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19)
본문 : 막 5:35-43
제목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35.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록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을 행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을 구원해 주시고 살려주심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구원의 주님으로 오셨음을 알고 믿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원을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혈루증 때문에 고통당하던 그 여인이 구원을 받은 것도 그것을 그녀의 믿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셨지만, 그 능력을 받을 수 있게 해준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야이로의 죽은 딸을 다시 살려주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소녀를 살려주시기 전에 그 딸의 아버지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심으로 믿음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우리가 가진 믿음이 위대한 믿음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다짐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본문 35절에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21절부터 시작된 말씀인데 중간에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쳐주신 일이 삽입되어 있고 35절부터 다시 회당장의 딸을 살려주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어린 딸이 죽게 되었는데 자기 집에 가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라고 애원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갑자기 혈루증 걸린 여인의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의 병을 고쳐주시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보고를 합니다.
회당장님 당신의 딸이 이미 죽었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고 포기하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주신 분이시기는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까지 다시 살리실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그냥 가자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아직 예수님을 하나님이자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입니다.
여기 회당장은 유대인들의 회당을 관리하는 책임자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이 없어지자 각 지방에 회당을 만들고 거기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유대교로서 오늘날의 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회당장은 제사장이나 랍비가 아니라 평신도로서 회당건물을 관리하고 예배 순서를 짜고 설교자를 정하기도 하고 회당에 속한 사람들을 재판하는 일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장로 출신 중에서 존경받는 사람을 뽑아서 회당장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직분이었습니다.
이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에게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42절에 보면 이 딸이 열두 살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어린 딸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죽게 되었고 혈루증 여인을 고쳐주실 때 이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사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일개 인간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교 지도자인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그의 딸이 죽게 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로서 체면이 상하고 또 사람들이 알면 비난을 받을 일이었지만 딸만 살려준다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죽게 된 딸이 다시 살수만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께 왔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서글픈 일은 죽음일 것입니다. 한평생 사랑하는 사람들을 세상에 두고 나 홀로 떠나야 하는 것은 참 괴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다시 살아서 그리운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이 믿음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할 수 있는 꿈만 같은 일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본문 36절에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 딸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만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유대교 지도자로서 죽어가는 자기 딸 살려보려고 체면 불고하고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기만 하면 그 염려하는 일이 그 두려워하는 일이 깨끗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은 단순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보다 좀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패주’ 즉 전쟁에 져서 패잔병처럼 도망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도주’ 무섭다고 도망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피하거나 도망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으면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뜻을 이뤄야지 뭐 좀 안될 것 같다고 패잔병처럼 도망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두려워해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생각 없이 겁 없이 사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지 이런저런 것을 다 생각하면서 살려면 모든 것이 다 걱정이고 모든 일이 다 두려운 일입니다.
이런 많은 두려움 가운데 오늘 본문을 통하여 생각할 수 있는 두려움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고 또 하나는 믿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회당장 야이로가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딸의 죽음으로 인해서 가슴 아파하며 살아야 하는 세월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죽은 딸을 생각하면서 그것도 잊지 못하고 한평생 가슴 아파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큰 걱정이고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생이 다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가족 친지들의 죽음이나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아프면 약 먹으면 되고 병원에 가면 된다고 하고 별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아프니까 이병을 고칠 수 있는 병일까? 이 병으로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우리 인생에게 이런 죽음의 두려움만 없앤다고 해도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두려움
회당장은 하나님의 뜻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바뀌어 가는 시대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구약중심의 교회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하는 신약 중심의 교회 사이에서 택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성경의 각종 절기를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없애버리고 인간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참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켜왔던 제사도 절기도 율법도 다 버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로서 인정받는 회당장이라는 명예와 책임감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죽음에서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신 일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믿고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믿음만 있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으로 인해서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인데 문제는 그 믿음이 확실하지 못하고 또 이런저런 믿음들이 많이 있어서 어떤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 걱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기독교가 시작된 지 2천 년이 지나면서 이 믿음이라는 것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 여러 가지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믿는다고 하는데 그 믿음이 각양각색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는 믿음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가 되시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엉뚱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엉뚱한 것을 목적으로 믿음 생활을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귀신도 쫓아내고 병든 사람도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복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저 직업적으로 때로는 욕심 많은 장사꾼처럼 믿음을 이용하고 기업가처럼 대기업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기꾼처럼 거짓말로 속여서 우리 주머니를 털어가려는 엉터리들도 기독교라는 가면을 쓰고 믿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과연 내가 가진 믿음이 바른 믿음일까? 내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진실한 신앙고백일까? 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2)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는 헬라어로 ‘모논 피스테네(μόνον πίστενε)’입니다. ‘모논’이라는 말은 유일한 하나뿐인 오직 이라는 뜻입니다.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된다. 유일하게 믿음 하나밖에 없다.라는 뜻입니다.
오직 믿음만 있으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잘못된 믿음 목적지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있어도 더 염려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 다른 것을 더하지 말고 믿음에 다른 목적지를 정하지 말고 오직 복음이 말하는 그 믿음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믿음에다가 율법이나 계명을 붙이면 그것이 우리에게 더 두려움을 줍니다. 율법이나 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을 주셨는데 믿음을 무시하고 다시 또 그 율법이나 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그 불가능한 일을 행한다고 하다가 오히려 죄책감만 가지게 될 것입니다.
믿음에다가 고행이나 선행을 붙이면 믿음으로 자유가 아니라 믿음으로 무거운 짐만 더 지게 될 것입니다. 믿음에다가 충성이나 헌신 같은 것을 붙이면 그렇게 살지 못한 데 대한 죄송함이 앞설 것입니다.
믿음에다가 신유나 예언 같은 신비한 은사를 붙이면 그런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 열등감만 더 주게 될 것입니다. 믿음에다가 세상의 지위나 성공이나 부나 세상 축복을 붙이면 있는 사람은 교만해질 것이며 없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 믿음으로 죄에서 죽음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이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본문 41-43절에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제자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만 데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갔습니다. 초상집은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이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고 울어서 시끄럽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죽은 것을 확인했고 장례식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니까 비웃음이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아이가 잔다고 하신 것은 정말로 죽지 않고 잠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는 이미 죽었지만, 다시 살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음도 끝이 아니라 잠자는 것과 같은 상태로 살아 있어서 부활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잠자는 듯이 죽어서 누워 있는 아이에게 가서 당시에 함께 쓰던 아람어로 “달리다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은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 명령 한마디로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 걸어 다녔고 예수님은 그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히 다시 살아나서 걸어 다니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어나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 쓰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도 일어나라고 하셨고 누가복음 7장에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실 때도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4)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죽은 사람을 살렸는데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행 9:40)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일을 하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재촉하실 때도 이 일어나라는 말씀을 쓰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성도들이 각성해야 할 때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라고 했습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잠자는 사람처럼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거듭나지 못하고 죽어 있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때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산 사람 같지만 그들의 영혼이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소생하여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들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 복락을 좋아하지 말고 죽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죄악 된 일들을 행하지 말고 산 사람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 있을 것입니까? 언제까지 믿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살려고 하십니까? 살아 있는 사람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일어나서 자부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어 있는 한 소녀를 다시 살려주시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가 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믿기만 하라, 그리고 일어나라.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만 있으면 죄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주님을 더 사랑하는 일에 힘쓰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