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20.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죽전알01)
본문 : 롬 1:18-20
제목 :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나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요즘 입에 달고 삽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있고 나도 역시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 죽음이라는 것을 꼬리에 달고 다니는데 늘 멀리 있거나, 나에게는 닥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다가오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메멘토 모리”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며 문화부 장관을 지내신 이어령 씨가 죽기 직전에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은 죽기 전에 알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가요 돈많은 사람의 대표라고 하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죽기 전에 꼭 알고 싶은 것 24가지를 당시 유명한 신부에게 질문을 했는데 답변을 준비하는 중에 이병철 씨도 죽었고 답변을 준비하던 신부도 답변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후일 어떤 신문 기자가 그 질문을 역시 병으로 죽어가고 있던 이어령 씨에게 가지고 와서 당신이 이 질문에 답을 써 보라고 했고 그 답을 가지고 메멘토 모리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습니다.
차동엽이라는 신부도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이 질문에 답을 써서 책을 냈습니다. 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최원호 씨라는 분도 “삼성 이병철 회장과 챗GPT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습니다.
이 책들을 제가 대충 다 읽어보았습니다. 우리와 조금 신학이 다른 천주교 신부와 믿음이 있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인문학자가 그리고 심리학자가 챗GPT의 도움을 받아서 쓴 글이라 제가 볼 때는 좀 답변이 빈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개혁주의 목사로서 성경을 중심으로 이 질문에 답을 가지고 설교를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복음을 중심으로 대답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죽음이란 우리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그 해결을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이미 여러분이 다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좀 더 자세하게 성경적으로 살펴보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질문인 “신(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라는 질문과 그리고 그 질문과 함께 한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신이 있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늘도 무심하지”, 힘든 일을 만나면 “아이구 하나님”, 누가 나쁜 짓을 하면 “하늘도 무섭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하늘에 계신 신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이런저런 신들을 정하거나 만들어서 섬기고 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오랜 유교관습으로 조상 신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살았습니다. 산에는 산신령 바다에는 용왕 장독에는 장독 귀신 부엌에는 부엌 귀신이 있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 신들을 잘 섬기고 그런 신들에게 잘해야 복을 받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이 머리가 좋아지고 과학이라는 것을 통하여 세상을 좀 더 알아가면서 그런 신들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신은 없다고 선언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과학이나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참 신이신 하나님마저 없다고 선언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 같은 것은 필요 없고 나 스스로 노력하면서 살면 되고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건방진 사람들은 내가 연구해 보니 하나님은 없더라.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머리로 그 작은 지식으로 엄청난 하나님이 있느니 없느니 평가하는 건방진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성경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천하고 불명예스럽고 무례하고 촌사람 같음을 강조한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점잖게 표현해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좀 실감 나게 바보 같은 놈, 멍청이 같은 놈, 무식한 놈, 이런 표현을 써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정말로 바보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요즘 유튜브 많이 보시죠. 가끔 어떤 사람이 좀 배웠다고 좀 똑똑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무식한 놈 무식한 놈하고 욕하고 나오면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것보다 안 계신다는 주장이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작은 흔적 하나만 발견해도 되지만 없다고 하려면 온천지를 다 뒤져야 하고 하늘 끝까지 다 올라가 본 후에 그렇게 주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시작하면서 1권 1장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면 즉 자신이 얼마나 허접한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론에 말씀드린 이병철 회장 같은 사람도 돈 많지요. 성공했지요, 말 한마디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순종하지요. 또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하고 부러워하고 박수를 쳐주니까 자신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죽음 앞에 선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신을 찾게 된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계실까?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비로소 하게 된 것입니다.
