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1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26)
본문 : 벧후 3:15-16
제목 : 바르게 해석해야 할 성경의 진리.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읽고 그대로 단순하게 믿는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또 문제가 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에 교만한 마음과 탐욕이 있어서 성경을 자기 생각대로 억지로 해석을 하여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원래의 목적을 흐리게 하고 엉뚱한 길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벌을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영원한 생명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고하며 살아야 하고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 대책 없는 인생에게 율법을 주셔서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악한 죄를 용서받고 다시 영원한 생명을 되찾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하늘나라가 있음을 선포하시고 우리를 그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회개하고 그를 믿는 자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신천신지를 만드시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이 세상에 회개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심판과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우리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는 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믿고 우리 죄 대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그 말씀 따라 살면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참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 더 잘 살아보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마치 성경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살게 하는 책으로 억지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진리의 핵심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재림의 확실성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이것이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진리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그가 쓴 서신서들에서도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확실한 사실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은 성경에 다소 우리가 이해하기가 힘든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고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억지로 해석을 해서 재림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재림의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자랑스러운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본문 15절 하반 절에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전통적인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직접 목격을 했고 그 말씀들을 직접 다 들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12명을 특별히 부르시고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사도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 제자들 중에도 수제자로 불릴 만큼 아주 특별한 사도였습니다.
바울은 그 때 직접 예수님을 따르며 교육을 받은 제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때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유대인들 편에 서서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천국에 가보기도 하고 여러 계시들을 받아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베드로사도와 바울사도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두 사도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도의 기록을 살펴보면 두 사람을 경쟁시키는 것처럼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의 첫 번째 설교에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습니다.(행(2:14-36)
바울도 그의 첫 번째 설교에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습니다(행13:16~41).
베드로 사도가 마술을 하는 시몬을 책망했습니다(행 8:9~24).
바울도 마술사인 엘루마를 책망하고 징계했습니다(13:6~11).
베드로는 그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병을 고쳤더라고 했습니다(행 5:15).
바울도 그의 수건이나 앞치마만 상처에 덮어도 병을 고쳐졌다고 했습니다(19:12).
베드로가 모태에서부터 서지 못하는 앉은뱅이를 뛰고 걷게 했다고 했습니다(행 3:6~8).
바울도 모태에서부터 서지 못하던 사람을 고쳤다고 했습니다(행14:8~10).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렸습니다(행 9:10).
바울도 설교 시간에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서 죽은 유두고를 다시 살렸습니다(20:7~12).
사람들의 경배를 거절한 것도 또 안수할 때 성령님께서 내려오신 것도 다 같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서 두 사람이 서로 경쟁자이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베드로 사도는 바울을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쟁적인 기록의 목적은 아마도 베드로나 바울이 똑 같은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면서 배운 사람은 베드로지만 그러나 바울도 그에 뒤지지 않는 사도라는 것을 알게 하고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신서들이 사도로서 기록한 정당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따르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세상적인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글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대학을 졸업한 박사였습니다.
바울은 세상에 계시던 예수님을 비록 직접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천상에 계시는 예수님께 많은 계시를 받아서 그의 풍부한 지혜로 서신서들을 많이 기록했습니다.
바울서신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신서요 기독교의 주요 핵심교리들을 잘 기록하여 우리들에게 진리를 바르게 알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2.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니
본문 16절 말씀에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신서들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그 주제가 재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3-14)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바울서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서신서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기록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가 기록한 야고보서에도 예수님의 재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8)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서신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2:28)
또 성경의 맨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2장 20-21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성경을 끝마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나타나는 현상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하시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불에 타서 그 원소까지 녹아져서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재판하시는 최후의 심판대에 서서 자기가 행한 대로 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이 없다고 큰소리치던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울면서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비웃던 많은 사람들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좇아서 천년만년 살줄로 알았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 아끼던 재물들이 하나도 남김이 없이 불타고 마는 것을 보면서 그 어리석음을 한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살던 우리 성도들은 기뻐서 뛰며 춤을 추며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가운데 우리의 이름이 불려질 때 그 감동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 눈물을 씻기시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실 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했던 고통들이 꿈에 본 듯 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시작되는 영원한 생명
그 때부터 시작되는 정말 복된 생활
그것을 무슨 말로 표현을 하겠습니까?
