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받으실 하나님
다니엘 6장 19-28절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만날 때. 종종 가지게 되는 생각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왜 자기 백성을 그토록 어려운 지경까지 빠뜨리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애초부터 자기 백성이 그 어려움의 상황에 빠지지 않게 인도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며, 또한 모든 사람의 마음과 그 걸음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믿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을 벅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주장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나는 크고 위대한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완전한 절벽 속에 가두실 때가 많습니다. 전후좌우가 완전히 가로막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 역사에 개입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니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서, 우상의 나라에서도 여호와 신앙을 지키는 좁은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결과는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구원하셨지만, 왜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도록 하셨을까 하는 질문은 던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지 않도록 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왜 그러실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역사를 만나게 하시고,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본문에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만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은 그 모든 역사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만물이 그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게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함께하셨습니다. 다니엘이 높은 관직에 있을 때도,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도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니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다니엘의 권력이 다니엘의 지혜가 그를 사자굴에서 나오게 한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완전하신 하나님의 작품이요,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찬송을 받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마땅히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를 원합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은 바로 오늘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다니엘의 사건을 통해서 찬송을 받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건을 통해서 마땅히 찬송을 받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의 순간을 통해서. 심지어는 우리가 당하는 그 고통의 순간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그 어떤 순간이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욥1:21).
오늘 이 시간으로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이 왕명에 의해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16절). 하지만 다리오 왕은 사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다니엘만은 사자굴에 던져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14절에 보면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라고 했고, 16절에서는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과 법도를 근거로 해서 재촉하는 신하들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왕의 도장이 찍힌 조서도, 금령과 법도를 가지고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었던 저 대적들도, 심지어 굶주림에 지친 사자들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좁은 길을 걷는 사람 다니엘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하니님이 다니엘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다니엘을 지키시는 모습이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사자의 입에서 다니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도록 명령은 내렸지만, 다리오는 밤새 금식하며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중지했습니다. 아마도 다니엘을 향한 다리오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다니엘은 멸망한 나라에서 잡혀온 포로에 불과했고, 이제는 나이까지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인품과 그의 충성심, 그리고 그가 지닌 여호와 신앙은 제국의 왕인 다리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다리오는 다음 날 새벽이 되자마자 다니엘이 던져진 사자굴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20절에 보면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라고 소리쳤습니다(20절). 여기에서 “소리 질러”라는 표현은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라는 뜻입니다. 대 제국의 통치자인 왕이 자신의 체면도 무시하고 오직 다니엘을 향하여 안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리오가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었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입니다. 하지만 다리오는 다니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요, 다니엘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섬기던 그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다니엘을 구원하시기를 소망했었습니다(16). 이제 자신의 그 소망이 성취되었는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안부를 묻는 다리오를 향하여 다니엘이 대답합니다. 본문 21절에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안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에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다니엘은 비록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이 아침까지 살아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을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고백합니다. 본문 22절에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자들이 다니엘을 해하지 않은 것이 사자들이 배가 고프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자들의 힘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다니엘이 사자굴에 떨어지기 전에 천사들을 먼저 보내셔서 사자둘의 입을 막으시고 그의 발톱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자들은 다니엘을 보고도 그에게 아무런 해를 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있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무죄함이 증명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죄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은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을 더욱 굳게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니엘의 그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왕에게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즉 다니엘이 왕의 금령을 거역한 것은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왕을 반역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이 왕의 그 금령을 거역함으로 왕에게 해를 끼친 것도 없습니다. 이는 다니엘을 모함한 대적자들의 말과(13절) 대조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자굴에서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다니엘의 이러한 충심이 증명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서 나올 수 있습니다. 비록 대적들에 의해서 사자굴에 던져지는 극한의 상황까지 몰렸지만, 살아계시는 하나님, 역사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 자기 백성과 끝까지 함께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 붙드시는 다니엘은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 맹수조차도 해칠 수가 없도록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다니엘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그들은 믿음으로 …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대적들에게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
