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7.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90)
본문 : 막 16:12-13
제목 : 제자들도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믿음에 관한 말씀을 자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위대한 믿음이고 이 믿음을 진실하게 고백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바른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이 바른 믿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연히 그 믿음을 바른 믿음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바른 믿음이 아닌 다양한 것들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대표적인 종교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교입니다. 유교는 섬기는 신이 있거나 그 신을 믿거나 하는 종교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사는 삶의 방법을 배워서 인간답게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대할 때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원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면 어떻게 사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에도 공자의 가르침을 기록한 논어 못지않게 많은 삶의 원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나 꼭 해야 할 일들이 기록되어 있고 더 차원 높은 삶의 원리들이 기록되어 있어서 성경 말씀대로만 살아도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은 그런 도덕적인 삶의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리 배우고 노력해도 그렇게 살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도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이어서 이렇게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인생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그 소중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오랫동안 성경을 배운 사람이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들은 제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왜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삶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에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 후에”라는 말은 바로 앞에 있는 일이 있은 후에라는 뜻입니다. 바로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가 슬퍼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이 목격한 바를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그 제자 중 두 사람이 거기를 떠나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간단하게 그 사실만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는 좀 더 자세하게 이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글로바’라고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곳은 ‘엠마오’라는 마을이었다고 했습니다.
글로바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엠마오가 어디인지 잘 모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고 이제 다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참으로 엄청난 일을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사렛이라는 아주 촌 동네에서 태어난 예수라는 젊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보통 사람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잔칫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일로 시작해서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불치병 환자들을 고쳐주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 위로 걸어가시기도 하고 말씀으로 거친 풍랑도 잔잔하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가끔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이런저런 가르침도 주셨는데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도 했고 오랫동안 성경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약속하신 그 메시야라고도 했습니다.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벌 떼처럼 그분을 따라다녔습니다. 야 이제 됐다. 우리도 이제 로마 학정에서 해방될 것이고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정말로 인간답게 사는 행복한 삶이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고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로마군에게 넘겨져서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실망감이 얼마나 컷을까요? 그 엄청난 희망이 절망이 되었고 그 예수님이 죽고 말았으니 이제는 더 기대할 것도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에 모든 것을 이미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나라를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오셨으며 그것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했으면서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심이 없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영생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 함께 계시면서 병들면 고쳐주시고 먹을 것 없으면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시고 그들을 괴롭히는 로마를 멸하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워주실 것을 기대하며 따랐습니다. 부활이나 영생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고 지금 눈앞의 행복만 바라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에는 관심도 없고 특별한 의미도 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해도 믿으려 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따르던 것도 다 포기하고 다시 시골로 돌아가서 옛날처럼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들이 바라던 바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도 부활이라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살펴볼 만도 한데 다 포기하고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저런 핑계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믿음과 그 결과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착하게 살려고 교회 왔는데 교회에는 나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뭔가 기도하면 일도 잘 풀리고 잘 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교회 안 다닐 때보다 일이 잘 안 됩니다. 부자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교회에 바치기만 해서 더 가난해집니다. 별로 재미있는 일도 없고 세상에 재미난 일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목적하는 바와 같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떠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하는데 그 믿음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영생 복락을 믿어야 하는데 그것을 믿지 않고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혹시 세상에서 똑바로 살고 보람되고 행복하게 살려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혹시 세상에서 좀 더 잘 살고 부자로 살고 싶어서 교회에 다니십니까? 의지할 것 없는 외로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려고 교회에 다니십니까?
다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믿어서 그렇게 뜻을 이룬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보너스이고 부스러기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에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포기하고 시골로 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들이 잘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옛날의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하고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알아보지 못하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부활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서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도중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를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19-2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을 해 넘겨주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하시는 일을 보면 능력이 있는 선지자셨고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의 학정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고 바랬는데 그만 십자가에 형벌을 받아서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포기하고 이렇게 다시 고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 24:25)라고 책망하시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고 그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영광중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의 핵심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것인데 선지자의 예언도 예수님의 말씀도 부활을 목격한 목격자의 말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도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식사할 때에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에 유월절 음식을 먹으면서 제정하신 성찬식이 생각났을 것이고 예수님의 몸과 피의 의미가 무엇인 줄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거기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발견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이 구약이나 신약이 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성경 읽기나 공부는 의미가 없습니다.
공자의 논어 이야기 하나만 더하겠습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것을 배우고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는 하나를 가르치면 그 하나도 잘 모르고 절반 정도만 알아듣는 사람도 있고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일을 가르치면 그것을 통해서 먼 미래의 일까지 알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구약을 배우고 익혀서 신약의 새로운 것을 알고 미래의 영원한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읽으면 아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하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끝납니다. 조금 나은 사람은 그런 역사를 보면서 악한 일은 되풀이 하지 않고 좋은 것은 본받아서 살아야 한다고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의 역사들을 통해서 더 깊은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고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영원한 미래의 생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을 제일 잘 깨달은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원래 율법 학자로 구약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구약성경의 참뜻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에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거기에 아직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 알리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 그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서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진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이미 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했고 자신들도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면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거나 믿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역시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인생도 모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하나님도 알고 성경도 알고 특별히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셔서 부활도 알고 영생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은 성경의 핵심이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었음에도 믿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가장 많이 쌓여 있는 것은 불신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속고 속이면서 사는 것이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속고 장사꾼에게 사기꾼에게 심지어 친한 사람에게까지 속고 속이면서 사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미가야 선지자 시대 때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부패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은 뒤에야 재판을 하고 제사장들은 삯을 받아야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은 후에 예언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는 해로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쉬운성경 미 3:1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런 모습이니 무엇을 믿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더 바르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일부 타락한 지도자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는 종교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아무리 좋은 것을 알려 주어도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교와는 달리 새로 시작된 기독교의 초대 교회는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상규 교수님의 최근 저서 “초기 그리스도인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책에 교회는 철저하게 부를 축적하려고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나누기를 애썼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고 했습니다.
사치나 오락을 즐기지 않고 검소하게 살면서 그들이 가진 것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면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신뢰할 수 있었고 그들이 전하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고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을 전하는 우리도 믿을 수 있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중요한 것인데 제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역시 믿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신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은 예수님의 부활처럼 완전한 몸으로 부활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의 핵심이 그것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부활을 믿는 이 믿음만은 꼭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