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20)
본문 : 벧후 3:1-2
제목 :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
베드로 사도가 두 편의 편지를 썼습니다.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를 썼는데 그 두 편을 우리가 배우고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 서신을 쓰게 된 속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내가 이 두 편지를 쓰는데 이 두 편지로 여러분은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일깨워서 생각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명령들을 기억나게 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마음도 진실한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진실해야 정직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데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더러워진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있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뜻은 간곳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욕심만 채우고자 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욕심들만 가득합니다.
세상은 거짓이 난무하고 온갖 이기주의가 팽배해서 마음을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교회 내에는 진실한 마음 정직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의 마음도 일깨워져서 정직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바른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주신 진리를 바르게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1.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본문 1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진실한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말에서 진실한 마음이란 거짓이 없이 참되고 바른 마음, 참되고 변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되고 바르다는 말도 사람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말하는 참되고 바른 것과 마음 자체가 세속에 물들어서 악해진 상태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참되고 바른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에서는 이 진실한 마음에서 진실함을 좀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진실의 어원은 태양 빛에 드러난 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두운 상태에 있을 때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잘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밝은 곳에 그것을 비추어 볼 때 비로소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진실한 마음도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우리끼리 서로 비추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빛 되신 우리 예수님 앞으로 나아거서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 진실을 구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 중국에 사는 우리 조선족들을 만나보니까 다 그러 것은 아니겠지만 거짓말을 참 잘합니다.
차산다고 돈 달라고 해서 새 차 값을 주니까 다른데 다 쓰고 어디서 헌차 잘 굴러가지도 않는 싼 차 한 대 사고 차 샀다고 하고 조금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차 한 대를 산 것 만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순수함에서 떠나서 변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공산당의 감시를 받으면서 살면서 어려운 세월을 살면서 그들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변질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의 사람들은 참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 사람들에게 압박을 받으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농사지어서 그들에게 다 빼앗기고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겨우 해방이 되었지만 혼란스러운 사회였고 또 금방 6.25전쟁이 터져서 군에 가서 싸우고 피난살이 하고 고생들을 많이 했습니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요…….” 피난시절 고생을 그린 대표적인 노래일 것입니다.
요즘 전우니 뭐니 해서 전쟁을 그린 연속극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적군이 앞에서 총을 쏴대는데 돌격 앞으로 하면 총알이 날라 와도 앞으로 가면서 총을 쏘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겁이 많은 군인은 바위 뒤에 숨어서 꼼짝도 안 합니다.
그 때의 양심으로 보면 이 사람은 아주 정직하지 못한 나쁜 군인입니다.
피난 가서 판자 집에서 겨우 목에 풀칠이나 하면서 사는데 그 때 왜 너만 먹고 나는 안주냐? 이 양심도 없는 놈아 라고 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런 시대를 살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악하게 되었고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산 사람들이 정직하고 바른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정직하다고 말하겠지만 이미 정직한 마음은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부모님 맡에서 그분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살았습니다.
그분들에게 가정교육을 받고 삶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도 순수하게 정직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오늘날을 사는 신세대가 정말 정직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악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아주 간난아이 때는 순수하겠지만 조금만 크면 정직한 마음이 없어지고 맙니다.
아이들이 배속에서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떼를 쓰고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지금은 장사꾼들이 돈벌이하기 위해서 우리들을 엄청 속이고 또 나쁜 길로 인도합니다.
전에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같은 것 없이도 잘 살았는데 장사꾼들이 돈벌이 하려고 그런 것 만들어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핸드폰 아니라 전화가 없는 세상에도 잘 살았는데 핸드폰 때문에 많은 사람 멍청하게 만듭니다.
길을 가면서도 문자 보내고 전화하고 수업시간에도 전화 만지작거리고 잠깐만 없어도 불안해합니다.
이런 잘못된 환경 때문에 우리의 마음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비뚤어진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바른 양심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이런 정직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진리는 왜곡되고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님 하면 참 존경스러워야 되는데 또 바른 진리만을 설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목사라고 하면서 저렇게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까 왜 목사라고 하면서 저렇게 엉터리로 성격을 가르칠까? 의아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목사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살아 온 배경 때문에 마음에 많은 상처들이 있고 그 상처 때문에 정직한 마음이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바른 목회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어릴 때 너무 가난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목사님이 심방을 오시면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해서 대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형제가 밖에서 목사님 잡수시는 것을 구경합니다.