다니엘의 구원은 대적들에게는 심판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왕 앞에서 무죄함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을 모함하고 참소한 자들의 범죄가 증명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왕은 다니엘의 대적자들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본문 24절에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참소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3장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참소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즉 나라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대적자들,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자들의 모습은 여전합니다. 본문에서도 저들은 자신들의 정적(政敵)인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서 무고(誣告)하는 악한 자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들이 왕을 충동하여 금령을 세우게 한 것은 왕을 향한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무죄한 사람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결국 왕의 명령으로 그 대적들과 가족들이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대했던 사자들의 반응과 저 대적들을 대하는 사자들의 반응이 전혀 달랐습니다. 다니엘에 대해서는 라무런 해도 가하지 못했던 사자들이 저 대적들에 대해서는 본성을 드러내고 그들의 뼈를 부수고 죽였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 사자들의 문제가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또한 저 대적들이 사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도 단순히 사자들의 힘이나 본성만을 따른 것이 아니라, 다니엘을 살리신 하나님의 역사였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사람들의 마음이나 역사만을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세계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모든 시간에서, 모든 상황에서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 모든 상황에서 지켜주십니다. 비록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시고 지키십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붙잡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자꾸만 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도의 찬양은 이 땅에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장차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서도 우리의 본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0절에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천상에 이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목소리입니다.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고 어린 양의 보좌 앞에 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마치고 주님의 품에 안긴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그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그 모든 순간에, 그 모든 상황에 오직 찬양만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Ⅱ.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5절에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자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이방의 왕이요, 우상숭배를 기본으로 하는 대제국의 통치자인 다리오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다니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본문 다니엘 6장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다리오의 고백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내용을 문자대로 받아들이고, 다리오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리오는 이 사건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통치하는 제국의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그 백성들에게 알리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이라고 하는 사건을 통해서 이방 나라에서, 이방의 백성들에게서까지도 영광을 받으시고 찬송을 받으십니다.
한편 다리오는 사자굴의 사건을 통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왕 중의 왕”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26절에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다리오는 하나님을 가리켜 보통 사용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아닌 “다니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다니엘을 통해서 나타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다리오는 끝까지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다리오에게 있어서 다니엘의 하나님은 자기 제국의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할 뿐인데, 다만 그 가운데서 좀 특별한 신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다리오는 그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서 “떨며 두려워할지니”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자,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자 앞에서 취하는 태도입니다. 5장 19절에서는 바벨론 제국의 모든 백성이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떨며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느부갓네살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져야 하는 영광을 가로채는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하나님은 분명하게 심판하셨었습니다. 결국 본문에서 다리오 왕은 여호와 하나님, 다니엘이 섬기는 그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신적인 영광을 돌리고 경외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리오 왕은 왜 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찬양해야 하는지를 크게 두 가지의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론적인 이유입니다.
본문 26절에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바로 그분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이나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실제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인 사람은 마땅히 그분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하고, 그분께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분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그리고 영원토록 견고하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위상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분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다리오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 엄청난 대 제국 바벨론을 정복한 왕입니다. 바벨론이라고 하는 제국도 영원하지 못한 것처럼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도 영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달리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니엘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증명이 된 사실입니다.
넷째로, 그분은 권세는 무궁할 것입니다. 이를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그리고 그분의 주권은 끝까지 (지속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끝은 어떤 한계가 있는 끝이 아니라, 영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권세)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역적인 이유입니다.
본문 27절에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증적인 예로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신 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은 절대 주권적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간섭이나 도움이 전혀 없이 오직 하나님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와 힘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 구원역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쉬지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은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이적과 기사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통해서 경험한 그 하나님의 존재와 그 위대한 역사 앞에서 놀라고 또 놀랐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말하거나 행하는 것은 곧 심판임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 앞에서 자국의 백성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행동은 그분을 경외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의 어느 신이 여호와 하나님과 비교될 수 있습니까? 이 땅의 어느 우상이 자기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처럼 구원하실 수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오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방법을 뛰어넘은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역사로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를 영원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그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고, 믿음을 주시고, 고백하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종종 빠지게 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도 있고, 구원의 확신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교회에서 봉사도 합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 마땅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평탄한 길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예상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들이 생깁니다. 이기기 힘든 어려움이 닥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그 상황을 대처해야 할까요?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달아 알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평탄할 때도, 우리가 사자굴에 던져지는 상황처럼 어려울 때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친히 사람의 몸으로 오셨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왕이신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에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만이 그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당신의 뜻을 따라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우리를 생명으로 구원하시지만, 대적자들에게는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는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자굴, 아니 그보다 더한 풀무불일지라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토록 위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우리는 그 모든 결과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저 영원한 나라에서까지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왕,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만인이, 만물이 그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믿음으로 쓰임을 받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