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9.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89)
본문 : 막 16:9-11
제목 :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양용근 목사님의 순교사를 연구하면서 목사님의 생애도 살펴보았지만 순교의 길을 가시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그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많이 연구했습니다. 일본대 법대 졸업장 평양신학교 졸업장 목사라는 신분으로 조금만 타협하면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아내와 자녀들까지 힘든 삶을 살 것을 알면서도 다 포기하고 지키고자 했던 그 믿음을 평생 연구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믿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왜 이 믿음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실까? 개혁주의자들은 왜 오직 이 믿음에만 구원이 있다고 외쳤을까?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는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쉽고 중요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믿음에 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인간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수시로 많은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많은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오래된 약속을 기록한 구약성경과 새로운 약속을 기록한 신약성경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인간들이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주시고 그 길을 가는 사람에게 복을 내린다고 하셨지만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 약속을 못 믿고 다른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고 있는 이 고통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 모든 고통이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고 오히려 반대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역시 그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믿지도 못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늙고 병들어 죽는 허무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모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말씀은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실패한 인간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지키지 않아서 400여 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살다가 극적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오랜 세월을 애굽에서 종노릇 하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가나안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면 그들의 후손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좀 살기 어렵다고 그 약속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왔던 그들의 조상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종으로 살아야 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고 반항했던 인간의 역사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배반, 노아 시대의 모든 인간의 배반,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께 반항했던 인간의 이야기들을 기록하면서 왜 인간들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으셨고 늘 구원의 길을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잠시만 그 구원을 기억하고 돌아서면 또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타락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신명기를 통하여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조상들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고 계명들을 지키고 바르게 살라고 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에는 그들도 또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지 않고 타락의 길로 갈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불완전한 구원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모세오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모세오경에 기록된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계획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인간의 타락을 보면서 메시야를 통한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의 필요성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이나 성소나 제사 제도나 모든 절기가 다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처럼 왜 우리가 이렇게 죄의 종 사탄의 종으로 살면서 그로 인해 늙고 병들고 죽어가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구하러 오신 메시야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메시야를 통한 그 하나님의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구원을 위한 메시야로 세상에 오신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완전한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맨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그 사실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알렸는데도 그들이 그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본문 9절에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고 고난을 당하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는 대제사장의 뜰까지 따라왔지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와 그 일행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는 자들이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현장에까지 따라와서 예수님의 죽으시는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낼 때 그 무덤까지 따라와서 보았고 부활하시는 아침에 그 무덤에 달려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실 것을 백 프로 믿고 그 자리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충성심이 그 역사적인 부활의 현장에서 제일 처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를 제일 먼저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서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몰라본 잘못을 지적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재판한 빌라도와 자신을 찌른 병사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비록 겁이 나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먼저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시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막달라 마리아라는 한 여인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그냥 우연히 가까이 있던 사람이라서 그녀에게 먼저 보이셨을까요? 아니면 특별한 뜻이 있어서일까요?
예수님의 행적은 역사적인 기록이기는 하지만 후대의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도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처음 보이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인지 성경에 많은 기록이 없어서 잘모릅니다. 그 사람이 막달라라는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이고 일곱 귀신이 들려서 고통당하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쫓아내어 주셔서 자유인이 된 사람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그런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갈릴리 지방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섬겼으며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에서 부활의 현장까지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목민심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관리였던 정약용이라는 사람이 쓴 책입니다. 그가 관직을 지낼 때도 남달리 정직하게 백성들 편에 서서 바르게 일했습니다. 그런 그가 왕이 바뀌자 모함을 받아 변방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고통스럽게 사는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현장을 보고 그들을 돌보는 관리들이 어떤 자세로 일을 하여야 하는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을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며 예루살렘이 있는 유다 지방에서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을 만나지 않고 변방인 갈릴리 지방에서 고통당하는 죄인들과 함께하셨는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고통받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태어나서 살았던 막달라 지방은 유대인들이 천시하는 북쪽 갈릴리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막달라 지방은 경제적인 활동은 많았지만 그로 인해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특별히 이 여인은 일곱 귀신이 들렸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이 들어도 연약한 귀신이 아니라 아주 막강한 귀신에 들려서 귀신을 통해서 받을 수 있는 고통은 다 당했던 사람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은 다 귀신 들린 사람들입니다. 아주 약하게 귀신이 들어와서 귀신이 들렸는지 들리지 않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아주 강한 귀신에게 붙잡혀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죄악 된 도시에서 아주 강하고 흉악한 귀신이 들려서 고통당하던 여인이었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고통당하는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이 쫓겨가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귀신이 아닌 성령님께서 그녀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따르며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비교적 부족하고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부족하고 어려워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실 사람은 그런 어려운 삶을 살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그 어려움과 고통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 귀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슬퍼하고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본문 10절에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가서 이 소식을 알리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슬퍼하면서 울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슬퍼하면서 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며 복음의 시작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이 일을 알리고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리스도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복음 즉 우리 인간에게 가장 기쁨의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은 그동안 인간들이 스스로 얻기에 불가능했던 것을 가장 쉽게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똑바로 살거나 선을 행하거나 득도를 하는 그런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 복된 구원이 예수님을 통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일시적으로 구원받았다가 다시 빼앗기거나 구원받은 삶이라고 해도 다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그런 불완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에 그 구원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하심을 보았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부활과 영생의 복음은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죽으심만 생각하며 슬퍼하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정작 믿어야 할 부활과 영생의 복음을 그렇게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똑바로 살아보려고 애쓰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애씁니다.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바르게 살고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활과 영생일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오지는 않았는가 하는 걱정은 있습니다.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본문 11절에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의 무덤에 갔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여기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때는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몹시 놀라서 도망갔고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나서야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보았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역시나 그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날만한 그런 자리에 있는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소식을 전달할만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생각할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불신이 가득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못했는데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탄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시키기 위해서 사용한 무기가 불신이라는 무기입니다. 인간에게 와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좋은 약속들을 해주시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서 그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 관계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고 서로가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맹세를 하고 계약서를 써서 도장을 찍고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기만 하라는 말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믿으면 의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부활과 영생을 누리게 해주십니다. 믿기만 했는데 이런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의의 기준을 이 믿음에 두셨을까요? 믿음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따라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가지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사람만 이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오셔서 그 속에 역사하는 귀신을 쫓아내 주셔야만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내가 흉악한 죄인임을 깨달을 때 내가 연약한 사람임을 깨달을 때 믿음을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고 대부분의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해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는 죄악에 물든 도시에서 태어나서 흉악한 귀신이 들려서 고통당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섬기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도 부활의 목격도 믿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세상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더욱 심화된 불신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되냐고 비웃을 때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고 이런 불신의 세상에서 이렇게 믿기 어려운 복음을 믿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