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55)
본문 : 행 11:19-21
제목 : 주 예수를 전파하니.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현대교회가 원래 교회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염려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의 교회에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이전에 교회의 기준이 되어야 할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중심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없고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만족시키려는 온갖 프로그램들이 교회 속에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이 다시 교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를 다시 한 번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었던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뜻을 되새기며 참된 교회의 모습을 되찾아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는 모습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언약의 교회를 시작하시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사도행전교회로 돌아가자고 할 때 사도행전에 나타난 기적들이 재현되는 교회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교회로 돌아가자고 할 때 하나님께서 신약의 교회를 시작하시면서 강조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서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단순히 교회가 시작되는 역사가 아니라 교회가 시작되면서 강조한 것들이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질이 교회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약속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구약중심의 유대교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율법이나 제사나 할례나 성전이나 이런 것들을 완전히 다른 것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율법은 좋은 것이고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좋은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고 율법을 통하여 나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지켜서 오히려 위선자가 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율법의 사용을 금지시켜야 합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인간의 교만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율법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더 이상 교회의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전이나 제사나 여러 절기들이 예수님을 알게 하는 예표로서의 의미는 있지만 이제 신약교회의 성도인 우리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린다거나 절기를 그들처럼 지킨다거나 유대교인의 상징인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철저하게 이런 구약의 교회를 떠나서 새로운 언약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신약교회의 또 하나의 변화는 유대인들 중심에서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로의 변화입니다. 구약중심의 유대교는 유대인들에게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로 복음이 전파되어 누구나가 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것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이 교회의 성도들이 따를 핵심 진리의 말씀이고 교회가 전할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복음이 중심이 되었을 때 참된 교회이고 이 복음이 중심이 되지 못한 교회는 아무리 대형교회라고 할지라도 교회는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유대인에게서 세상 만민으로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뀐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사도행전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고안해서 만든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싫어하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몰아내고 만든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시작까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만드신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사도행전을 살펴보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의 교회가 우리 교회의 원래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어도 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본문 19절 말씀에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의 환난으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스데반은 유대교 지도자들 앞에서 그들이 자랑하는 율법이나 성전에서 제사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들을 통해서 발견해야 할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이야기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진리를 증언한 스데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돌로 쳐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 스데반이 유대교 지도자들 앞에서 한 증언을 순교라는 말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끝까지 증언하다가 피 흘림의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에 증언이라는 말과 순교라는 말을 같은 단어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돌로 치거나 위협을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무슬림의 나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아닌 이상한 다른 복음을 전하고 복음과 반대되는 사상들을 설교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스데반으로 이내 일어난 환난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서 감옥에 넣기도 하고 사형을 시키기도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환난을 피해서 예루살렘을 떠나고 이스라엘을 떠나서 먼 외국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세도시를 살펴보면 베니게와 안디옥은 이스라엘 북쪽 터키의 아래에 있는 도시이고 구브로는 지금의 키프러스라는 지중해 바다의 섬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들로 가까워서 피신하기가 쉬워서 그곳으로 피난을 갔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도 그들은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기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피해서 타국까지 왔으면 조용히 살 수도 있었을 것인데 거기에 와서도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는 것을 목격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했을까요? 복음을 믿고 따르다가는 불이익을 당하고 잡혀가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면 당연히 믿는 것을 포기하고 살든지 안 믿는 체 하면서 마음으로 믿고 살든지 했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편에 서서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승자 편에 서기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 편에 서기를 좋아합니다. 소수의 연약한 사람들 평에 서 있다가는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늘 약자 편에 소수의 무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데반의 일을 목격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외국으로 도망 온 사람들이 외국에 와서도 또 그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가진 복음의 능력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난으로 인해서 복음이 오히려 세계만방을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위대한 복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전해야 할 진리의 핵심이요 세계만방까지 전해야 할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본문 20,21절 말씀에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주의 손이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19절의 말씀대로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유대인들이 살길을 찾아서 고국을 떠나 타국에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외국에 나와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었을 것이며 이왕이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자기 민족이 먼저 이 복음을 알고 믿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서 외국 사람인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헬라인들은 유대인들 못지않은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때 알렉산더대왕을 중심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사람들이요 그들이 형성한 문화는 그때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신약성경은 당시의 제일가는 언어인 헬라어로 써졌습니다.
그리고 헬라인이라는 말은 유대인들과 대칭되는 말로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이방인의 대표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과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말은 유대인들이나 세계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며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교국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었던 가난하고 작은 나라를 사용하여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국가로 발전시키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선교의 임무를 더 잘 감당할 때 더 부자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 선교를 포기할 때 다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바른 복음을 전하고 세계선교에 앞장설 때 우리나라가 잘살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교회를 위해서 복음전도를 위해서 충성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될 때 그런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 목적이 없이 그냥 나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면 늘 그런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복음을 따라 살기 위해서 먼 이국에 왔고 거기서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주의 손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그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힘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만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면 안 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사람들이 믿게 할 때 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를 통해서 복음전파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건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다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복음전파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심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쾌락을 위해서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목적 없이 아무렇게나 허랑방탕하게 살던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정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의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손이 여러분과 함께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잃지 않고 사시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이 진리의 복음을 이웃에게 먼 아방나라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