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받게 하는 유일한 것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오래 참음이란 여기서는 관용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오래 참고 용서해 주고 관대하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나쁜 짓을 했을 때 바로 가서 원수를 갚지 않고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못했을 때마다 벌을 내리신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참아주시고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그때그때 정죄하고 뭐라고 하면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사람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인지라 실수도 하고 지나고 나면 잘못을 깨닫기도 하기 때문에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인내는 나 자신에게 오는 고통을 참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에는 이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결과가 이 세상에서 보다는 영원한 천국에서 크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참된 사랑을 하는 것은 참 힘들기 때문입니다.
박해를 당할 때 하나님께서 건지신다는 확신
본문 11절에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는 사도바울이 전도 여행 중 그곳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은 곳입니다. 사도행전을 공부할 때 다 살펴보았던 부분이고 시간관계상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안디옥은 1차전도 여행 때 들렸던 비시디아 지방의 안디옥을 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곳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장시간 동안 복음에 관하여 설교를 했습니다.
구약성경에 일어난 모든 일이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서 구원하시기 위함이고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전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싫어하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서 추방당한 곳입니다.
이고니온은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에서 추방당하여 오게 된 곳입니다.
이곳에 와서도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서 두 사도에게 욕을 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안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로 도망가게 됩니다.
루스드라에서는 사도바울이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을 거쳐서 여기까지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내쳤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고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루스드라는 디모데의 고향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었고 바울이 행한 이적도 보았고 또 바울이 당한 고난도 보아서 알았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바울이 확신한 것은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건져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디모데나 후일 이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들도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그 고난에서 건져주실 것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복음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는 그런 위험한 고난은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난도 있고 유혹을 받을 위기도 당합니다. 그런 어려움이 지금은 어려움 같지만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켜서 영원한 천국까지 이르게 하는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할수록 박해를 받아야 한다는 각오
본문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삶이란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사는 삶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경건한 삶 앞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한 삶이란 복음을 따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나 행복이나 보람된 삶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그래도 믿음을 통해서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부자로 잘사는 믿음, 세상의 고난을 없애고 평안한 삶을 살게 하는 믿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말하고 그 믿음에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무릇'이라는 말은 모든 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따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의 행복보다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바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사람을 보면 그 자체가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다들 잘 사는데 나만 어려운 삶을 산다고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고 더 잘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복음을 따르지 않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우리가 가는 이 복음의 길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런 비웃음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핍박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난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각오를 하고 살아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악을 행하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거절당하고 버림을 받은 불쌍한 사람들을 따라 살지 말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을 따라 사는 길은 고난의 길임을 잊지 말고 비록 어렵고 힘이 든다고 해도 이 믿음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주시고 큰 영광을 우리에게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