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1019~2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서신에서 등장하는 형태입니다. 첫 번째 부분은 교리적인 부분으로 히브리서 11절에서 101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삶에 대한 교훈의 부분으로 히브리서 1019절부터 시작해서 132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특히 이 삶에 대한 부분은 앞부분에 나타난 교리적인 부분을 근거로 해서 주어지는 권면입니다. 즉 우리가 믿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의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으며, 또한 삶으로 표현되고 고백 되지 못하는 믿음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도는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구약의 여러 가지를 동원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멜기세덱을 포함한 구약의 제사장, 그리고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드려졌던 많은 제사가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되었습니다. 이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비교되었습니다. 이러한 비교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사역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충분하게 설명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히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은 그러므로(ον)”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접속사는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내용이 지금까지 해온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사도는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의 피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과, 이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의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피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관계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죄의 종이라고 하는 신분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뀐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죄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삶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도는 늘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는 실제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제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해졌고, 가려졌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고, 교제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 19절에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담력(παρησία)”은 원래 헬라 시대에 시민이 누리를 완전한 발언의 자유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표현을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특권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아무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일반인들과 제사장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조차도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유와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가진 특권이 엄청난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나아갑니다.

 

 

먼저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의 피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입니다. 이 피는 우리의 죄에 대한 완전한 대가였습니다. 이 피가 우리의 죄를 완전히 덮었습니다. 이 피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죄로 드러나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본문 20절에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의 육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육체를 가리킵니다. 또한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입니다. 그리고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하는 그림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어졌을 때, 성소의 휘장도 찢어졌습니다. 이 휘장은 지성소를 철저하게 가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 지성소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피와 육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하신 성만찬입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떡으로 비유되는 당신의 살과, 포도주로 비유되는 당신의 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6:28).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살과 피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을 통해 나아갑니다.

 

 

본문 21절에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큰 제사장은 원어적으로는 대제사장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한 위대한 제사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등장하는 대제사장 정도가 아닙니다. 그분은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위대한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저들과 구별하여 특별하게 지칭하기 위해서 큰 제사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큰 제사장은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제사장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성소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집을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의 하나님의 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집합체인 우주적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저 하늘에 있는 성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교회를 말씀과 성령으로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왕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14:6).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다리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자아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나는 날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주셨습니다. 육체를 찢기셨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에 대한 굳은 믿음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의 자세

 

 

이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고 그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다면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 마음 순수하고 성실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의 (ληθινός)”은 가짜라든지 불완전한 것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가짜나 불완전한 마음이 아니라 순수하고 성실한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미 앞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결국 이 마음은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마음입니다.

또한 온전한 믿음의 원문의 의미는 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도는 단순히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온전한(πληροφορία)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음과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신다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온갖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다는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약속에 대한 견고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대는 무엇일까요? 사실 그 기대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고 교제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이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확실한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우리 신앙의 발걸음은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망을 날마다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성취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미쁘시다라고 하는 것은 성도의 인생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기초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 소망을, 그 고백을 실천하게 됩니다. 나아가 그 고백에서 떠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5:18).

 

 

3. 성도가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성도의 길은 혼자만의 길이 아닙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입니다. 또한 성도를 통해 세워지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결국 성도의 길은 공동체의 길입니다. 결코 혼자 걷는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서로 돌아보아라는 표현은 서로에게 계속해서 관심을 쓰라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관심은 서로를 감시하고 간섭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관심은 서로의 믿음과 소망이 더욱 견고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 성도는 서로를 사랑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모해야 합니다. 이 사랑과 선행은 구원을 받은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것을 더욱 힘쓰도록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격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라는 것이었고(13:34),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주신 최고의 은사가 바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고전13:8). 또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10절에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본문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습니다.

 

 

이 서신이 기록될 당시에 분명 교회 공동체 안에 모임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안에서 일어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흔들림이나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핍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계속되고 많아지면 교회 공동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따라서 사도는 강한 어조로 이를 경고하면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모임이 무너지면, 성도 상호간에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가지는 소망에 대한 믿음의 고백도 사라집니다, 자연적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되고,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고 맙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있어서 이 모임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힘써야 할 일입니다. 모여야 예배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여야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격려하게 되고, 위로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믿음은 더욱 성숙하게 되고, 소망은 더욱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마지막이 될수록 이 모임이 무너지게 합니다. 모임이 무너지면 자연스럽게 교회가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깨어서 이러한 사탄의 계략을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이 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더욱더 모임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영원한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 자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제 마음껏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께 찬양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깨끗하고 순전한 마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에 대한 확실한 고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 성도들은 서로를 향한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며 신앙의 성숙을 위해 하나님 앞에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임 가운데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원하기를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모이기를 힘씀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