이렇게 중요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느 한 구석에 이상한 말로 한두 번 기록이 되어 있다면 우리가 의심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성경에서 한 목소리로 확실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나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성경의 기록자들이 하나같이 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감동하심을 통하여 주신 진리의 말씀이며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은 다 모른다고 해도 이 약속의 말씀만은 반드시 바르게 알고 기억하고 가슴에 품고 그날을 기다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이요 그것이 살아 있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3.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본문 16절 말씀에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해석을 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엉뚱한 길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아무렇게나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이나 특별한 사람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면 오늘날 목사들로 하여금 그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을 해서 진리를 바르게 가르쳐주는 것이 목사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성경을 기록할 때 감동을 하셨던 성령님의 감동이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에게도 감동을 주셔서 바르게 해석을 하고 바르게 전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방향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목적지로 하고 성경을 해석하면 그렇게 잘못된 해석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욕심 때문에 그 목적지를 세상으로 향하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어느 아름다운 바닷가에 표시판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이 바다는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깊이가 깊고 상어가 출몰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수영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표지판을 보고 어떻게 할까요? 그 말 그대로 믿고 안 들어가면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그 표지판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아마 수영 못하게 하려고 거짓말로 써 놓은 것일 거야 난 수영이 되니까 들어가도 되겠지 상어는 아무 때나 나타나나? 라고 하면서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고가 나니까 표지판에다가 자세하게 설명을 더 해놓습니다.
이 바다의 깊이는 3m 이상이고 지난 며칟날 며칟날에 상어가 출몰하여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특별히 조심하십시오.
들어가라는 말입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말입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안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 수심이 그 정도라도 수영을 잘하니까 되고 상어가 나타난 날이 주로 홀수 날이네 오늘이 짝수니까 들어가도 되겠네 하고 풍덩 뛰어 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도 단순하게 그렇게 믿고 따르면 그만입니다.
세상은 헛되고 헛되니까 세상의 것에 욕심 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라고 하면 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니까 기다리면서 바르게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한 것이 언제이지 2천년이나 돼도 안 오시잖아 그러면 금방 오시겠어? 한참 기다려야지 우리가 사는 날 설마 오시겠어? 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적용을 하면서 세상의 축복에 목을 매고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순종에 포인트를 두지 않고 뒤에 따른 복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세상의 복에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니까 성경이 하늘나라로 인도하지 않고 엉뚱하게 이 세상의 부귀영화로 인도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천국가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다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반갑게 여기지 않고 안 오셨으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런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면서 돌로 떡덩이를 만들이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요구해도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시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행하셔서 아픈 사람도 고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어 보여주고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서 기적을 행하는 데만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자기도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많은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도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모세나 엘리야나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살펴보면 그런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 일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기적을 일으킨 다음 반드시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적은 그들이 기록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후대에 우리가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나 성경을 기록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붙잡고 쓰시는 기적이 일어날 때 그가 기록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함부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쉽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입니다.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는 진리를 따라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성경의 맥을 흐르는 하나님나라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진리입니다.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다시 오시는 우리 주님을 기리면서 사는 것 진리의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은 베드로 사도만이 증언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요한도 야고보도 성경 전체가 이 사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가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사시다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벧후 3:15-16
제목 : 바르게 해석해야 할 성경의 진리.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읽고 그대로 단순하게 믿는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또 문제가 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에 교만한 마음과 탐욕이 있어서 성경을 자기 생각대로 억지로 해석을 하여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원래의 목적을 흐리게 하고 엉뚱한 길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벌을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영원한 생명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고하며 살아야 하고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 대책 없는 인생에게 율법을 주셔서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악한 죄를 용서받고 다시 영원한 생명을 되찾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하늘나라가 있음을 선포하시고 우리를 그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회개하고 그를 믿는 자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신천신지를 만드시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이 세상에 회개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심판과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우리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는 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믿고 우리 죄 대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그 말씀 따라 살면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참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 더 잘 살아보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마치 성경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살게 하는 책으로 억지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진리의 핵심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재림의 확실성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이것이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진리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그가 쓴 서신서들에서도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확실한 사실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은 성경에 다소 우리가 이해하기가 힘든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고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억지로 해석을 해서 재림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재림의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자랑스러운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본문 15절 하반 절에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전통적인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직접 목격을 했고 그 말씀들을 직접 다 들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12명을 특별히 부르시고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사도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 제자들 중에도 수제자로 불릴 만큼 아주 특별한 사도였습니다.
바울은 그 때 직접 예수님을 따르며 교육을 받은 제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때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유대인들 편에 서서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천국에 가보기도 하고 여러 계시들을 받아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베드로사도와 바울사도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두 사도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도의 기록을 살펴보면 두 사람을 경쟁시키는 것처럼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의 첫 번째 설교에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습니다.(행(2:14-36)
바울도 그의 첫 번째 설교에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습니다(행13:16~41).
베드로 사도가 마술을 하는 시몬을 책망했습니다(행 8:9~24).
바울도 마술사인 엘루마를 책망하고 징계했습니다(13:6~11).
베드로는 그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병을 고쳤더라고 했습니다(행 5:15).
바울도 그의 수건이나 앞치마만 상처에 덮어도 병을 고쳐졌다고 했습니다(19:12).
베드로가 모태에서부터 서지 못하는 앉은뱅이를 뛰고 걷게 했다고 했습니다(행 3:6~8).
바울도 모태에서부터 서지 못하던 사람을 고쳤다고 했습니다(행14:8~10).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렸습니다(행 9:10).
바울도 설교 시간에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서 죽은 유두고를 다시 살렸습니다(20:7~12).
