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 MAKER

 

 

출애굽기 1413~21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성도 여러분!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도 있습니다. 앞뒤가 꽉 막혀 있어서 빠져나갈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 위기의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가만히 앉아서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을 만나보셨습니까? 만약 그러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상황을 만나면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을 탓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면서 자포자기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존재입니까? 430년 전,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0세 이상의 남자만 60만 명을 넘는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분은 애굽에서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님이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 드디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셔서 홍해 앞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낸 일을 후회하면서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바로는 선발된 병거 600대와 애굽의 병거를 동원해서 직접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앞에는 홍해라고 하는 바다가 있습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가면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뒤로 돌이키면 바로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다시금 잡혀서 애굽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출애굽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일을 하기 시작하십니다. 본문 15~16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순종했을 때, 홍해가 갈라지고 바다 가운데로 길이 생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난관들이 우리 앞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주저앉아서 울고만 있을 것입니까? 아니면 상황을 탓하면서 불평과 원망만 늘어놓을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구원하신 자기 백성인 우리를 위해서 어떠한 일까지도 하시는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바다 가운데 길까지라도 만들어 주십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하십니다. 오직 그 하나님만을 따르게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WAY MAKER(길을 만드는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은 바다요, 뒤는 애굽의 군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애굽의 군대와 싸울 수도 없습니다. 결국 저들은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11~12절에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이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굽에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그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침이 이와 같은 것 아닙니까? 애굽에서 노예로 살지라도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의 노예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할 바에야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준비된 역사를 전달합니다. 본문 13~14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애굽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손대지 못하게 막으십니다. 본문 19~20절에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그 기세등등하게 이스라엘을 뒤쫓던 애굽의 군대가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하나님에 의해서 제지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저 애굽의 세상을 어두움으로 덮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은 빛으로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들자,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홍해 가운데서 마른 땅이 드러나고 길이 생긴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다 가운데에 길을 만드셨습니다. 바닷물이 갈라지도 그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의 길이 생겼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일을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피조물을 당신의 마음대로 운행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가 상상하는, 아니 그 이상의 일이라 할지라도 능히 이루시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바다 가운데라 할지라도 길을 만드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저 애굽과 바로에게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홍해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뒤쫓는 바로의 군대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죄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기 백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바라보시고, 나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빛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내디딘다면, 우리는 어둠의 길을 걷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앞길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밝히 빛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요한복음 812절에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앞에 바다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볼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바다 가운데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바다를 갈라서 우리가 걸어갈 길을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설령 그 바다가 갈라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우리로 하여금 그 바다 위를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14:29).

 

바다 가운데 길을 만드시는 능력의 하나님, 그 길을 걸어가도록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바로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길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셔야만 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하필 그렇게 행하셨을까? 우리의 생각에는 다른 길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길로 인도하시면 더 쉽게 자기 백성을 인도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 광야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을까요? 성경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음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317절에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하나님이 궁극적인 의도는 따로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4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충분히 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일들은 애굽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애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애굽의 백성들이나 공통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분은 애굽의 우상들과는 전혀 다른 분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철저히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분은 전능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분은 온 천지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분은 인간의 생명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일도 주권을 따라 행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제 본문의 사건도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홍해로 인도하시고, 애굽의 군대를 여기에 이르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대적 애굽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 구원은 필연적으로 대적을 향한 심판을 동원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자기 백성의 최종 구원이 완성되는 사건에서도, 하나님의 대적자인 사탄과 그를 따르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에 던져지고 있습니다(20:7~15).

 

본문 13절을 다시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도 당신이 행하시는 역사의 목적이 구원(יְשׁוּעָה)”에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 구원 역사에 그 백성들이 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 역사는 오직 하나님 자신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그 역사의 결과를 믿음으로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오직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해서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길을 만드는데 있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양쪽으로 바닷물이 벽을 이루고 있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물은 하나님께서 이미 가두어놓으셨기에 하나님의 백성을 넘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전진하면 반드시 바다 건너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애굽의 군대는 결코 걸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뒤를 따라 바다 가운데 난 길로 들어선 애굽의 군대를 바다에 수장(水葬)시키셨습니다. 분명 같은 바다요, 같은 길이요, 같은 물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길이 되었고, 애굽의 군대에게는 심판의 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행하시는 역사는 우리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아무리 바다 가운데 길이 났다고 할지라도 그 길을 걷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누가 뭐라 해도 그 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만드신 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길이 이해가 됩니까? 하지만 그 일은 분명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그것도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일을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귀한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을 우리는 믿고, 고백하고, 살아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성도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비록 눈앞에 홍해와 같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애굽의 군대와 같은 대적들이 우리를 뒤쫓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위해서 길을 만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길을 걷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비록 그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 길이 하나님이 만드신 길임을 믿고 걸어가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그 길을 가고 계심을 믿고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와 함께 걸으실 것입니다.

 

 

원하기를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올해를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그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믿음을 열매로 맺어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길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올 한 해의 길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