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15.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88)
본문 : 막 16:1-8
제목 :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돼지 열두 마리가 소풍을 하러 갔습니다. 마을을 지나가는데 어디서 본듯한 것이 거꾸로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자기들의 뒷다리를 잘라서 걸어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돼지가 그동안 인간들이 자기에게 잘해준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왜 자기들을 잘 모셔놓고 때만 되면 먹을 것을 주고 똥도 싸면 치워주고 더러우면 씻어주고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잘 먹여서 살을 찌운 다음 죽여서 잘라서 이렇게 정육점에 걸어놓고 팔아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 그 돼지는 먹을 것을 주어도 잘 안 먹습니다. 겨우 목숨만 유지할 정도만 먹고 살찌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살이 찌면 팔려가서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와서 왜 맛있는 것을 주는데도 안 먹느냐고 하면서 막대기로 때립니다. 동료 돼지들도 비웃습니다. 그냥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살면 될 것인데 바보처럼 군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도 돼지는 좀 더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청년 때 교회의 청년회 회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무슨 뜻으로 이 이야기를 썼는지 기억이 없지만, 이 돼지 이야기는 평생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사는 삶에도 적용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참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줍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주면서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사탄의 세력이 악의 세력이 주관하는 세상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왜 우리를 이렇게 행복하게 살게 해줄까요?
우리가 죽어가는지를 잊게 하고 죽고 난 후에 영원한 멸망으로 지옥으로 빠지게 하는 것을 모르고 살게 해서 그들이 가는 그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서 왜 그렇게 사느냐고 비웃습니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적당히 죄도 지으면서 즐기며 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감추고 있는 그 최악의 상황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멸망의 길로 가지 않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신앙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기쁨의 좋은 소식인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전하는 이 복음이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하고 귀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핵심의 진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보의 홍수 시대로 엄청난 소식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우리를 속여서 자기들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거짓 정보들입니다. 그 정보들 속에는 보이스 피싱 같은 위험한 것도 있습니다.
요즘 유튜브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유튜브의 정보들은 대부분 개인의 주장이고 상업성이나 속이고 유혹하는 정보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보니까 사고가 편협될 수 있는 위험한 것이라고 합니다.
장사꾼들은 속여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본업이고 정치가나 예술가나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라고 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를 이용할 따름이지 진정으로 우리의 행복을 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고 하면서도 진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상한 세상 행복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잘못된 길로 가게 하고 이단 교주나 잘못된 지도자들처럼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위해서 서론을 길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헛된 소식들 심지어 교회 안에 복음으로 위장한 이상한 축복들에 넘어가지 말고 이 참된 복음의 진리를 가슴에 되새기며 따르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기 힘든 부활의 신앙
본문 1~3절 말씀에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왔습니다. 그녀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무덤까지 달려오긴 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는 눈치는 조금도 볼 수 없습니다.
그녀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온 것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오면서 걱정하는 것은 예수님의 무덤에 들어가서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커다란 돌 문을 누가 옮겨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죽으실 것과 살아나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으면서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믿지도 못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또 함께한 여인들은 평소에 예수님을 매우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도 늘 잘 경청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한 믿음이 좋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고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 불가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까지도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도 믿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이 부활의 신앙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지금 사는 이 세상의 일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해야 하고 지금 필요한 것이 채워져야 하기 때문에 먼 미래의 일이나 특별히 죽음 이후의 일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 세상의 일은 눈에 보이는 일이지만 죽음 이후의 부활은 눈에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믿기를 주저합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은 간간이 눈에 보입니다. 교회에 헌신하고 충성한 사람이 잘 되는 일도 눈에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의 일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고 구경해본 일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은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만약에 이 부활이 없다면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성도들은 고생만 하고 얻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과 영생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 다니게 했는데 부활의 신앙이 믿기 어려운 것이라고 외면한다면 참 불쌍한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 부활의 증거들
본문 4~6절에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무덤을 찾아갔는데 염려했던 무덤 앞의 커다란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덤에 들어갔는데 예수님의 시신은 없고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말하기를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복음서에는 다 이 예수님의 부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각각 강조하는 점이나 보는 각도가 달라서인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합해서 보면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청년을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흰 천사”라고 했고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조금씩 그 표현은 다르지만 무덤에 나타난 사람은 사람의 모양은 가졌지만 사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찬란한 광채가 나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로 보이는 사람이 하는 말은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막)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라고 했습니다.
무덤에 달려온 여인들에게 강조하는 말씀은 예수님이 살아나셨고 그래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거를 찾을 때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그 시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과 또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셨고 그들이 보는 가운데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으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도 부활할 수 있다는 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며 다녔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오고 비참한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굽히지 않고 온 세상에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전쟁은 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믿고 그 믿음을 가진 자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고 주장합니다. 비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부활이니 영생이니 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유명한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은 “만약에 내가 기독교의 적이었다면 나는 부활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만 거짓으로 밝혀버리면 기독교는 끝장나고 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부터 이 부활이 거짓이라고 우기는 세력들이 등장합니다. 당시의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이 예수님의 부활한 사실을 보고하자 유대교 지도자들이 병사들에게 돈을 주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가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거짓말한 것이라고 퍼트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는 사람마다 붙잡아서 부활이 거짓이라고 증언하게 하고 그것도 안 되면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차고도 넘치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 부활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이 그 부활의 증거입니다.
빈 무덤에서 천사의 증언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의 설교와 순교적인 삶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부활의 증인입니다.
사탄의 세력은 이 부활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으로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고 부활이라는 이 엄청난 자리에 서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심지어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교회에까지 침투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엉뚱한 것을 가르쳐서 딴 길로 가게 합니다.
교회가 고리타분하게 부활이니 영생이니 이런 것을 가르치니까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하고 이 세상의 축복이나 이 세상에서의 삶의 원리를 중점으로 가르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마치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운동본부 바르게 살기 운동본부처럼 변질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할 부활이나 영생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외면하고 사람들은 교회를 떠납니다.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수많은 증거들이 확실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이 부활을 믿는 믿음에 바로 서시기 바랍니다.
부활은 우리가 믿는 신앙의 핵심
본문 7절~8절에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고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씀한 천사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그러고 있지 말고 얼른 가서 제자들과 특별히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셨으니까 거기서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리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14장 말씀을 배울 때 살펴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드시면서 성찬 예식을 제정하셨고 그때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 14:28)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상기시켜주시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얼른 갈릴리로 가라고 재촉했지만 그때까지도 여인들은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다고 하신 말씀을 믿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렇게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다고 약속한 그 시각에 무덤 앞에 모여서 현수막이라도 써서 내걸고 부활 축하 대회라도 열 준비를 해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부활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고 믿음의 핵심이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나타날 너무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 강해 설교를 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성경 구절만 소개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부활 신앙은 구원의 조건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부활 신앙은 의의 조건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부활 신앙은 우리의 부활에 보증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20~21)
부활 신앙은 우리의 새 생활에 근거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핵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이며 그 부활을 믿는 자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부활을 믿는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신앙의 최고로 우리 삶의 최고로 여기며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고 무덤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부활은 믿기 어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일이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이고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부활을 믿는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끝까지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