사람들의 경배를 거절한 것도 또 안수할 때 성령님께서 내려오신 것도 다 같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서 두 사람이 서로 경쟁자이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베드로 사도는 바울을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쟁적인 기록의 목적은 아마도 베드로나 바울이 똑 같은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면서 배운 사람은 베드로지만 그러나 바울도 그에 뒤지지 않는 사도라는 것을 알게 하고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신서들이 사도로서 기록한 정당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따르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세상적인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글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대학을 졸업한 박사였습니다.
바울은 세상에 계시던 예수님을 비록 직접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천상에 계시는 예수님께 많은 계시를 받아서 그의 풍부한 지혜로 서신서들을 많이 기록했습니다.
바울서신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신서요 기독교의 주요 핵심교리들을 잘 기록하여 우리들에게 진리를 바르게 알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2.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니
본문 16절 말씀에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신서들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그 주제가 재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3-14)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바울서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서신서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기록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가 기록한 야고보서에도 예수님의 재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8)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서신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2:28)
또 성경의 맨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2장 20-21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성경을 끝마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나타나는 현상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하시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불에 타서 그 원소까지 녹아져서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재판하시는 최후의 심판대에 서서 자기가 행한 대로 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이 없다고 큰소리치던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울면서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비웃던 많은 사람들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좇아서 천년만년 살줄로 알았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 아끼던 재물들이 하나도 남김이 없이 불타고 마는 것을 보면서 그 어리석음을 한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살던 우리 성도들은 기뻐서 뛰며 춤을 추며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가운데 우리의 이름이 불려질 때 그 감동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 눈물을 씻기시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실 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했던 고통들이 꿈에 본 듯 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시작되는 영원한 생명
그 때부터 시작되는 정말 복된 생활
그것을 무슨 말로 표현을 하겠습니까?
이렇게 중요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느 한 구석에 이상한 말로 한두 번 기록이 되어 있다면 우리가 의심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성경에서 한 목소리로 확실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나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성경의 기록자들이 하나같이 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감동하심을 통하여 주신 진리의 말씀이며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은 다 모른다고 해도 이 약속의 말씀만은 반드시 바르게 알고 기억하고 가슴에 품고 그날을 기다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이요 그것이 살아 있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3.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본문 16절 말씀에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해석을 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엉뚱한 길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아무렇게나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이나 특별한 사람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면 오늘날 목사들로 하여금 그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을 해서 진리를 바르게 가르쳐주는 것이 목사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성경을 기록할 때 감동을 하셨던 성령님의 감동이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에게도 감동을 주셔서 바르게 해석을 하고 바르게 전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방향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목적지로 하고 성경을 해석하면 그렇게 잘못된 해석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욕심 때문에 그 목적지를 세상으로 향하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어느 아름다운 바닷가에 표시판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이 바다는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깊이가 깊고 상어가 출몰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수영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표지판을 보고 어떻게 할까요? 그 말 그대로 믿고 안 들어가면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그 표지판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아마 수영 못하게 하려고 거짓말로 써 놓은 것일 거야 난 수영이 되니까 들어가도 되겠지 상어는 아무 때나 나타나나? 라고 하면서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고가 나니까 표지판에다가 자세하게 설명을 더 해놓습니다.
이 바다의 깊이는 3m 이상이고 지난 며칟날 며칟날에 상어가 출몰하여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특별히 조심하십시오.
들어가라는 말입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말입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안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 수심이 그 정도라도 수영을 잘하니까 되고 상어가 나타난 날이 주로 홀수 날이네 오늘이 짝수니까 들어가도 되겠네 하고 풍덩 뛰어 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도 단순하게 그렇게 믿고 따르면 그만입니다.
세상은 헛되고 헛되니까 세상의 것에 욕심 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라고 하면 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니까 기다리면서 바르게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한 것이 언제이지 2천년이나 돼도 안 오시잖아 그러면 금방 오시겠어? 한참 기다려야지 우리가 사는 날 설마 오시겠어? 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적용을 하면서 세상의 축복에 목을 매고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순종에 포인트를 두지 않고 뒤에 따른 복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세상의 복에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니까 성경이 하늘나라로 인도하지 않고 엉뚱하게 이 세상의 부귀영화로 인도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천국가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다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반갑게 여기지 않고 안 오셨으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런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면서 돌로 떡덩이를 만들이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요구해도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시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행하셔서 아픈 사람도 고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어 보여주고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서 기적을 행하는 데만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자기도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많은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도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모세나 엘리야나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살펴보면 그런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 일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기적을 일으킨 다음 반드시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적은 그들이 기록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후대에 우리가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나 성경을 기록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붙잡고 쓰시는 기적이 일어날 때 그가 기록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함부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쉽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입니다.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는 진리를 따라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성경의 맥을 흐르는 하나님나라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진리입니다.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다시 오시는 우리 주님을 기리면서 사는 것 진리의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은 베드로 사도만이 증언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요한도 야고보도 성경 전체가 이 사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가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사시다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