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장 1-3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동양의 고전(古典) 효경(孝經)에 이르기를 효도(孝道)는 천지경야(天之経也), 지지의야(地之義也), 인지행야(人之行也)라고 했습니다. 이를 해석하면 부모에 대한 효도는 하늘의 경() 곧 법()이요, 땅의 의()이며, 사람의 마땅히 행()할 바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인간의 죄가 3천 가지인데 그 중에 가장 큰 죄는 바로 불효의 죄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효의 중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 강조하는 것보다 더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효에 대한 명령입니다. 성경은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명령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효는 인간이 당연히 해야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명령인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십계명에서 하나님은 부모에 대한 효를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이 땅에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계명 중에서 가장 큰 것들입니다. 다른 많은 계명들도 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인간 서로를 향하여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계명들을 10계명으로 요약해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 중 앞의 네 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백성들의 마땅한 자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의 여섯 계명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감에 있어서 마땅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향한 계명 중 첫 번째가 바로 부모에 대한 효도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부모에 대한 효는 중요하고도 중요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지상에 오셔서 육신의 부모에게 효를 다하심으로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누가복음 251절에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계셨고 이를 그의 부모에게 말씀하시기도 하셨지만(2:49), 육신의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여 순종하고 섬기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완전하게 보이셨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부모에 대한 효를 잘못하고 있는 당시의 유대인들을 향하여 심한 질책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11절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유전(遺傳)고르반(κορβν)’의 풍습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그 뜻은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 구별된 제물, 거룩한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헬라어로는 δρον, 곧 하나님께 드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 고르반이라는 유전을 가지고 부모를 섬기는 일을 등한시했던 것입니다. 저들은 내가 (부모님께)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부모를 섬기는 일을 중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에 분명 기록하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신 말씀을 들어 저들의 잘못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자신도 효를 몸소 실천하셨고, 또한 그렇게 백성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부모 공경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가정의 중심이 부모에서 자녀에게로 옮겨지고 이제는 자녀들이 가정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것은 지극한데 자녀가 부모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미약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 알기를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 정도로 인식하는 오늘의 자녀들에게 과연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일은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분명 내가 존재하게 된 이유는 우리의 부모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고아는 있을지라도 부모가 없는 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부모로 대접하지 못하는 자녀들이 많은 것은 왜 일까요? 왜 오늘날 부모와 자녀의 사이가 멀어지고 가정이 가정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는 바로 부모를 공경함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바로 오늘의 부모들의 책임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서 들려주는 것은 10%의 효과가, 보여주는 것은 50%의 효과가, 실제로 말해보는데서 70%의 효과가, 그러나 실제로 행동에 옮겨보는 데서 90%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孝道)”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부모들이 행함으로 저들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의 원리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의 우리에게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모 공경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그 동안 우리가 수없이 들어왔던 말씀을 다시 한번 상고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자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에게 크신 은혜로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 공경의 의미

본문 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부모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단순히 나를 낳아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조상들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곧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도 이 의미는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부모는 가정의 육친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부모는 자신의 조상 전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1:1).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나를 낳아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교육에 있어서는 스승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스승을 부모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엘리야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고 외쳤습니다(왕하2:12).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라고 했으며(고전4:15), 갈라디아 교인을 향하여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라고도 했습니다(4:19).

그리고 국가에 있어서는 관원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4923절에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의 종은 나아만 장군을 가리켜 내 아버지라고 불렀으며(왕하5:13), 로마서 131절에서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권세자는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저들에게 통치권을 부여하심으로 백성들을 지키는 산성과 방패, 그리고 통치의 부권(父權)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에 있어서는 경험에 앞선 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회사의 경영주, 선배 등은 바로 넓은 의미의 부모에 포함되는 자들입니다(요일2:12-13, 딤전5:1f).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부모로 인정해야 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육친으로서의 부모를 향하여 공경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공경한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공경(恭敬)’이라는 말을 사전에 찾으면 공손하게 섬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사용된 이 말의 원어인 כָּבַד무겁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인체의 장기(臟器) 중에서 간을 가장 무거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간장은 우리 인체의 일부분입니다. 사람의 뱃속 오른쪽 횡경막 아래 위치하고 있는 적갈색의 소화기관으로 두 개의 간엽(肝葉)과 쓸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간의 무게는 체중의 약 1/50정도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간은 인체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지극히 중요한 기관입니다.