조금 남기고 가야 우리가 먹을 텐데 마음을 조이면서 기다리는데 동생이 그만 으앙 하면서 울고 나옵니다.
형님아 목사님이 밥에 물 말아 먹었다
옛날 사람들 밥을 다 먹을 때 끝에 밥에 물을 부어서 말아 먹습니다.
깨끗이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기 위해서입니다.
오냐 나도 목사가 되어서 대접을 잘 받아야지 맛있는 것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목사가 되어야지 그리고 그 아이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의 마음에는 목사는 잘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입력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어렸을 때 목사님이 강단에서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얼른 목사가 되어서 교인들 앞에서 물 꿀꺽꿀꺽 마셔야지 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들은 다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는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면서 물을 마시는 것이 아주 특별한 권리를 행세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마음속에는 목사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야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권위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식중에 있는 잘못된 마음들 때문에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권위의식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참된 목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진리에 접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나 교회에 와서 부자가 좀 되어보고 성공을 좀 해 보아야겠다.
세상에서 받지 못한 대접도 좀 받아보고 좀 잘난 척도 해 보아야 되겠다. 라는 마음들 때문에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 바른 신앙생활을 해 보기도 전에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환경 때문에, 어려움 때문에, 헛된 욕망 때문에, 잘못된 교육이나 경험 때문에 비뚤어진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만드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밝은 햇빛에 비추어 보아서 정말로 바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2.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역시 1절 말씀에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마음 비뚤어진 마음을 버리고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깨워서 생각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일깨우다.” 라는 말은 “구별하다, 분별하다.” 라는 말과 “눈을 뜨게 하다. 자극을 주다.” 라는 말이 합해진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자극을 주어서 눈을 뜨게 해서 올바른 분별력을 갖게 한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바르지 못한 마음 정지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은 바른 사람이다 정직한 사람이다. 라고 착각하고 거기 안주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자극을 주어서 흔들어 깨워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바르게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잠에서 깨어나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이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을까요?
예배시간 한 시간 자는 것도 깨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인생을 깨울 수 있을까요?
일주일에 겨우 설교 3-40분 듣는데 거기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을까요?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을 어떻게 일깨울 수 있을까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외식 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 까요?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세상의 재미만 바라보고 세상의 행복만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을 어떻게 세상의 헛됨을 알고 천국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오랜 세월 그렇게 보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알고 살아온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있을까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만 이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역사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설교를 하시면서 우리의 심령의 밭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할 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참된 행복이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정말로 형편이 없는 자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로 호소할 때 복이 임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드럽고 따듯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는 자에게 참된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과 연관시켜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정직하고 청결한 마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 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참 중요합니다.
서로를 화해시키고 사로를 이해하게 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또 노회일이나 복지협회 일을 하면서 화평케 하는 자가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단체에 어떤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사실 처음에는 별 것도 아닌 문제가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거나 중간에 말을 옮기는 사람이 나쁜 말만 옮겨서 서로 오해를 하게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나쁜 말만 자꾸 하고 옮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이나 교회는 늘 분쟁과 미움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말만 하고 좋은 말만 옮기는 사람이 있는 가정이나 교회는 화목한 가정 화목한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남의 잘못만 보고 지적하는 일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마음을 바꾸어서 칭찬하고 좋게 이야기 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면 정말로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깨끗하고 정결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늘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3.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본문 2절 말씀에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편협 되고 왜곡되어 있는 마음을 일깨워서 정직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의 말씀 속에 기록된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일깨우시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1)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의 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선지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범하고 타락의 길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스스로 그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선언하시고 그들을 구원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다는 약속이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참 뜻입니다.
구약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이라고 이해를 한다면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율법과 선지서의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세속에 물든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서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옳지 않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살아서 우리의 마음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사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리신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릎 꿇고 엎드리니 우릴 겸손케 하소서
악한데서 눈을 돌려 모든 우상 버리오니
깨끗한 손 주옵소서 주님만 높여 드리기 원해
정결한 맘 주옵소서. 주님만 높여 드리기 원해…….
