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그리스도의 제사

 

 

 

히브리서 101~10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8장부터 시작된 옛 언약에 따른 제사보다 훨씬 위대한 새 언약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에 대한 말씀이 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본문은 히브리서의 중심을 차지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철저하게 교리적인 내용입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구약의 그 모든 것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분의 제사가 구약에 등장하는 그 무엇보다 위대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을 향해 그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대제사장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완전한 제물이 되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히브리서 101~18절의 말씀은 8장부터 이어온 내용들을 크게 두 가지의 내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1~10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를 제물로 삼아 아버지께 드린 제사의 완전성에 관한 내용이요, 11~18절의 말씀은 그 제사의 영원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는 첫 번째의 내용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완전한 그리스도의 제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옛 언약에 따른 짐승 제사의 한계

 

 

본문 1절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사도는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증명하기 전에 옛 언약 아래에서 드려졌던 제사의 한계를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 옛 언약(율법)에 따라서 드려졌던 구약의 제사는 그림자였을 뿐이요, 따라서 불완전한 것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가 온전한 것이었음을 부각시키며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은 그 자체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온전하게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를 그림자(σκία)”라고 하는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참 형상이 아닙니다. 그림자는 참 형상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는 참 형상의 일부만을 보여 줄 뿐 참 형상의 전부를 보여 주지는 못합니다.

 

 

결국 구약의 제사장들은 이 율법을 따라 반복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사가 죄인을 온전하게 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제사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7장에서 이미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7:11,19,9:9). 율법에 따른 제사는 육체의 예법에 국한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양심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무리 많은 제사, 반복적인 제사를 드렸어도, 그 죄인이 하나님 앞에 직접 설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율법에 따른 제사가 사람을 온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그 제사는 멈추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완전한 제사로 말미암아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는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를 깨닫는 일이 없다면, 다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 때문에 짐승을 죽이는 일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황소의 피와 염소의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죄일에 자신들의 죄를 기억해야만 했고,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매년 짐승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죽어가는 짐승을 보면서, 내가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구나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반복되는 제사와 황소와 염소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했음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옛 언약 곧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짐승의 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제사와 제물이 원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림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는 원형의 모습을 희미하게 보여 줄 수는 있지만 원형이 가지는 그 본래의 기능까지 완벽하게 발휘할 수는 없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인간의 죄는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죄를 완전하게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옛 언약을 따르는 구약의 제사가 가지는 한계였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완전한 원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통한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새 언약에 따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

 

 

본문 5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본문 중간에서 시작하여 7절까지의 말씀은 구약 시편 406~8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는 이 말씀을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께 하신 말씀으로 전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도가 드러내고자 하는 중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최종적이고 완전한 제사뿐이고, 그 근거는 하나님의 뜻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를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는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와 비슷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522절에서 사무엘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을 향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호세아 66절에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제사 제도를 통해서 원하시는 것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을 잡는 그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수많은 짐승을 잡고 그 피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이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들의 죄악은 날로 더해만 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라는 엄청난 책망을 하셨습니다(1:11~13).

 

 

다음으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 몸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사실 황소와 염소의 피를 아무리 많이 흘린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대신하여 희생 제물로 바쳐질 수양을 예비하신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22:13).

 

 

인간의 죄는 오직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만 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의 피를 통해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았지만, 이는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당신의 독생자를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이는 죄가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통로로 한 여인을 준비하셨고, 그 여인을 통해서 세상에 오실 한 몸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오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3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7절에서도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라고 하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흠과 티가 없는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지는 완전한 제물이 되실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속죄의 제사는 완전한 대제사장에 의해서, 그리고 완전한 제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제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실 때부터 이미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셨습니다. 이는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것이었고, 예수님의 수태를 알려주었던 천사의 소식에서도 나타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1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22~23).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영원한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바로 죄가 없이 깨끗한 육체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을 여인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가장 거룩한 제물, 가장 완벽한 제물, 가장 위대한 제물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새 언약을 성취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

 

 

본문 10절에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버지의 뜻에 대한 아들의 순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의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아낌없이 십자가의 제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완전한 제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속죄 제사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특징은 바로 순종(順從)”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계획이나, 로마 권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22:42).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은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철저하게 순종의 길을 가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그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의 입니다. 마리아라고 하는 한 여인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오신 바로 그 몸은 우리의 똑같은 신체와 인성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몸을 가지고 한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결국 본문에서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린 속죄의 제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속죄의 제사가 가져온 결과를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죽음은 분명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의미를 주는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우리는 이미 거룩함의 상태에 들어간 자일뿐만 아니라 완전한 거룩을 향해 가는 자들이라는 것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예수께서 흘리신 그 피의 공로하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기의 몸을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 모든 사실을 믿는 우리에게는 거룩함이라고 하는 결과가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속죄 제사는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희생 제사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속죄의 제물도 요구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그 속죄 사역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모든 죄로부터 해방됩니다. 그리고 거룩한 자가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영원한 기업을 얻을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를 믿는 그 믿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우리 안에 있음은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완전한 것입니다. 더 이상 거기에 무엇을 더할 필요가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하신 속죄의 제사는 이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또한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점검할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의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믿고 있는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이 이르렀고, 그 거룩함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믿고 있는가? 나는 지금 하나님과 교제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모든 성도는 이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오직 예수님만 붙들고 끝까지 달려가는 믿음의 용사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