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49)
본문 : 행 10:39-41
제목 :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온 나라가 법정으로 바뀐 느낌이 듭니다. 여기저기서 죄를 지은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죄를 밝혀내서 법정에 세우고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왕년에 권력으로 돈으로 꽤나 큰소리 치고 살던 사람들이 법 앞에서 쩔쩔 매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법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법이 있어도 옛날처럼 돈 많고 권력이 많은 사람에게는 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면 돈 많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자기 마음대로 군림하면서 살았을 텐데 세상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런 재판에 있어서 증인이 참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증인이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서 유무죄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증인으로 법정에 서서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바르게 말함으로 죄지은 사람이 벌을 받게 하고 죄가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벌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은 보람된 일입니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만약에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없다고 한다면 심판이 있어도 세상 법정처럼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이 유리한 재판이라면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은 참 억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확실하게 심판을 하십니다. 지은 죄를 하나하나 다 지적을 하고 사형보다 더 무서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 최후의 심판에 피고로 서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피고로 서서 정죄를 받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떵떵거리고 살던 사람들이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잘난 척하면서 살던 사람들이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차고 얼굴을 들지 못하고 비참하게 하나님의 법정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편에 서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오늘 설교 제목이 “그가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이기 때문에 재판이나 증인 이야기를 좀 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증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의 증인이며 증인이 된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증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본문 39-40절 말씀에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이 복음의 증인임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나라에 오셔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나라 땅을 다니시면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 본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화평의 복음을 전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아주 중요한 일 두 가지를 말씀하면서 그 일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일과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한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죄인으로 몰려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동원해서 예수님을 체포하여 로마총독에게 넘겨주고 거짓증인을 세우고 군중을 동원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발을 받은 로마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했으나 유대인들이 군중을 동원해서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하고 로마병정의 손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 줄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가 되심을 몰랐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농간에 속아서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줄을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말만 믿고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며 신성을 모독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발을 하고 죽임을 당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처음부터 살펴본 사실이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잘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어서 끝까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았습니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하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고 심각하게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악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인류의 구원이라는 이 엄청난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이런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같이 들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이런 일에 심중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바른 길을 가지 않고 죄를 짓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 세상의 작은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에만 증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일에도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는 엄청난 일이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른 것보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그들의 최고의 증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자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며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여 보여주는 일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부활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12-13절 말씀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베드로 사도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증인으로 사는 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죄인으로 서지 않는다는 것이며 증인을 서서 함께 심판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떨며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본문 41절에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백성들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수많은 유대인들이 다 보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부활장으로 불리는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환상을 볼 정도의 몇몇 사람이 아니라 오백여명이 넘는 목격자가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이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릴 증인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증인을 “미리 택하신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에게나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미리 선택을 하신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셨다면 사람들이 더 쉽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셨느냐고 의아하게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 보았다고 해서 그들이 다 유익한 증인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 양심을 따라 바른 증언을 하는 증인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따라서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줄 알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기득권을 빼앗기기 싫어서 그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는 흉악한 죄를 저질렀던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줬어도 오히려 거짓 증언을 할 사람들이 많음을 아시고 바른 증인이 될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아시고 증인으로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셔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이 사실을 증언하게 했습니다.
또 본문은 그 미리 택하신 증인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이후에 제자들을 만나셔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그 모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도 뼈와 살이 있는 몸으로 부활하심을 말씀하시고 생선 한 도막을 잡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으로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육신도 부활하셨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지만 특별히 그날 그 자리에서 함께 먹었던 제자들을 미리 택하신 증인이라고 하신 것은 그 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증인으로 특별한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처럼 부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엄청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 자신의 부활도 믿지 않습니다.
말은 믿는다고 하지만 속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가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고 산다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부활할 사람이 그렇게 삽니까? 죽어도 부활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그렇게 신앙생활 합니까? 전혀 믿음이 없거나 부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저 마지못해서 억지로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믿고 따르는 사람이지 앞장서서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냥 믿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외칠만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전해야 할 소중한 복음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잘 못 믿는 것을 남에게까지 전해서 함께 속을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사람만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먹고 사는 모든 것이 예수님을 위한 사람을 사는 사람만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시기 위해서 세상 의지하고 몸만 교회에 있는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만 진정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우리 예수님께서 재판장이 되시는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산 사람에게는 엄중한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행한 이런저런 죄들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땅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그런 죄의 심판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함께 그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피고석이 아니라 판사의 자리에 서 있는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기 위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