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대제사장의 한계

 

 

히브리서 51~4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에서 우리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했고, 앞으로 존재할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예수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예수보다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보다는 세상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세상에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죄악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얻을 것은 사망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만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사도는 본격적으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증명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레위 자손의 제사장들보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들보다, 나아가 저들이 성전에서 감당했던 희생 제사의 사역보다 훨씬 더 위대하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의 위대하심을 증언하기 전에 먼저 비교되는 인간 대제사장의 한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 대제사장도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감당하는 사역이 위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인간 대제사장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 대제사장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람 가운데서 선택된 대제사장입니다.

 

본문 1절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대제사장의 조건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첫 번째 조건은 본질적으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대제사장은 사람의 모든 형편을 알고 있어야 하고 이해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한결같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제사장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했고, 일반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들을 다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의 형편을 하나님 앞에 아뢸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도 겪은 일이었기에 자세하게, 분명하게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두 번째 조건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택한 자(λαμβανόμενος)”는 본래 선택되는 자, 뽑히는 자라는 수동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 사용된 수동태는 신적 수동태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서 대제사장을 선택하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본문 4절에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하지만 이 직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임의로 취하고 누릴 수 있는 자리도 아닙니다. 이 대제사장의 직분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을 받고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만이 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최초의 대제사장 아론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소명과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는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고라의 일당이 아론과 모세를 향하여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라고 대항했습니다(16:3). 그 때 하나님은 오직 아론만이 존귀한 직분으로 부르셨음을 징표로 나타내셨는데, 그것은 바로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게 하신 것입니다(17:1~10).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그 존귀한 대제사장의 직분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과 맡기심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이처럼 대제사장은 하나님이 선택하십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감당하는 직책인 제사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선택하신 레위 자손만이 가능합니다. 그 가운데 대제사장은 오직 아론의 자손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영원한 규례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 자손이, 특히 아론의 자손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대제사장이 사람이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완전한 사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표하는 자로서 우리의 입장을 철저히 이해하셨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완전한 사람으로 사람을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모든 고뇌와 절망, 아픔을 다 겪어보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또한 대제사장직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직분이라는 것은 장차 완전한 실체로 오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선택과 보내심을 받은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8:42, cf.11:42;17:18,25;20:21).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요일2:2).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삶을 사셨고, 그 직분을 완전하게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이는 친히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당신이 이미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잘 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모든 일에 대해서 가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자꾸만 과거로, 세상으로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돌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사람을 위한 일을 하는 대제사장입니다.

 

본문 1절에 계속해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속한 일을, 사람을 위해서 하는 자입니다.

 

사실 우리 성경에서 번역하지 않은 한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임명되다(καθίσταται)”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도 신적 수동태로 하나님에 의해서 임명되고, 그 책임이 주어졌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문을 원문에 따라 정확하게 번역하면 하나님께 속한 일들에 사람을 위하여 임명되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대제사장은 사람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 또는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임명된 사람입니다.

 

결국 대제사장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대제사장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일의 근본에는 사람의 죄를 속(;용서)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람에게 속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으로부터 그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일을 일반 사람이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임명을 받은 대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대제사장은 예물과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리도록 임명된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예물(δρον)”이나 속죄하는 제사(θυσίας πρ μαρτιν)”는 모두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는 오직 제사장에게만 부여된 직무였습니다. 아론과 그의 후손인 대제사장은 짐승이나 밭의 소산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은 다양한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에 제사장이 대신하여 제사를 드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구약의 대제사장은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일하는 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백성일지라도 저들이 죄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의식하든지 못하든지를 막론하고 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저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제사장은 그 백성의 죄를 옮기고 제물을 죽여 그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죄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손에 들려 있는 피를 보시고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공의가 짐승의 죽음으로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러한 제사와 제물이 소용없는 자들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의 제사,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자신이 제물이 되셨습니다. 무죄한 예수님의 피가 이 땅의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죄로 인한 저주도 없습니다. 죄에 대한 형벌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생명과 구원만이 충만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요,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를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비록 지금 예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나의 삶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 예수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 예수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가림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이루어집니다. 내 몸에 예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복음의 삶을 살아냄으로 이루어집니다.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그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품어야 합니다. 그가 무식해서 빨리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품어야 합니다. 같은 말로 반복해서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화를 내지 않고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사장에게 요구되는 인격적인 자질이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자신이 지닌 영적이고 도덕적인 권력을 가지고 백성들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백성들의 잘못된 삶에 대해서 방관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제사장의 마음에는 자신도 그 백성과 동일한 연약함을 지니고 있음을 자각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움을 받은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서 존귀와 명예와 영광을 받은 자리라 할지라도 자신도 연약함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도 본질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죄에 빠질 수 있는 도덕적, 영적인 연약함에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도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아론의 후손인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위한 속죄제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9:7).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사죄의 은총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한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대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한계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자신은 본질적으로 죄인이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위대한 일에 수종 드는 자일지라도 그 자신도 연약함을 지니고 있었기에 언제든지 죄를 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도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죄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으로 설 수 있는 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한계가 없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죄를 알지도 못하시고 죄를 지으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거나 예수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러한 유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찬양하면서도 우리는 자꾸만 예수 아닌 다른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고, 예수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은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에게서, 세상에서 완전함을 찾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완전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완전하신 그분만이 우리를 완전함에 이르게 하십니다. 오직 그분의 복음만이 우리를 완전함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원하기는 광성의 모든 성도들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