칼빈은 인간이 “우리 자신의 무지, 공허, 빈곤, 허약, 이보다 더한 것인 타락과 부패를 자각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소나마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죽을병에 걸려 보고 불가항력적인 사고를 당해보기도 하고 늙고 병들어서 쇠약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은 옷 차려입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서 살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지만, 그 안에 있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면 신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초라한 나 앞에 서 계시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자연을 보거나 성경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만 성경에 보면 직접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 엄청난 영광 앞에 놀라서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하나님을 보고 난 후에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삿 13:22)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을 뵌 후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바울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했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빈약한 인간의 행위나 노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복음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엄청난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니까 감히 하나님이 없다고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며 타락하고 부패하고 교만하고 건방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통계를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80%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26억 7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32%라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서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참 미련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강해 설교를 들으면서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또 믿음 없이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사람과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 두 종류입니다. 물론 중간에 긴가민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도 결국 이 두 종류 중 하나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것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심도 믿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씀처럼 들리겠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참 의미가 깊은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이 그냥 내가 믿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믿음은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믿고 믿기 싫다고 안 믿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죄에서 구원받아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사람으로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버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죄 구덩이에서 그대로 살다가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갈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을 사람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 즉 선택을 받은 사람에게는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들어가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닫게 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마음에 귀신이 들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귀신의 종이 되어서 죄의 구덩이에 뒹굴고 진리를 들어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악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즉 선택받은 사람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선택받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태어나게 해주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어서 아무리 진리를 선포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게 해주셨습니다. 복음의 씨가 그 마음에 떨어지면 잘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마음이 길가처럼 딱딱하고 돌짝밭이나 가시덩굴 같은 밭이라서 자라지 못하고 시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차이를 말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다릅니다. 감사하는가 원망하고 사는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고 사는가 이 세상의 삶에 매달려 사는가 사랑하고 사는가 미워하면서 사는가 어려움을 당하면 기뻐하는가 절망하는가 이런저런 차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뭔가 좀 아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해 보려고 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 중에 존재론적 논증, 목적론적 논증, 우주론적 논증이 있습니다.
존재론적 논증(중세 신학자 안셀무스)은 하나님이라는 개념 자체가 신의 존재를 함축한다는 것입니다.
목적론적 논증(토마스 데 아퀴노)은 모든 만물이 질서가 있게 설계되어 있음을 보면 그 설계자가 있을 것이고 그 설계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주론적 논증(토마스 데 아퀴노)은 이 세상의 만물은 다 그 원인을 가지고 있는데 그 최초의 원인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는 막연히 신이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게는 하겠지만 결정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알 수 있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죽음 앞에 서면 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그런 마음조차 가지지 못하고 체념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보조 질문으로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역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주 쉽게 그 존재를 똑똑히 볼 수 있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정말로 확실하게 보여주셨는데 아무나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그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자연 계시이고 또 하나는 특별 계시입니다. 자연 계시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우주의 자연 만물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보면 그 만물을 지으신 분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앞에 있는 마이크를 보면 이 마이크를 만든 공장이 있고 이 마이크를 설계한 설계자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것을 보아도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이렇게 엄청난 우주가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그냥 저절로 생겼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무식한 사람일 뿐입니다.
만물을 보아서는 그 만물을 지은 신이 있다는 것을 막연히 알 수 있지만 그 신이 누구이신지 무슨 목적으로 만드셨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을 특별 계시라고 하고 그 특별 계시가 기록된 책을 성경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라는 질문이 뒤에 나오기 때문에 그것은 그때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알고 믿는 사람은 너무나 쉽게 그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존재를 너무나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크게 두가지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요 통치자요 주인이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 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가운데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하여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고 그 후에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의 주요 핵심이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주는 주요 핵심입니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그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우리 속에 넣어주시고 볼 수 있게 믿을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심을 믿지 않거나 잘못된 신을 믿고 삽니다.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은 일부러 외면하고 삽니다. 그들이 아무리 고개를 돌리고 외면해도 하나님은 계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따라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늙고 병들고 그리고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됩니다. 죽음 앞에 섰을 때 지옥문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을 부인하고 살았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생각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살게 된 이 큰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