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들의 믿음

 

 

 

히브리서 1120~22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시간에 13절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지만, 그 약속을 멀리 보고 환영했고, 그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람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저 아브라함이 가졌던 그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은 3명의 족장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3명의 족장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성취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약속을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 그 약속을 근거로 해서 후손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는 저 족장들이 후손을 축복한 일이 믿음으로(πίστει)” 행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 세 절의 말씀은 모두가 믿음으로(πίστει)”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저 족장들의 믿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 족장들의 축복은 단순히 후손들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의 축복은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그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 족장들의 후손은 그들의 조상이 축복한 그 결과를 누리는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저 족장들의 믿음을 보려고 합니다. 저들이 자신의 믿음을 어떤 모습으로 고백했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오늘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고백할 것인지를 찾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족장들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이삭의 믿음

 

본문 20절에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먼저 이삭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본문은 창세기 2727~40절에 나오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삭은 그의 쌍둥이 아들인 야곱과 에서에게 미래의 일에 대해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두 아들을 축복하는 과정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자 이삭이 그 아들들에게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삭이 그의 맏아들 에서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자신이 죽기 전에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안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야곱을 위장시키고, 이삭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야곱의 손에 들려서 이삭에게로 들여보냈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이삭은 목소리는 야곱의 음성처럼 들었지만, 손으로 야곱을 만져보고 그가 야곱인지 에서인지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했던 내용을 야곱에게 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 축복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창세기 2727~29절에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이 축복은 사실 장자에게 하는 축복입니다. 하지만 눈이 어두워진 이삭은 둘째 아들인 야곱에서 장자의 축복했던 것입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친 후에 첫째 아들 에서가 돌아와서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이미 에서에게 할 축복을 야곱에게 다 했기 때문에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 것이기에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에서의 몸부림을 거절하지 못한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했습니다, 창세기 2739~40절에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에서에게 한 축복은 엄밀하게 말하면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는 저주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것이 에서가 살아가야 할 인생의 모습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삭의 이러한 축복의 행위가 믿음으로(πίστει)”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삭의 모습이 정상적이지는 않습니다. 그가 아들을 축복한 것이 잘못되었다면 이를 바꾸거나 취소하려고 하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야곱을 불러다가 책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삭은 이러한 행동을 하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면서 다시금 야곱을 축복하고 있습니다(28:3~4).

 

왜 그랬을까요? 이는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523절에서 하나님은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했는데, 그 둘이 복중에서 싸웠습니다. 이에 이삭이 하나님 앞에 이 두 아이에 대해서 물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대답이었습니다. 이는 분명 야곱이 에서보다 앞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아닌 에서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기 12~3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이 말씀을 잊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에서를 야곱보다 앞세우고 그에게 축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리브가와 야곱에게 속아서 에서가 아닌 야곱을 축복한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이삭은 자신의 실수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수단이 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이삭의 믿음은 모든 역사의 주인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하나님은 인간의 계획을 무력화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성취되도록 하십니다. 잠언 16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했고, 잠언 19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계획이나 우리가 소망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야곱의 믿음

 

본문 21절에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창세기 4812~16절에 기록된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 야곱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한 지 17년이 지났고, 그의 나이가 147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생애가 끝날에 이르렀음을 의식한 야곱이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불러 그들에게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장면에는 이상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시 히브리 사람들이 두 사람을 동시에 축복할 때, 최고의 축복을 받을 자에게 오른손을 얹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 관례에 따라 맏아들 므낫세를 자기의 왼손으로 붙잡고 야곱의 오른손을 향하게 했고,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자기의 오른손으로 붙잡아 야곱의 왼손을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 둘을 축복할 때, 이러한 관례를 무시하고 손을 바꾸어 얹었습니다. 즉 자신의 오른손을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첫째 아들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에게 손이 바뀌었음을 지적하면서 손을 바꿀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라고 말하면서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우며 축복했습니다(48:19).

 

이러한 야곱의 축복은 에브라임을 실질적인 장자로 세웠음을 의미합니다. 과거 그의 아버지인 이삭은 눈이 어두워졌고, 리브가와 야곱에게 속아 야곱을 장자로 축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야곱도 나이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서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지금 자기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즉 누가 에브라임인지, 누가 므낫세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례를 따른다면 손을 어떻게 얹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손을 엇바꾸어서 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이러한 축복의 행위가 바로 믿음으로(πίστει)” 말미암아 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바꾸어서 축복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그것이 관례에 어긋난 것인 줄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충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후에 그 지팡이를 의지하고 여호와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야곱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실 야곱은 족장이라고 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권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내세울 것이 못 됩니다, 따라서 야곱의 이 행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성취되기를 소원하는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내 생각대로 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꾸만 이러한 상황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의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218~19절에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불합리한 것 같아도, 우리는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하는 삶이 바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요셉의 믿음

 

본문 22절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창세기 5024~25절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가 110세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죽을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때 요셉이 그의 형제들과 후손들에게 미래에 있을 일을 예언하면서 축복했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셉은 그 시기가 언제일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내용을 요셉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에 신실하셔서 반드시 성취하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실 요셉의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살기를 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땅에서 그의 후손들이 번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도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아무리 이 애굽 땅이 좋아도, 이곳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아닙니다. 비록 물이 없고 척박할지라도 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후손은 반드시 그 땅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 땅을 차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비록 애굽의 총리로서 모든 권세와 영화를 누린 요셉이지만, 그리고 그 후손들이 그 권세와 영화를 영원히 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약속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장차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위대한 역사, 곧 출애굽을 유언으로 남기며 축복했던 것입니다.

 

또한 요셉은 출애굽을 할 때,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가서 자신의 뼈를 가나안 땅에 묻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는 단지 가나안 땅에 대한 향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에서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그 출애굽의 역사에 동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그 역사에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유골이라도 그 역사에 동참하고자 소망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셉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현실은 그에게 좋은 것을 보장해 주었지만, 요셉은 그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선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이 땅의 것보다 저 하늘의 것을 소망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약속, 저 영원한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게 합니다. 아무리 이 땅의 것이 우리를 유혹해도, 우리의 눈은 오직 저 하늘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저 하늘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땅의 것에 미련을 갖지 않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본문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또 하나는 우리는 우리의 후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축복은 단지 우리의 후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내 후손에게 잘 전수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내 후손들에게도 잘 전수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자손들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 족장들은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가진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믿음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비록 저들이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들을 붙드시고 저들에게 주신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족장들은 그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자손들에게 축복함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저들의 믿음을 역사에 성취하심으로 저들의 믿음이 옳은 것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나의 믿음을 굳게 지키고, 그 믿음을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전수함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주인공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