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정
시편 127편 1-5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성경은 창조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새 창조로 끝이 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했습니다. 특히 창세기 2장에는 인간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심에는 아주 특별한 과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과 교제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창1:27). 그리고 하나님의 생기를 인간에게 직접 불어넣어 주셨습니다(창2:7). 둘째로,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창1:27). 그리고 하나님은 이 둘을 하나의 가정이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창2:24).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정이라고 하는 가장 행복한 제도를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창2:15). 이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천국의 모형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인생들이 천국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가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오늘날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이 위기를 맞이했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나눌 수 있는 곳은 가정이라고 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가정이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이 땅의 어느 곳도 행복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가정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느냐 아니면 불행하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지은 시입니다. 그리고 이 시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하는 부제(副題)가 붙어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에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주신 복에 대해서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시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 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복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지(無知)하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복이 오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또한 무엇이 진정한 복인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도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복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행복한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이러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성경의 말씀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성도라면 우리의 가정이 이러한 모습으로 만들어지기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가정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은 우리가 원한다고 받게 되는 것도 아니요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쟁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5월은 우리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하는 달입니다. 어린이 날이 있고, 어버이 날이 있습니다. 스승의 날이 있고, 성년의 날이 있습니다. 부부의 날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날들을 맞이하면서 우리 가정의 소중함과 또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게 보이고 행복하게 보이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그 가정에서 성경적인 의미를 찾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없습니다. 결단코 아름다운 가정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시간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가정은 우멋인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이 있는 가정,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며 우리의 행복한 가정을 설계해 보기를 원합니다.
Ⅰ.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가정입니다.
솔로몬은 먼저 성공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어떤 노력도 하나님의 간섭이 없다면 무용지물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범주를 떠난 인간의 그 어떤 노력도 모두가 다 헛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2장 24절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정 18-19절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잠언 16장 9절에서도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복이 있는 가정의 첫 번째 조건을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여호와께서”라고 하는 표현을 두 번씩 사용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가정이 참으로 복이 있는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가정입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집을 세운다는 의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건물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즉 집을 짓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집을 지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의 결론부에서 인생을 집을 건축하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서 인재(人才), 혹은 기둥, 혹은 들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가정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사라와 라헬은 그들의 하녀들을 통하여 자녀를 얻는다는 의미에서 ‘세운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창16:2, 30:3). 또한 야곱은 라반에게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라고 함으로 완전히 독립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을 ‘세운다’는 표현으로 사용했습니다(창30:30).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수고하며 집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그 집은 바로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워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자식이 많고 재산을 많다고 할지라도 바른 집으로 세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사건은 이에 대한 아주 중요한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탑을 쌓고 자신들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끝내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시지 않으면 모든 인생이 이와 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세우는 집은 모래 위에 세우는 집이요,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2.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가정입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자기의 성(城)을 지키는 일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그 전부가 결국 자기의 것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성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성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가인이 아들을 낳고 성을 쌓아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창4:17).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인생의 몸부림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완벽하게 지켜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높은 담장을 쌓고 온갖 시설을 갖추어 놓음으로 마치 철옹성과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놓고 갖추어 놓고도 마음은 편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성의 허무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3번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성전에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유언을 따라 성전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심으로 그 성전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대하7:15-16). 하지만 이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전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그 성전을 버리셨을 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바벨론에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대하36:19).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비록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하나님은 그 성전을 행하여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성전을 인정하셨습니다(학2:9). 하지만 이 성전도 헬라의 폭군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철저하게 유린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제사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우상을 세우고 여기는 돼지의 피로 우상에게 희생을 드릴 것을 명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게 했고,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의 분봉왕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이 성전은 B.C.20년경부터 시작해서 A.D.63년경에 완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전도 A.D.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완전히 훼파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하나님의 집이라 불리는 성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이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께서 그 집을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가정이 바로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3.하나님이 보상하시는 가정입니다.
본문 2절에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땀을 흘립니다. 그렇게 함으로 얻은 소득을 가정으로 가지고 돌아와 온 가족이 그것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수고와 노력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헛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수고하고 자신이 노력하면 된다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자만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웃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4:13-14). 또한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라고 권면했습니다(신8:18).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그 어떤 사람도 받을 수 없고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사람의 그 어떤 수고와 노력도 대가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5장 10절에서는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고백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모든 삶에서 충분하게 채워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자가 진정 복있는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십니까? 우리 가정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심에 대한 믿음과 고백이 있습니까?