이 간이 하는 일은 몸에 필요한 물질을 저장합니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독물이나 몸 안에 있는 독소를 해독하는 작용을 합니다. 소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담즙을 만들어서 쓸개에 보관합니다. 노폐된 적혈구를 파괴함으로 피를 맑게 만드는 작용을 합니다. 이처럼 간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간을 가리켜 “liver”라고 합니다. 곧 우리의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간이 없이는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 간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자신의 부모를 간과 같이 받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체에 간이 중요하듯이 부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간이 생명을 의미하듯이 부모를 우리의 생명과 같이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님을 자신의 간처럼 소중히 여기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만큼 아름다운 관계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근본은 부부입니다. 부부만큼 가깝고 특별한 관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부의 관계는 비밀입니다(5:31, 32). 이는 타인이 만나서 한 몸을 이루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촌수(寸數)도 없는 아주 특별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지으시고 저들을 부부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통하여 자녀를 생산하게 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종족이 보전되고 확산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법칙에 따라서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은 이후 인류 역사에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피를 받아 태어난 존재입니다. 즉 부모의 존재로 인하여 자녀라는 존재가 가능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의 위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는 또한 자녀의 위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는 서로에게 마땅히 해야만 하는 본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자녀들을 향하여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자녀가 부모를 향하여 공경하는 것은 자녀의 마땅한 도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부모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해 가는 창조질서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215절에 (여호와)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을 지으셨습니다. 물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땅에 수많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경건한 자손을 이어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한 몸이 되게 하시고 저들을 통하여 자손이 계속적으로 이어가도록 하셨습니다(2:24, 19:4).

따라서 부모라는 존재는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사고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에서부터 시작되는 아주 고상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부터 출발하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축복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210절에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온 인류의 아버지라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은 이간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부모에게 당신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그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따라서 부모라고 하는 이름은 아주 귀중한 이름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부모에게만 관계되는 아주 귀중한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름은 오직 자녀에게만 통용되는 이름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아무리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그리고 부부의 사이가 좋다 할지라도 자녀가 없는 사람은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자녀를 생산한 부모만이 들을 수 있는 이름입니다. 또한 이 이름은 오직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가정을 벗어나면 이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회에서는 사회에서 필요한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직장에서는 직장에서 필요한대로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필요한대로, 정치의 현장에서는 정치적으로 필요한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한 이름이 있다고 할지라도 가정 안에서는 오직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다른 그 어떤 이름보다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름은 그 이름에 맞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적인 기능입니다. 이는 자녀를 잘 양육하고 다스리는 기능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다스림 속에서 올바른 자녀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선지자적인 기능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잘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제사장적인 기능입니다. 부모는 가정에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예배를 주관하고, 기도하고, 그 자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기능은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기능입니다. 오직 부모에게만 주어진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그 부모는 이미 부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족장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축복하는 일을 인생의 최고로 생각했습니다(9:26f, 27:1f, 48:1f). 그리고 저들 부모의 축복은 하나님의 약속과 복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부모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만 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부모를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19:3). 부모의 축복을 받고 자란 자녀가 성공할 수 있고 형통의 길을 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하고도 마땅한 자녀의 도리, 곧 본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 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십계명의 인용입니다. 출애굽기 2012절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했고, 신명기 516절에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 중에서 그 명령과 함께 그 명령 이행에 대한 약속이 등장하는 계명입니다.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그 명령을 이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두 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잘 되는 복입니다.

본문 3절에 네가 잘 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잘 된다(εγένηται)’는 것은 그 원문의 의미가 복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 뜻은 형통하다, 그침이 없다, 막힘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만사가 물이 흐르듯이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기쁘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모든 일이 잘 됨으로 인해서 마음이 유쾌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심으로 우리의 인생 길에서 형통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둘째는 장수(長壽)하는 복입니다.

본문 3절에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에서는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길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개인의 장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대적(繼代的)인 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는 자의 후손이 대대적으로 길게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실증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삼상4:11). 그리고 그의 후손도 얼마 못 가고 그 가문이 멸절되고 말았습니다(왕상2:26, 27).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반역하다가 자녀도 없이 죽고 그 대가 끊기고 말았습니다(삼하18:8f). 하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한 이삭은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았습니다(22:1f).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라는 복을 받았습니다. 부모의 심부름으로 도단까지 가는 요셉의 발걸음은 하나님의 선민을 살리기 위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러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37:12f). 아버지 이새의 명을 따라 형들에게 심부름을 가는 다윗의 발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러 가는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삼상17:17f). 선조 요나답의 명령에 대를 이어 순종한 레갑 자손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35:18).

또한 장수의 복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흥왕하는 복을 가리킵니다. 이는 효도하는 자녀들의 흥왕은 곧 사회와 나라의 흥왕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자신이 잘되는 길입니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은 곧 자신이 복을 받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백성을 결단코 버려 두시지 않고 그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에 대한 공경과 효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그분들이 나의 부모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그분들에게 최고의 공경과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효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저 낳은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그를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부모를 제쳐 두고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사람의 본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합니다. 이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윤리가 아닙니다. 이는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또한 그 명령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을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잘 되는 복으로, 장수하는 복으로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