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1.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56)
본문 : 마 7:12
제목 :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산상보훈 즉,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보배로운 말씀들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예수님의 성품을 잘 볼 수 있는 말씀이며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너무나 귀한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이 산상보훈의 말씀 중에 기도에 관한 교훈들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을 봅니다.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기도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기도에 관한 교훈이 많을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교훈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로 기도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바른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기도를 들어주실 줄 알고 기도를 얼마만큼 오래 했는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했는가에 관심을 두는데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기도에 있어서도 사실 그동안 우리가 기도했던 내용과는 다른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가 아니고 사실 먼저 기도할 것과 그리고 많은 부분을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의 간구도 일용할 양식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죄의 문제, 시험의 문제, 악에서 구원문제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재물을 위해서 기도할 때가 많지만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으려고 하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을 하심으로 이 세상의 재물을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며 무엇을 입고 살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공중의 새를 보며 들의 백합화를 보며 그런 염려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라는 교훈의 말씀에서도 사실은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구하고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찾고 그 하나님나라의 문을 두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얻게 하시고 찾게 하시고 그 문이 열리게 해 주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의 유혹을 따라 잘 못된 것을 구하고 또 기껏해야 육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본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 말씀만 가지고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고귀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에 관한 교훈의 결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으로 해석을 하면 더 귀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 기도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말씀만 드리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 쉬운데 기도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께 받고 싶은 것을 말씀드리고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가 먼저 해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오늘 본문 말씀을 시작하면서 앞에다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러므로”와 같은 말이 나오면 유심히 살펴보아야 됩니다.
이 말이 앞뒤의 문장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과 앞의 기도에 관한 교훈과는 언뜻 보기에 별로 연관이 없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은 앞의 말씀이나 뒤의 말씀과 연관이 없는 독립적인 말씀으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칼빈 같은 분도 이 본문은 앞의 말씀과 연관이 없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뭔가 연결이 되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기도와 연관해서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 본문이 확실하게 앞의 구절과 연관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앞의 말씀과 이렇게 연결이 됩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줄 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몰라서 좋지 않은 것을 구할 때도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은혜로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진 것도 이미 탕감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 사는 것까지도 이미 다 허락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뭘 달라고 할 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받은 은혜도 차고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하나님처럼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남에게 받는 것만을 좋아하면서 살았습니다.
누가 나에게 주면 좋아하고 주지 않으면 섭섭해 하면서 살았습니다.
누가 좀 도와주는 사람은 없나 살피면서 살았습니다.
우리 친척들을 만나면 또 가족들 중에서도 자주 하는 말이 왜 당신이 나를 좀 도와주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당신이 나를 좀 도와주었으면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지를 않았을 텐데 왜 당신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느냐고 서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한 사람도 그래 내가 너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도움을 받기만 원하고 도와주려고 생각은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대부분 하나님 나에게 주시옵소서.
이것저것 도와주시옵소서. 복을 주옵소서. 늘 달라는 기도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 만물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보십시오.
태양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만약에 태양에다가 우리가 무엇을 해 주어야 빛은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면 참 불안할 것입니다.
연료를 넣어주어야 빛을 발한다면 그 많은 연료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태양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도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태양 다음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물일 것입니다.
우리가 물을 위하여 무엇을 합니까? 물 스스로 수증기가 되어서 하늘로 올라갔다가 비가 되어서 내리고 땅으로 들어가서 깨끗한 샘물이 되어 나오고 다시 바다로 갑니다.
꼭 필요한 공기나 땅이나 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대가 없이 그냥 은혜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역사들을 보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몸소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시고 스스로 십자가에 우리 죄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부활하셔서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고 끝까지 우리를 붙잡고 천국가지 인도하시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기도 하고 신앙생활 한다고 노력을 하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기도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까지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내가 그렇게 하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알았다면 그런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고 따른다면 그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도 닮아서 이제 우리도 하나님처럼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은 사람답게 다른 사람이 나에게 빚진 것도 탕감해 줄줄 알자는 것입니다.
엄청난 죄를 용서받은 사람답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지은 죄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옹졸하게 꽁하고 두고 보자 하고 그러지 말고 다 털고 용서하고 살자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라고 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것 엇이든지 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지 그것이 육신적인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먼저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도 사람에게 먼저 그렇게 해 주면 되고 사람에게 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도 먼저 그렇게 해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2.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불만을 말합니다.
나는 잘 해주는데 내가 잘 해주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내게 잘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앞의 기도와 연관해서 이 말씀을 이해하면 대접을 받기 위해서 대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대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많이 받은 자로서 남을 대접할 때 그 기준이 내가 받고 싶은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받았을 때 기분 좋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할 때 겉으로만 하는척하기 쉽고 억지로 마지 못해서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생색만 내기 쉽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최고의 것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주고 내가 하기 싫은 것 하지 말고 그렇게 해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남에게 무엇을 행할 때 그것이 나에게 돌아올 때 기분이 어떻겠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할 때는 기분이 좋지만 그 비판이 나에게 돌아올 때 그 기분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흉보고 비웃고 하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흉이 그 비웃음이 나를 향한 것일 때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잘난 척하고 우쭐거릴 때는 기분이 좋지만 상대방의 기분은 어떻겠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랑할 때는 기분이 좋겠지만 내 자랑을 듣고 속상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남을 때릴 때 맞는 사람을 생각하고
남을 왕따 시킬 때 내가 왕따 당할 것을 생각하고
남을 속일 때 내가 속아 넘어갈 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할 때 내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받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남에게 행하고 주라는 것입니다.
칭찬을 받고 싶습니까?
칭찬을 많이 해 주시면 됩니다.
인정을 받고 싶습니까?
다른 사람도 인정을 해 주시면 됩니다.
웃고 즐기면서 살고 싶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즐겁게 해주시면 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사람의 습성을 몰라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 압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살면 손해가 되지 않겠지만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지를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손해 볼 일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열 개쯤 해 주면 한 두 개쯤 돌아온다는 것을 압니다.
때로는 그것이 반대로 나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 해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배은망덕한 삶을 사는 것이 타락한 우리 인생들의 서글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많은 것을 은혜로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삶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절대로 손해를 입히시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에게도 원수같이 행하던 우리에게도 은혜를 베푸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대로 선을 행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3.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은 그저 좋은 말씀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가능하면 이렇게 살고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는 이런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는 말씀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바리새인을 대표하는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에서 어떤 율법이 가장 크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란 성경의 율법서와 선지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또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것저것 우리가 지키고 살아야할 많은 것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을 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을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율법과 선지자라고 하신 것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과 같은 말씀이기도 하고 성경의 율법 전체가 가르치는 핵심의 말씀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귀하게 여김을 받고 싶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대하여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하나님 좋은 분이시다고 고백을 하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공적인 예배에 나오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하나님 사랑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청난 것들을 주셨으니까 더 바랄 것도 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우리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사람들과도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여러분이 먼저 베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자비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통하여 온 세상의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도록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고 성공을 하고 행복하게 산다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이 하나님께 무엇을 받는 것으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 주시는 것임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도와 함께 우리가 행하여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만 해서는 안 되고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이 있음을 알고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대접을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이 일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온갖 좋은 것들을 은혜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도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그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마땅히 해야 할 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