본문 : 벧후 3:1-2
제목 :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
베드로 사도가 두 편의 편지를 썼습니다.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를 썼는데 그 두 편을 우리가 배우고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 서신을 쓰게 된 속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내가 이 두 편지를 쓰는데 이 두 편지로 여러분은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일깨워서 생각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명령들을 기억나게 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마음도 진실한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진실해야 정직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데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더러워진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있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뜻은 간곳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욕심만 채우고자 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욕심들만 가득합니다.
세상은 거짓이 난무하고 온갖 이기주의가 팽배해서 마음을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교회 내에는 진실한 마음 정직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의 마음도 일깨워져서 정직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바른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주신 진리를 바르게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1.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본문 1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진실한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말에서 진실한 마음이란 거짓이 없이 참되고 바른 마음, 참되고 변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되고 바르다는 말도 사람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말하는 참되고 바른 것과 마음 자체가 세속에 물들어서 악해진 상태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참되고 바른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에서는 이 진실한 마음에서 진실함을 좀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진실의 어원은 태양 빛에 드러난 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두운 상태에 있을 때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잘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밝은 곳에 그것을 비추어 볼 때 비로소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진실한 마음도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우리끼리 서로 비추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빛 되신 우리 예수님 앞으로 나아거서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 진실을 구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 중국에 사는 우리 조선족들을 만나보니까 다 그러 것은 아니겠지만 거짓말을 참 잘합니다.
차산다고 돈 달라고 해서 새 차 값을 주니까 다른데 다 쓰고 어디서 헌차 잘 굴러가지도 않는 싼 차 한 대 사고 차 샀다고 하고 조금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차 한 대를 산 것 만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순수함에서 떠나서 변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공산당의 감시를 받으면서 살면서 어려운 세월을 살면서 그들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변질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의 사람들은 참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 사람들에게 압박을 받으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농사지어서 그들에게 다 빼앗기고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겨우 해방이 되었지만 혼란스러운 사회였고 또 금방 6.25전쟁이 터져서 군에 가서 싸우고 피난살이 하고 고생들을 많이 했습니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요…….” 피난시절 고생을 그린 대표적인 노래일 것입니다.
요즘 전우니 뭐니 해서 전쟁을 그린 연속극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적군이 앞에서 총을 쏴대는데 돌격 앞으로 하면 총알이 날라 와도 앞으로 가면서 총을 쏘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겁이 많은 군인은 바위 뒤에 숨어서 꼼짝도 안 합니다.
그 때의 양심으로 보면 이 사람은 아주 정직하지 못한 나쁜 군인입니다.
피난 가서 판자 집에서 겨우 목에 풀칠이나 하면서 사는데 그 때 왜 너만 먹고 나는 안주냐? 이 양심도 없는 놈아 라고 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런 시대를 살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악하게 되었고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산 사람들이 정직하고 바른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정직하다고 말하겠지만 이미 정직한 마음은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부모님 맡에서 그분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살았습니다.
그분들에게 가정교육을 받고 삶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도 순수하게 정직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오늘날을 사는 신세대가 정말 정직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악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아주 간난아이 때는 순수하겠지만 조금만 크면 정직한 마음이 없어지고 맙니다.
아이들이 배속에서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떼를 쓰고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지금은 장사꾼들이 돈벌이하기 위해서 우리들을 엄청 속이고 또 나쁜 길로 인도합니다.
전에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같은 것 없이도 잘 살았는데 장사꾼들이 돈벌이 하려고 그런 것 만들어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핸드폰 아니라 전화가 없는 세상에도 잘 살았는데 핸드폰 때문에 많은 사람 멍청하게 만듭니다.
길을 가면서도 문자 보내고 전화하고 수업시간에도 전화 만지작거리고 잠깐만 없어도 불안해합니다.
이런 잘못된 환경 때문에 우리의 마음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비뚤어진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바른 양심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이런 정직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진리는 왜곡되고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님 하면 참 존경스러워야 되는데 또 바른 진리만을 설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목사라고 하면서 저렇게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까 왜 목사라고 하면서 저렇게 엉터리로 성격을 가르칠까? 의아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목사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살아 온 배경 때문에 마음에 많은 상처들이 있고 그 상처 때문에 정직한 마음이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바른 목회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어릴 때 너무 가난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목사님이 심방을 오시면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해서 대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형제가 밖에서 목사님 잡수시는 것을 구경합니다.
