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47)
본문 : 행 10:34-35
제목 :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외모지상주의라고 할 정도로 외모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성교제나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도 외모가 제일차 조건입니다. 결혼생활을 해 보면 외모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얼굴이 예쁘다고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들면 다 예쁘던 얼굴도 없어지기 마련인데 왜 자꾸 예쁜 얼굴만 따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외모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학력이나 재력이나 직업 등의 외적인 조건들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학력이나 재력이나 직업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런 외모나 외형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입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들입니다. 특별히 그 속에 있는 신앙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런 소중한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마음의 심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가 가지고 있는 목표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외모나 외형적인 조건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처럼 이런 외모나 외형적인 조건을 중요하게 여기셨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올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런 외모나 외형적인 조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발한다면 우리는 합격선에 들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처럼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보고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받으시는 줄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본문 34절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유대인인 베드로의 눈에는 고넬료는 짐승과 같은 이방인일 뿐이고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고넬료를 만나라고 하셨고 고넬료도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여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자기들처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말을 할 때 입을 열어서 말을 하는데 당연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에서 입을 열어서 말을 한다고 할 때 아주 중요한 말을 할 때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마태복음 5장 2절에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시작하실 때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상산보훈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설교를 시작하실 때 ‘입을 열어’ 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면서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19)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알리게 해 달라고 하면서 ‘입을 열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아주 중요한 말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록 고넬료와 그의 가족 친지들에게 하는 설교이지만 이방인에게 공식적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역사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말을 하면서 베드로 사도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이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를 본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신명기 10장 16-17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외모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형적인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할례가 그 뜻을 알고 받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할례를 받고 할례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섬기지 않고 형식적이고 가식적이고 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아는 그런 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신은 가짜 신이거나 별 능력이 없는 귀신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식적으로 대해도 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을 다 아십니다. 가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신10:1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만사를 정의롭게 공평하게 하신다는 것이며 고아와 과부를 위하고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들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선행이 없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은 외형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식적인 외모를 보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시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람들의 가식적인 마음으로 혹은 이런저런 잡신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되 진심으로 섬기지 않고 외형적인 것 가식적인 것으로 섬길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형식적이고 가식적으로 드릴 때가 많습니다. 좋은 일을 할 때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외형적인 것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 마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가를 보십니다. 비록 외형적으로 하는 일은 없다고 해도 그 마음의 진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신다는 말을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리 정해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리 예정하시고 선택을 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 외형적인 조건을 보시지 않으시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사람은 인간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은 그가 인간적으로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구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런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게 해 주신 것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그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덕분입니다. 우리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
본문 35절에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각 나라 사람들을 차별 없이 다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외형적인 것을 보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라고 해도 차별이 없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으시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조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는 조건입니다.
이 두 가지를 외형적인 조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만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시고 성령님께서는 그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의를 행하려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만하게 생각하며 적당히 눈속임으로 교회에 출입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 되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면 안 됩니다. 존 맥아더 목사의 말처럼 하나님에 대한 높은 차원의 견해를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을 그저 산신령이나 용왕이나 무당들이 섬기는 잡신들 정도로 알고 섬겨서는 안 됩니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도끼를 물에 빠트렸는데 산신령이 금도끼를 가지고 나와서 이것이 네 도끼냐 하니까 착한 나무꾼이 아닙니다. 제 도끼는 금도끼가 아니고 쇠도끼입니다. 라고 정직하게 말하니까 금도끼까지 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정도의 신을 하나님으로 생각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착한 일 하면 상을 주고 나쁜 일 하면 벌을 주고 찬물 떠다 놓고 빌면 복을 주고 하는 그런 정도의 하나님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그런 정도로 알면 적당히 착한 척 해서 상이나 받고 열심히 빌어서 복이나 받으려고 가식으로 선을 행하고 가식으로 열심인체 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정도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주 만물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바로 알고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런 경외심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은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의를 행한 다는 것은 바른 길 옳은 길로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바르게 정직하게 똑바로 행하면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공의가 없다면 이 세상은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르게 하시니까 이 세상이 바르게 운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의 백성인 우리 성도들도 공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불의를 행하고 나쁜 짓을 한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백성 되기가 참 어렵다. 어떻게 늘 의롭게 살 수 있겠느냐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불의한 세상에 살면서 우리만 깨끗하고 바르게 살 수가 없습니다. 의롭게 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늘 의로운 삶은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의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율법을 잘 지키고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의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없음을 아시고 의의 기준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우리가 로마서를 통하여 배운 대로 복음 안에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라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의의 기준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고 믿음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불의한 사람입니다.
그럼으로 오늘날 우리가 의를 행한다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의 의는 의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의지하여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의로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롭게 살려고 하는 노력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의롭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연약한 육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십자가를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나 의를 행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다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나는 그 앞에 엎드리면 됩니다. 교만한 사람이 그렇게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건방지게 행하지만 그냥 겸손하게 엎드리면 되기 때문에 참 쉽습니다.
의를 행하는 일 즉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를 붙드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사람은 교만해서 자기 의를 나타나려고 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붙들기를 싫어하지만 우리들처럼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은 참 쉽습니다. 그냥 손들고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속주가 필요합니다. 라고 하기만 하면 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의로운 일을 행하려는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우리를 차별하시지 않고 우리의 외모로 보시지 않고 받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으시고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받아주셨습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더욱더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