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히브리서 8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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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
성도 여러분! 지금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살다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이 신앙을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위험을 안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믿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가?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들을 향해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설명했습니다. 그분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보다 위대하십니다. 그분은 천사보다 위대하십니다. 그분은 모세보다 위대하십니다. 그분은 구약에 등장하는 그 모든 대제사장보다 위대하십니다. 심지어 구약에서 가장 신비로운 대제사장으로 나타나는 멜기세덱보다 위대하십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비교될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만을 끝까지 믿고 붙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시는 그분의 사역에 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역을 나타나는 결정적인 표현으로 “중보자(仲保者;μεσίτης)”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두 단체 혹은 두 존재의 중간에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①당시의 사회에서 법정까지 가기 전에 중재하는 사람, ②분쟁 중에 있는 일을 관리하는 사람, ③법적으로 해결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증인을 가리킬 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이 단어를 가져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심으로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하게 하셨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 천상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3가지의 특별한 직분이 있습니다. 첫째는 선지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자기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세우신 직분입니다. 둘째는 왕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직분입니다. 셋째는 제사장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함으로 범한 죄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이 3대 직분 중에 가장 신비로운 직분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후에 저들에게 제사장 제도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제사장도 죄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조차도 자신의 죄를 위해 속죄제를 드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지상에서 섬기는 제사장과 비교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장직은 지상에서 사역하는 대제사장직과 비교할 때, 더 우월하고 위대한 모습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대제사장입니다.
본문 1절에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지극히 크신 이”는 하나님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인간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장엄하심을 부각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는 그 위엄하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9절에 보면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인 영광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즉 성육신 이전의 영광이 완전하게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지상에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는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입니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신분의 차이나 영광의 차이는 결코 비교하거나 가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는 소망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주께서 세우신 하늘 성소에서 사역하는 대제사장입니다.
본문 2절에 “지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아주 특별한 장막이 있습니다. 이는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 대로 세워진 장막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 장막을 성소, 성막, 회막 등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이 성소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하는 곳입니다. 이 제사를 통해서 자신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지상의 성소가 아닌 하늘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이 성소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소가 아닙니다. 사람에 세운 성막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낡아집니다.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 무너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성소는 영원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건재합니다.
따라서 지상에서 일시적인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보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성소에서 사역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이 더 우월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지상의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지성소에 영원히 들어가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은 영원한 사역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하늘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죄에 대해서 무능하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죄를 안고 성부 하나님 앞에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제사장 사역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천상 사역으로 인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의 성소에서 섬기시는 사역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Ⅱ.하늘 성소의 그림자인 지상 성소
본문 3~5절에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사도는 지상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 또한 지상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과 하늘 성소에서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나타나는 근본적인 차이점에 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설명의 주제는 「본체와 그림자」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즉 하늘 성소는 본체요,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를 보여주는 그림자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상 성소의 중심에 있는 대제사장의 가장 큰 사명은 “예물과 제사”였습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 아래에서 성막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한 신학자는 이 두 가지에 관해 설명하기를 “예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주를 다스리시며 피조물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은혜를 깨닫게 되었고, 제사를 통해서 죄의 파괴적인 본질과 대속의 필요성을 고백하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지상의 성소에서 섬기던 아론의 후손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예물과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그리고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과 장차 오실 메시야(구세주)를 향한 갈망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상의 대제사장은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예물과 제사를 드렸지만, 자신도 그 이스라엘 가운데 포함된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위한 예물과 제사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예물을 드리는 자가 아니라 예물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또한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이 자신의 죄를 위한 제사를 드리실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제물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염소의 피가 아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신의 피를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발적으로 자기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성부 하나님께 드리신 것입니다.
결국 하늘 성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대제사장의 사역은 완전한 본체입니다. 그리고 지상 성소에서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사역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늘 성소에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단번에 드려지는 제사였지만, 영원한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지상 성소에서 아론의 후손 대제사장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속죄 제사는 반복해서 드려야만 했고, 그 효력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지상의 성소는 하늘 성소의 모형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5장 8~9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세운 성막의 설계도의 출처는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광야에 세워진 성막은 하늘 성소의 실체를 모사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장막(σκηνή)”이라고 하는 단어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습니다(요1:14). 또한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위에 영원한 장막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습니다(계7:15). 그렇다면 하늘 성소의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모세에 의해서 세워진 장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광야에 세워진 성막과 그 안에 있는 기구들, 그리고 성막 안에서 행해진 모든 일은 결국 하늘의 성소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성막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요, 성막 안에서 행해진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지상의 성소(성전)는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 그림자에 집착했습니다. 저들은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고도 완전한 속죄 제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의 것이 아닌 저 하늘의 것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땅의 것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땅의 것은 하늘의 것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완전하고 영원한 하늘의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하늘 성소의 본체가 되시며, 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결코 우리 믿음의 시선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Ⅲ.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본문 6절에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의 궁극으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더 아름다운 직분”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여기의 “아름답다(διάφορος)”라는 표현은 ‘뛰어나다, 탁월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더 뛰어나고, 더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저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탁월하고, 저들의 제사장직을 능가하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언약(διαθήκη)”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옛 언약은 모세를 중보자로 세우셨고, 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사실 옛 언약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계명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칠수록 자신이 죄인이요, 그 죄의 결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더욱 강하게 느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 안에서는 죄와 그 결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는 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옛 언약의 중보자였던 모세는 모든 인간이 죄 아래에 있음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그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요14:6).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도 옛 언약 있는 존재입니다. 아직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그 모든 죄로부터, 그리고 그 죄의 결과로부터 자유를 누리가 됩니다.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늘 성소인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자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위해 완전한 제물이 되셨고,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모든 성도는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고,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