조금 남기고 가야 우리가 먹을 텐데 마음을 조이면서 기다리는데 동생이 그만 으앙 하면서 울고 나옵니다.
형님아 목사님이 밥에 물 말아 먹었다
옛날 사람들 밥을 다 먹을 때 끝에 밥에 물을 부어서 말아 먹습니다.
깨끗이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기 위해서입니다.
오냐 나도 목사가 되어서 대접을 잘 받아야지 맛있는 것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목사가 되어야지 그리고 그 아이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의 마음에는 목사는 잘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입력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어렸을 때 목사님이 강단에서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얼른 목사가 되어서 교인들 앞에서 물 꿀꺽꿀꺽 마셔야지 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들은 다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는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면서 물을 마시는 것이 아주 특별한 권리를 행세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마음속에는 목사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야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권위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식중에 있는 잘못된 마음들 때문에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권위의식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참된 목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진리에 접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나 교회에 와서 부자가 좀 되어보고 성공을 좀 해 보아야겠다.
세상에서 받지 못한 대접도 좀 받아보고 좀 잘난 척도 해 보아야 되겠다. 라는 마음들 때문에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 바른 신앙생활을 해 보기도 전에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환경 때문에, 어려움 때문에, 헛된 욕망 때문에, 잘못된 교육이나 경험 때문에 비뚤어진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만드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밝은 햇빛에 비추어 보아서 정말로 바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2.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역시 1절 말씀에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마음 비뚤어진 마음을 버리고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깨워서 생각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일깨우다.” 라는 말은 “구별하다, 분별하다.” 라는 말과 “눈을 뜨게 하다. 자극을 주다.” 라는 말이 합해진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자극을 주어서 눈을 뜨게 해서 올바른 분별력을 갖게 한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바르지 못한 마음 정지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은 바른 사람이다 정직한 사람이다. 라고 착각하고 거기 안주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자극을 주어서 흔들어 깨워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바르게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잠에서 깨어나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이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을까요?
예배시간 한 시간 자는 것도 깨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인생을 깨울 수 있을까요?
일주일에 겨우 설교 3-40분 듣는데 거기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을까요?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을 어떻게 일깨울 수 있을까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외식 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 까요?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세상의 재미만 바라보고 세상의 행복만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을 어떻게 세상의 헛됨을 알고 천국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오랜 세월 그렇게 보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알고 살아온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있을까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만 이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역사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설교를 하시면서 우리의 심령의 밭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할 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참된 행복이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정말로 형편이 없는 자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로 호소할 때 복이 임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드럽고 따듯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는 자에게 참된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과 연관시켜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정직하고 청결한 마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 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참 중요합니다.
서로를 화해시키고 사로를 이해하게 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또 노회일이나 복지협회 일을 하면서 화평케 하는 자가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단체에 어떤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사실 처음에는 별 것도 아닌 문제가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거나 중간에 말을 옮기는 사람이 나쁜 말만 옮겨서 서로 오해를 하게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나쁜 말만 자꾸 하고 옮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이나 교회는 늘 분쟁과 미움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말만 하고 좋은 말만 옮기는 사람이 있는 가정이나 교회는 화목한 가정 화목한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남의 잘못만 보고 지적하는 일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마음을 바꾸어서 칭찬하고 좋게 이야기 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면 정말로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깨끗하고 정결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늘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3.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본문 2절 말씀에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편협 되고 왜곡되어 있는 마음을 일깨워서 정직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의 말씀 속에 기록된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일깨우시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1)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의 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선지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범하고 타락의 길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스스로 그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선언하시고 그들을 구원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다는 약속이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참 뜻입니다.
구약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이라고 이해를 한다면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율법과 선지서의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세속에 물든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서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옳지 않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살아서 우리의 마음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사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리신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릎 꿇고 엎드리니 우릴 겸손케 하소서
악한데서 눈을 돌려 모든 우상 버리오니
깨끗한 손 주옵소서 주님만 높여 드리기 원해
정결한 맘 주옵소서. 주님만 높여 드리기 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