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2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56)
  본문 : 행 11:22-26 
  제목 :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금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라 특별히 교회의 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이란 새로운 것을 향해서 발전시켜나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래의 것에서 변질된 부분을 다시 바로잡는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일들은 개혁이라고 하면 잘못된 것을 가려내서 고치고 바로잡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진보된 삶 더 향상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개혁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개혁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 즉 원래의 것을 바로 알고 원래의 것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원래의 교회 모습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는 처음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고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과 비교를 해 보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사도행전의 말씀은 신약교회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이방인교회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의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교회의 시작은 안디옥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인한 핍박을 피해서 외국으로 피난을 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나중에는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안디옥에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까지 전해지자 바나바를 안디옥에까지 보냈고 바나바는 다소에 가 있던 사울을 찾아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함께 무리들을 가르쳤습니다. 안디옥에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와서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서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간단히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안디옥이라는 곳에 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곳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에 와서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잘 가르쳐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고 비로소 그 때부터 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그런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교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비로소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불리기 시작을 했는데 무엇으로 인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는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정하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면서 새로 시작된 교회의 참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본문 22절에서 23절 상반절에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신약교회의 첫 교회이고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위시한 예수님의 12사도들이 모여 있고 기독교의 핵심 인물들이 모여 있는 총본부격인 교회가 예루살렘교입니다. 이 총본부인 예루살렘교회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와 온 유다와 땅 끝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퍼져나가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 사람들을 파송해서 바르게 믿는가를 확인했습니다.

 

  8장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8:14)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집사이자 전도자인 빌립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까지 전해지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아직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은 상태를 보고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여 성령님이 임하시게 했습니다.

 

  그 후에 빌립과 또 베드로사도의 전도로 복음이 온 유다로 전파되었고 베드로에 의해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이 전해졌을 때도 예루살렘의 교회가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본부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서 이방나라인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라는 사람을 파송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거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서 본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란 너무나 유명한 말이고 너무나 많이 쓴 말이고 그 의미도 다양하게 쓰였기 때문에 무엇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1) 이방인에게도 임한 하나님의 은혜 


  바나바라는 사람이 안디옥교회에서 본 하나님의 은혜는 이방인에게도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죄를 범한 인간을 값없이 구원하여 주신 것을 말합니다.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을만한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해 주신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이 임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았고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섬겼고 율법과 성전과 제사와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런 것들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 유대인에 비하면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유대인들에 비하면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하나님께 잘 한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사람들의 선함이나 공로가 넘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같으면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 왔을 때 무엇부터 보았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얼마나 괜찮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얼마나 훈련이 잘 된 사람들일까, 얼마나 충성스러운 사람들일까,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기도 하고 별로 마음이 좋지 않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본래의 모습은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많을수록,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많을수록, 구원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많을수록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인간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이 교회입니다. 

 

2) 완벽하게 전해진 복음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전 세계로 전파됨에 있어서 가장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가서 바른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도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자신이 전하는 복음과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고 기뻐했던 것은 안디옥교회에도 예루살렘교회와 같은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른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바르게 알고 믿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도 바른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른 복음을 알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마술사 시몬 같은 사람은 돈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사려고도 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방언이나 신유 같은 은사를 잘못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이방인들은 온갖 잡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잡신을 섬기는 것이 몸에 배인 사람들이 복음을 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도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바른 복음을 이해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다른 종교들에 물들어 있었고 행함대로 받는 것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이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형편에 교회가 사도들이 전한 그 복음을 바르게 전하고 그 바른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으면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없으면 이런 바른 복음 바른 믿음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고 그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것이 제일 큰 은혜이고 제일 큰 축복입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본문 23절에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 즉 구원의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임을 알고 그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에게도 할 일이 있다면 그 믿음을 바르게 붙잡고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쉽게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쉽게 변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욕심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도 처음에는 복음을 믿고 따르지만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 믿음도 세상적인 믿음으로 변질이 됩니다. 영원한 천국보다는 지금 당장 이 세상의 일이 급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축복을 바라는 믿음으로 바뀝니다.
  
  이런 인간의 마음을 이용해서 많은 이단들이 복음을 변질시켜서 교회를 이상한 곳으로 바꾸어버리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바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굳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또 그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머물러 있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주께 머물러 있으라고 한 것은 언제나 주님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주님 이외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주님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따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주님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주님이라고 부를 때 그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쓰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이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는 주님이 내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나는 그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부르는 호칭입니다.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내 인생이니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들 생각에는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사는 것이 자유로운 삶이고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보시면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게 됩니다. 나의 모든 어려움도 다 주님이 해결을 해 주시고 내가 가는 모든 길도 주님이 다 인도해주시고 내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다 주님이 결정해 주시면 나의 삶은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때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임을 고백하고 나의 구원을 예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 억만 죄악에서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길 외에 그 어디에도 구원은 없습니다. 서론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개혁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진보된 삶을 살게 하고 더 나은 것을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의 것을 되찾는 것이 개혁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바르게 알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월 따라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가지고 인간의 행복을 위한다고 하지만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따름으로 받게 되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의 복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굳게 하여 그 주님을 믿고 따르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더 넘치는 것입니다. 은혜는 참된 복음 안에 있습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