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경주자
히브리서 12장 1~3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성도 여러분! 본문은 “이러므로(τοιγαροῦν)”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앞의 내용에 근거하여 계속되는 추론, 추리의 내용이 계속됨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사도가 교회를 향하고 하고자 하는 권면은 앞에서 언급된 믿음의 선진들의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도는 제11장에서 언급한 믿음의 선진들을 오늘의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믿음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 믿음의 선진들은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따라서 저들의 믿음을 이어받은 현재의 성도들도 닥치는 환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거룩한 삶을 위해 더욱 힘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오늘의 성도들을 “경주자(競走者)”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로마 제국에서 있었던 올림픽과 같은 경기를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올림픽에서 최고의 경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달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 경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달리기 경기를 비유로 해서 성도의 순례길을 경주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달려가는 믿음의 길은 마치 마라톤과 같은 경주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반드시 달려가야만 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 경주를 마친 자에게는 분명한 상급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경주는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의 성취를 소망하며, 우리의 전 인생을 걸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 경주는 중간에 멈출 수 없습니다.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시는 그 순간까지 달리고 또 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 끝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면류관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이 면류관은 저 로마 제국이 시행하는 올림픽의 우승자에게 주는 월계수로 만든 면류관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의 경주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 증인들 앞에서 하는 경주자입니다.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경주를 지켜보고 응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처럼 많은 증인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그 경주를 끝낸 자들입니다. 바로 11장에서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을 포함한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입니다. 저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지킨 자들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성취를 소망하면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끝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던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경주의 모범을 보인 자들임과 동시에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잘할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들은 우리보다 훨씬 적은 모범을 가진 자들입니다, 저들은 우리보다 훨씬 적은 증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에 비해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많은 모범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증인을 가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응원을 받고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의 경주는 앞에 등장하는 저 믿음의 선진들의 경주보다 더 아름다운 경주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우리가 이 믿음의 경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거치는 것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고대의 올림픽에서 달리기하는 선수들은 옷을 다 벗었습니다. 이는 옷이 선수들의 움직임을 방해한다고 생각했고, 또한 몸의 무게를 줄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의 경주를 하는 자들도 그 경주를 방해하고 거침돌 되는 것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버려야 하는 첫 번째는 “무거운 것”입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릴 수는 없습니다. 몸은 최대한 가벼워야 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따라서 이에 거스르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경주에서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면 교만이나 나태함 같은 것입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지 못합니다. 또한 나태한 자는 장애물을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활력을 잃게 되고 결국은 퇴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아름다운 믿음의 경주를 위해서는 그 발걸음을 방해하는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방해가 된다면,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라고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4:26).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버려야 하는 두 번째는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이는 경주자들 앞에 파 놓은 함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쉽게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 때 가장 쉽게 다가오는 함정은 바로 “의심”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의심, 하나님의 상급에 대한 의심 등 참으로 다양한 의심들이 우리의 경주를 방해합니다. 이 의심은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만 느려지게 합니다. 이 의심은 우리의 방향이 자꾸만 흐트러지게 합니다. 이 의심은 우리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불신앙의 요소인 의심을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이 믿음의 경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기의 인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만사를 체념하고 마치 운명에 맡긴 것처럼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에서의 인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힘든 상황을 마주 대하여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실 경주자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왜 내가 이 경주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도 들 때가 있습니다. 계속되는 장애물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승리자는 그 모든 상황에서 인내하는 자입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그 모든 상황과 순간을 이겨냅니다. 그럴 때일수록 힘을 내고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믿음의 경주자들에게도 이러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을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극한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우리는 인내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예수님만큼 힘이 들겠습니까? 예수님만큼 치욕스럽겠습니까?
우리는 경주의 과정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에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데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인내가 없다면 우리의 경주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는 믿음의 경주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증인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주를 통해서 저들의 경주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승리를 통해 저들의 경주가 승리임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경주에서 거치는 것들을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 부딪힐지라도 인내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를 방해하는 그 어떤 세력과도 끊임없이 싸워가면서 마지막까지 완주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경주자입니다.
