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말라기 38~12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우리가 달란트 비유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거기에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는 칭찬을 들은 종이 등장하는가 하면(25:21, 23),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는 책망을 들은 종이 등장합니다(25:26).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칭찬과 책망을 가르는 기준을 종들이 얼마나 충성했는가 하는 사실에 집중합니다. 물론 이러한 시선과 기준이 잘못된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에 등장하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자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장차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에서 또 다른 기준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즉 이 종들이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에 대해서 충성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 반대로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에 대해서 불충하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손에 들려 있는 그 달란트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였는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맡은 달란트로 충성했던 종들은 그 달란트가 자신의 것이 아닌 주인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주인의 기쁨을 위해서, 주인이 원하시는 목적을 위해서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달란트로 불충한 종은 자신이 그 달란트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인의 뜻이나 주인의 기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것입니다.

 

 

이 종들에게 내려진 보상은 극명하게 갈라졌습니다. 충성한 종들은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었고,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상급을 받았습니다(25:21, 23). 하지만 불충한 종은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라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의 시간적 배경은 주전 약 430년 경입니다. 이때는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3차에 걸쳐 귀환했습니다. 우여곡절 속에서 성전도 재건했습니다. 이방인들의 끊임없는 방해를 받아 가면서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이제는 과거 멸망한 나라의 모습을 벗어나 나름대로 나라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비록 주변 나라들의 견제를 받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의 경제와 사회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들이 소망하는 메시아 왕국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메시아 왕국에 대한 소망이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세속적인 쾌락과 안일을 얻기 위해서 분주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부터 시작된 영적 타락은 일반 백성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당시의 사회에서는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버린 총체적 난국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말라기(מַלאָכִי;나의 사자(使者), My Messenger)”라고 하는 선지자가 등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말라기는 당시 사회의 불신앙과 부정부패를 지적하면서, 반드시 도래하게 되는 메시아의 시대를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라기 선지자가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종교적인 죄악 가운데 한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서도 무감각합니다.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십일조와 봉헌물을 가지고 저들의 죄악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자부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없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마땅히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주장하는 인생

 

 

본문 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들의 그러한 감정은 무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흐려졌고, 자신들의 현실만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결과 저들이 신앙은 자꾸만 엉뚱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들의 모습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악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죄악된 모습 가운데서 하나를 지적하면서 저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십일조와 헌물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죄악을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토록 강경한 표현으로 이스라엘을 책망하셨을까요?

 

 

시편 5012절에서 하나님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온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자신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모든 만물에 대해서 주인의 권리, 즉 주권(主權)을 행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대상29:16).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만물을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창세기 128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복하고 다스리고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그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일시적으로 맡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용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하는 자일 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만물을 우리 사람들이 자신의 육신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사람이 수고하여 얻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여호와의 소유, 여호와의 성물(聖物)”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27:30). 이는 마땅히 여호와의 것으로 구별해야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일조의 개념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의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만약 이를 부정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인본주의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불신앙의 행위가 가져온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저들은 열심히 일을 했지만, 저들의 삶은 더 피폐해져만 갔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9절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하나는 도둑질(קָבַע)”입니다. 이는 단순히 남의 것을 몰래 훔치는 것이 아니라, 강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나의 것을 강탈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원문의 의미를 따른다면 곧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것을 단순히 훔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강탈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강탈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저들은 저주를 받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 저주를 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저주를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저주를 받은 저들의 상황은 11~12절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 수확을 하기도 전에 병충해로 인해 떨어지거나, 저들의 곡식이 제대로 익지 않고 기한 전에 떨어짐으로 인해 수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강탈한 이스라엘, 결국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저주의 상황에 놓임으로 인해 마땅히 누릴 기본적인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 놓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없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맡기시고, 사용하라고 하신 것 가운데서 마땅히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심지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땅히 구별하고 드릴 것까지 아까워합니까? 이는 너무 이기적인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고백하며, 성령을 우리의 보혜사로 고백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행동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본문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강한 소망을 제시하시면서 명령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을 때, 저들이 받아 누리게 될 복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이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을 시험(בָּחַן)”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의 시험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즉 하나님을 “test해 보라라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test할 수 있는 존재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가 어떻게 창조주를 test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test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는 test가 아니라 확인해 보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에 합당한 보응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고백하며, 구별하고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대해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를 실행함으로 하나님의 복이 어떻게 임하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마땅히 구별하고 드리는 자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의 하늘의 문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농경사회에서 비는 절대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비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 가나안 땅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내리는 비는 농사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문이 닫힌다는 것을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말라기의 이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가 오지 않는 오랜 가뭄으로 인해 농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는 저들의 삶에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저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주신다는 것은 단지 저들에게 비를 내리신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저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폭우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저들에게 주실 수 있는 복으로 채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저들이 받게 되는 복의 구체적인 모습은 이러한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메뚜기는 당시에는 가장 두려운 위협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성경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이 메뚜기 떼는 오늘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10:5). 이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 들의 나무나 채소의 푸른 것은 씨가 말라버릴 정도로 초토화됩니다. 그래서 이 메뚜기 떼의 등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10:4f, 1: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다면 이를 막아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메뚜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사를 방해하는 해충들을 포함한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까지도 주장하심으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농사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해충의 피해가 없을지라도, 그 열매가 충분히 익지 않고 기한 전에 떨어진다면 농부의 수고를 헛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까지도 막아주겠다고 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특히 기한 전에 떨어진다(שָׁכֹל)”라는 어원상 어미의 태중에 있는 아기가 유산되거나 낙태되는 것을 가리킵니다(31:38). 그런데 하나님은 본문에서 לֹא()”라는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이를 통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이스라엘에게는 이러한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나타내는 의미는 단지 농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스라엘의 가정에 하나님은 모든 삶의 영역에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본문 12절에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스라엘에 대한 세상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백성은 그들이 그 복을 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분명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일지라도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저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부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보통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가 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결과일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라고 권면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마땅히 그분의 것을 그분께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 자신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본문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אָמַר יְהוָה צְבָאֹות)”라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증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입니다. 마치 문서의 맨 마지막에 작성자가 직접 서명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 표현을 통해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이스라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실 것을 보증하십니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을 보증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보증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생각이나 시대의 사상에 따라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약속을 보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인 것입니다.

 

 

 

 

원하기를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고 드림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를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