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 7:28-29
제목 : 권위 있는 분의 말씀.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께서 드디어 산상보훈의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니까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그냥 ‘놀랐다’ 정도로 번역을 했지만 헬라어에서는 그 의미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에서는 에크플렛소(ἐκπλσσω)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무엇으로 얻어맞은 것 같다. 공포에 사로잡히다. 깜짝 놀라다. 이런 뜻으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고 공포에 압도당했고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당시에 사람들이 자기들의 선생인 서기관들에게 듣던 그런 말씀과는 너무나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가 있는 분의 말씀처럼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의 예수님은 사역초기였기 때문에 아직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때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기는 했고 백성들 중에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시기는 했지만 아직 그렇게 유명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서 학교 교육을 받으신 일이 없으십니다.
바리새파에 속해서 율법을 배우신 일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유명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으신 일도 없으십니다.
나사렛에 사는 한 목수의 아들로 알려져 있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동안 서기관들이나 랍비들에게 들었던 그런 말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말씀이더라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자신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들었다든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든지 그런 투의 말씀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말씀으로 명령을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했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그런 특별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놀라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놀라거나 특별한 말씀으로 듣지를 않습니다.
이 말씀에 들어 있는 놀라운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말씀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시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 말씀을 하시는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들을 재해석하시면서 구약의 율법을 “옛사람에게 말한바” 라고 하시고 그 재해석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을 하신 것을 봅니다.
구약의 율법은 누가 주신 것입니까?
모세를 통하여 주셨지만 그것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인간이 감히 다르게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그 말씀을 다르게 해석을 할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의 핵심 중에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 중 핵심이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이란 우리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런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 하나님 중에 한 분이신 성자 하나님 즉 하나님이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보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다 같이 예수님을 믿는 교회 같지만 교회마다 어느 교단에 속한 교회인가에 따라서 어떤 신학을 공부한 목사님인가에 따라서 예수님을 보는 눈이 엄청나게 다릅니다.
어떤 교회는 예수님을 그저 4대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 보는 교회도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것은 기독교라는 탈을 썼지만 기독교의 교회는 아닙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저 한 사람으로 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참 훌륭한 사람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도덕적인 말씀들을 좋아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대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런 말씀들을 좋아합니다.
얼마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말씀들입니까?
이런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세계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고아나 과부나 억울함을 당한 불쌍한 사람들 편에서 그들을 대변해 주고 그들과 함께한 그 박애정신을 좋아합니다.
힘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보호해 주는 그런 정신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훌륭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님이 물 위로 걸으셨다는 말이나 풍랑을 잠잠케 하셨다는 말이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뭘 착각하고 기록했거나 거짓말을 한 것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슈바이처라는 사람입니다.
의사라는 귀한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돈벌이에 급급하지 않고 아프리카 오지로 날아가서 그들을 치료해 준 멋있는 사람 슈바이처라고 합니다.
슈바이처 같은 사람을 나쁘게 말하면 저는 요즘말로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훌륭하다고 하지만 개혁주의 목사의 눈으로 보며 그 사람은 참으로 교만한 사람이고 멍청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는 그의 잘남, 그의 똑똑함, 그의 선한 행동 때문에 예수님을 아주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처럼 선한 일을 한 사람정도 밖에 안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선한 일을 한 것으로 따지면 슈바이처가 일을 더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자기나 비슷하게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이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신이나 잡신정도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교나 무속종교나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지금 2013년 부산에서 W.C.C. 세계대회가 열린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할 것은 W.C.C.는 종교다원주의 즉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모든 종교는 다 같은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른 종교의 잡신들과 같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다른 신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요 멸망의 대상인 사탄 즉 귀신일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예수가 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자기를 높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말하면서 자기 사진을 크게 내 걸고 자기 교회당 건물을 더 앞세우면서 은근히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한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강단을 보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내세우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경험이나 자기 자신의 철학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권위 하나님의 뜻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교회는 철저하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기를 원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높이 받들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지금은 좀 바뀌었지만 옛날 우리교회 5대상 첫 번째는 높은 차원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였습니다.
지금도 그 정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 얼마나 전지전능하신 분이신지 우리가 얼마나 경외하고 존경해야 할 분이신지를 알고 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려고 노력을 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1-12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박해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절대로 존경하고 따르는 우리들을 보수주의자니 골동품이나 하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림이 없이 우리는 그렇게 고백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배운 산상보훈의 말씀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직접 해주신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산상보훈의 주제는 천국입니다.
천국이 어떤 사람의 것이며 어떤 사람이 천국을 차지하게 되는가가 산상보훈의 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시작하시면서 팔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그 팔복의 주제는 천국입니다.
이런 심성을 가진 자들이 복이 있는데 그 복이 천국을 소유하는 복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도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구해야 하며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의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구하고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7장에서도 그 길이 비록 협착한 길이고 그 들어가는 문이 좁은 문이지만 그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좁은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몇 번이나 상고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에서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말씀의 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고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가서 살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구원이라는 말로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율법의 말씀을 다 지켜야 합니다.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야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길 외에 다른 한 길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의 죄 대신 형벌을 받아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는 한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의미를 바르게 알고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시기 위해서 그 길을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통해서 율법을 재해석해 주신 것은 그것이 율법의 원래 정신이요 우리가 그렇게 지켜야 할 것임을 보여주시는 동시에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를 붙잡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즉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메시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한 그 메시야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라고 할 때 사람들은 그 구원을 이 세상의 어려움에서의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병에서 구원, 가난에서 구원, 압박에서 구원 이런 세상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물론 그런 구원들도 부스러기로 덤으로 우리가 받는 구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자라고 할 때 그 구원은 죄에서 구원 죽음에서 구원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억압과 서러움에서, 여러 가지 고통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점이 이 세상이 아닌 영원한 천국에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조금씩 맛보는 것은 그 나라를 맛보며 살게 해 주시기 위함이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차피 이렇게 병들고 이렇게 늙고 이렇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세월 따라 우리는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를 그 죽음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3.예수님 자신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계시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계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자기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심령이 가장 가난해 지신분이 우리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 높은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호령을 하실 분이십니다.
그런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이 가장 가난해지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인간이 구더기가 되어서 구더기 소굴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보다 더 낮아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가난해지심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복을 선사하셨습니다.
영원히 멸망당하고 죽어지고 썩어지고 없어질 우리 인생이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이라는 엄청난 것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낮은 자세에서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더 낮아지면 더 낮아질수록 우리가 받은 이 엄청난 축복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처지인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구원을 우습게 여기고 천국을 우습게 여깁니다.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말 것들에 집착을 하고 그런 부스러기들을 자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잡신들을 섬기고 사탄이 시키는 대로 따랐던 사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십리를 동행해 주고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리까지 동행해 주시고 겉옷까지 벗어서 주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나 많이 쓸데없는 것들 가지고 졸랐습니까?
이것 해 주세요 저 것도 주세요.
뭘 맡겨 놓은 사람처럼 달라할 권리가 있는 채권자처럼 얼마나 많은 일들로 졸랐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귀찮은 것들 다 해주시고 계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추한 인생길에 지금까지 동행해 주셨고
우리가 구한 것들보다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명도 주시고 천국도 주시고 천국까지 가는 길에 동행자가 되어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덤으로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산상보훈의 귀한 말씀을 해 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 산상보훈의 귀한 말씀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은혜로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의 말씀인 상상보훈의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