진정 복이 있는 가정은 가문이 흥왕하는 가정이 아닙니다. 진정 복이 있는 가정은 철옹성이나 대궐과 같은 집을 가진 가정이 아닙니다. 진정 복이 있는 가정은 재물이 풍성한 가정도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만 필요한 것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것들에 얽매이는 것을 헛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정 복이 있는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가정입니다. 진정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께서 산성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는 가정입니다. 진정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께서 수고의 대가를 보상해 주시는 가정입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이 집의 주인이시오,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오. 모든 대화에 말없이 듣는 이시라”라고 하는 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우리는 진정 복이 있는 가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리켜 진정으로 행복한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정은 모든 식구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의 가정이어야 합니다. 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가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정이 가는 길에 우리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가정이 바로 진정 행복한 가정이요, 복이 있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Ⅱ.하나님의 복이 대를 이어가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나에게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나만 예수 잘 믿고, 나만 예수를 위해서 잘 살고, 나만 복음을 위해서 살았다고 해서 우리 가정이 복있는 가정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합니다. 우리의 복은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이후의 자녀들의 세대를 통해서 이어갈 때, 비로소 복이 있는 가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날 자녀가 잘된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도,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아도 그것이 우리 자녀의 잘됨에 대한 근거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세상적인 기준으로만 우리 자녀들의 잘됨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자식이 가정의 복이 됨에 대해서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안에 있는 가정의 자녀가 왜 복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입니다.
본문 3절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기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무형의 유산’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을 직역하면 “보라, 아들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유산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의 아들은 한 가정의 혈통을 이어가는 아들, 즉 그 집의 존재를 유지시킬 수 있는 아들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가문이라 할지라도 대를 이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이 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놓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누릴 자손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그렇다면 자식이 있다는 것은 그의 가문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세대로부터 복이 자손들에게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식들이 하나님께서 한 가정에 주시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자녀를 생산하기 위한 부모의 노력이 결코 무시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결코 자녀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자녀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창1:28).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태를 그녀의 나이 90세에 열어주심으로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창21:1). 하나님은 야곱의 아내 라헬의 태를 열지 않으심으로 자녀를 얻지 못하게 하셨다가 후에 그녀의 태를 열어 요셉과 베냐민을 생산하게 하셨습니다(창30:2, 22).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의 태를 여심으로 사무엘을 출산하게 하셨습니다(삼상1:5, 20). 하나님은 엘리사벳의 태를 주장하심으로 요한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눅1:7, 24).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태를 닿으시기도 하시며, 여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늦게 함으로 자녀를 출산하는 나이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 부부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자녀를 늦게 출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녀를 원하지만 얻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부부들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태가 열려 자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가정에 복을 주셨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또한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 주신 기업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르게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세워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기업으로서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2.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입니다.
본문 3절에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자녀들의 다 소중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귀한 보물을 준다할지라도 자기의 자녀와 바꾸겠습니까? 금을 가지고 자녀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서 준다고 해서 그 자녀와 바꿀 부모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자식이 비록 부족하다 할지라도 가장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가장 아름다운 자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녀가 있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요한 사람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기쁨의 근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상급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 가정에 자녀라고 하는 상급을 주시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상급인 자녀를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면서 기뻐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통해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상급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오늘날 아들과 딸의 구별을 통해서 복이라고 주장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녀라고 하는 것은 그의 성별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상급이라고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자녀를 바라보며 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로 양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자식은 부모에게 큰 힘이 됩니다.
본문 4-5절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문”은 재판이 시행되는 곳으로 재판하는 사람들이 주로 앉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성문에서는 늘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이 성문에서 대적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데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는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자녀들이 나타나 자기의 편이 되어주고 바른 말로 증언을 하게 된다면 대적들의 입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의에 차서 공격을 하던 자들은 모두가 거짓말하는 자로 드러나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 안에서 말씀을 통해 바르게 양육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저들이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저들이 가는 곳에 평화가 있고, 저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웃음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의 입술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도록 해야 합니다. 저들의 아름다운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란 자녀들은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이러한 자녀들이 부모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이러한 자녀들이 부모에게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늘 자녀들로 인해서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복 있는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요,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고, 지혜로운 자녀가 되고, 용기 있는 자녀가 되고, 세상을 이기는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따라서 진정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이어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민(聖民)이 되게 하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못된 가정을 보면서 복이 있는 가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 될 때 비로소 우리의 가정이 복을 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은 진정 하나님의 복이 있는 가정입니까?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가정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복으로 잘 양육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복도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넘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소리와 그 은혜를 찬양하는 소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복이 우리 가정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 흘러넘치는 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