Ⅱ.예수님을 목표로, 예수님처럼 달리는 경주자입니다.
달리기하는 경주자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를 잃어버리면 올바른 경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엉뚱한 곳을 향해서는 아무리 달려봤자 그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또한 경주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내가 달리고 싶은 대로 달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의 경주자들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경주는 확실한 모범을 따라서 달려야만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우리의 영원한 목표이면서 또한 우리의 완전한 모범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믿음의 경주자는 오직 예수만이 목표여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바라보자(ἀφορῶντες)”라고 하는 권면으로 시작합니다. 즉 우리가 믿음의 경주자라면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집중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권면입니다. 그리고 이는 한 번 확인하고 끝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경주를 시작하는 처음부터 그 경주를 마치는 끝까지 우리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믿음의 경주에서 유일한 목표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그 이유를 오직 예수만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이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우리 믿음의 주인이요, 우리 믿음을 통치하시는 분으로 소개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 즉 우리 믿음을 완성하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믿음의 경주에서 목표로 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목하고 달려갈 때,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표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목표로 하고 달려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우리의 영원한 푯대가 되시는 예수님만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경주자는 오직 예수님처럼 달려가야 합니다.
사실 저 믿음의 선진들은 우리의 경주에 있어서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저들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달렸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완전한 모범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본문 2절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지셨던 그 십자가는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치욕과 고통의 형벌이었습니다. 이는 가장 불명예스럽고 견디기 힘든 형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십자가의 형벌은 보통의 죄인들에게는 가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자의(自意)로 지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 십자가를 피하실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도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십자가에서 그 고통과 치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것만이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기에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시는 장면과 관련하여 세 가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로 인한 수치를 무시해 버리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라고 했는데, 이는 십자가에서 겪는 수치와 야유와 조롱을 무시해 버리시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러한 모습을 경멸하셨고, 비웃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참으셨습니다. 분명 십자가는 불명예의 상징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십자가 너머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따라서 그 영원한 기쁨이 지금의 불명예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예수님은 그 멸시와 수치 따위를 무시해 버리셨던 것입니다.
셋째,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신 최종적인 결과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한 자, 로마에 반역한 자라고 하는 오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이 구원자로서의 영광을 회복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는 것은 그분이 성육신 이전의 영광을 완전하게 회복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더 나아가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자기 백성을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치를 참으셨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참으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멸망에 머물지 않고 새 생명을 얻게 되는 역사를 보시면서 기쁨으로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 수치 후에 회복하실 영광을 위해서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처럼 경주해야 합니다.
본문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주하다 보면 한계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포기하고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본문에서는 “피곤하여 낙심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놓이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경주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능력을 지나쳐서 달려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 안에서 달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생각해야만 합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것보다 더 심한 상황에서도 참으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어떠했습니까? 저들은 그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참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눅23:34).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다”라고 고백했습니다(벧전2:23).
예수님의 참으심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참으심은 그 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충분히 그 상황을 벗어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오히려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대적자들을 진멸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마26:23). 그럼에도 예수님은 참으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그 참으심 때문에 죄인들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벧후3:15).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는 믿음의 경주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모욕과 조롱을 받으며 달리는 경주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주가 끝나는 날, 우리 주님께서 예비하신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 면류관의 영광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어떤 십자가보다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참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위해서 참아야 합니다. 그 참음으로 우리의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경주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다리시는 그 결승점까지 달려가는 경주자들입니다. 앞서간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우리의 경주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지금도 젖들은 우리의 경주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주를 통해서 자신들의 경주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히11:40).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만 이 경주는 우리의 의지나 욕심으로 하는 경주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가능한 경주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하며 경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늘 점검하며 경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참으심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참으며 경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경주에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으로 씌워주실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한 사람도 낙오자 없기 우리의 경주를 완주함으로 주님 앞에서 영원한 영광과 생명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우리의 영원한 푯대가 되시고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